시간위에서

jsyang279 2020.04.02 20:19 조회 수 : 62

 

김명순 (수필가)

 

한알의 귀한 보석을 쥐었다 놓듯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금강석들을 찾아 조심스레 내 인생의 화폭을 만들어 간다.

 

영롱한 밝음으로 반짝이는 추억의 일부는 지나간 시간속에 차곡차곡 정돈해 놓고, 무지개빛 찬란한 영광으로 반짝일 미래의 시간들은 아낌없는 정성으로 한올한올 수를 놓듯 가꿔 가리라는 약속을 한다.

 

내가 행하고 내가 생각한 대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내 곁에 다가올 시간의 그림자 위에 자업자득이란 생의 원칙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나는 시간의 근엄한 얼굴을 외면할 수가 없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끝없는 시간을 윤회하며 시간의 굴레속에 갇혀 버린 나, 나는 자유인인가, 아니면 억압받은 피조물인가, 시공을 초월한 의식의 저편에서 또 하나의 의식에 붙잡히며,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갈것인가, 그 물음을 계속하면서 그만 두자 하면서 한량없는 시간의 손목을 부여잡는다.

 

아서라, 그만두어라, 시간은 원래 형상없는 것, 시간을 헤치고 뛰어 가는 자는 누구인가, 눈 앞을 보아라, 현재를 살아라, 지금을 잘 살면 과거도 잘 살고 미래도 잘 사는 것이다. 지금 옳고 바른 길을 간다면 내일도 그런 날이 다가오겠지. 시간은 단지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 놓은 한정된 개념일 뿐, 언어가 만들 수 없는 무한의 거리에 있다.

 

무한 – 무한이라 하면 무한이란 또 하나의 관념속에 걸리고 마는 오묘한 말장난, 글장난 속에서 나는 매달 한장의 달력을 떼어 내는 의식을 치르곤 한다. 서른개 때로는 서른 한개의 숫자가 사이 좋게 모여 있는 날짜 수만큼의 시간을 공제하면서 멋진 한판의 곡예를 부렸던 삶의 즐거움, 고통들이 스러져 가고 밀려 가는 모습을 본다.

 

변화 – 시간은 변화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죽자 살자 사랑하던 님의 마음도 변하고, 영원할 것 같던 솔로몬의 부귀 영화도 지나고 보면 한 순간이다. 내 것이라 부르던 내 마음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니 불행도 영원한 불행이 아니요, 기쁨도 영원한 기쁨은 아니다.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은 맺음의 끈을 펼쳐 새로운 변화를 시도케 하고 우리를 시간의 숭배자이게 한다.

 

때로는 시간의 유한성 앞에서 생과 죽음의 갈림길을 생각하며 인생은 한번 뿐인데 뭐하러 그렇게 참고 사느냐 하기도 한다. 그것은 허무다. 절망을 부르는 허튼 몸짓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가 시간만큼 엄중한 자세로 우리의 삶을 판가름해 줄 것인가.

 

인과 응보의 세월 -. 노력한 이에게는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악한 이에겐 악한 만큼의 결실을, 선한 이에겐 선한 만큼의 열매를 부여하는 시간의 공정함 앞에서 나는 그만 숙연해지고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해낸다.

 

순간이 머물지 않는 시간의 요람위에서 나는 스스로를 가늠하며 걸러 내는 작업을 한다.

 

                  1994<뉴욕문학 제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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