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단독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로 불편한 것은 좁은 공간 뿐이 아니다 봄이 되어
꽃이나 식물들이 되살아나서 한창일 때는 가지 각색의 정원의 화초들이 생각난다. 흙을
뒤지기를 꺼리지 않는편이라 뒷 뜰에 두어 가지 채소를 심었던 조그마한 텃밭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다행히 이곳 시청 공원 관리국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낸 후 중간
사이즈 카펫 정도의 공지를 불하 받았다. 양지 바른 곳들은 오래전에 소유권을 얻은 이
들의 몫이어서 초보인 나에게는 야생 풀들이 무성한 음지가 배당이 되었다. 잡초가
가슴까지 올라올 지경의 묵은 밭이지만 내가 가꾸어도 되는 땅이라는 생각을 하니 큰
농장의 주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몇 년을 비워 두었는지 천방지축으로 자란 쑥의 뿌리를
뽑고 또 뽑아도 그 봄에는 겨우 반 정도의 땅에만 씨를 뿌릴 형편이 되었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올라오는 연한 상추는 질기고 강한 야생 쑥에 눌려 그야말로 “쑥밭”이 되는가
싶었다. 그래도 키가 큰 한국 종 아삭이 고추나무에 굵은 손가락 크기의 고추가 조롱 조롱
달려있는 걸 보는 재미는 맛있게 먹는 즐거움에 버금가는 일이다. 이 밭에다 새로 부어준
흙이며 추가로 장만한 풀 배는 큰 칼 등등의 소소한 비용이 있었다. 매년 시청에 내는
55불의 경작비를 감안하면 나의 노동시간의 대가를 환산 하지 않아도 시쳇말로는
“밑지는 장사” 이고 그 돈으로 유기농 채소를 더 많이 살 수 있다는 판단도 든다만 이 고생
(?) 을 자처 함은 그나마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다. 작은 씨앗이 움을 티우고
파랗게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는
동기부여이다. 어떤 지인은 “얼굴에 닿는 햇볕이 싫어서 도저히 못하겠노라”고도
하였는데 얼굴에 바르는 햇빛 차단 크림에도 신경을 써야 함은 물론이다.
Community Garden 이라 이름 한 이곳에는 60여개의 필지( plot) 가 있고 각각의 가든에서
나는 채소나 꽃들의 종류 만큼이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주인이다 직업이나
인종분류도 유엔에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나의 바로 이웃은 열대지방 출신인데 얼마나
밭을 잘 가꾸는지 보는 이들마다 찬사가 자자하다 모범 농부 상을 받을 만큼 깔끔하고
싱싱한 채소들이 가득하고 농사 초등생인 내가 묻는 말에는 항상 친절하게 알려준다.
지난 달 에는 재료비만 받고 나무로 된 박스를 4개나 만들어 주어서 나의 가든은 격상이
업그래이드가 되었다. 빈 공간에는 잡초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100 피트나 떨어진 공동
저장소에서 나무껍질을 가져다 덮어주는 수고도 하였었다. 나의 남편은 두어 해 전
입구에서 이곳을 구경한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고 늘 혼자서 잡초를 뽑고 있는 이 늙은
여자가 동정심을 나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다섯 필지 왼쪽으로는 나이가 80이 넘었다는
이태리 할아버지의 밭이다. 보슬비가 내리는 지난 주말 오후 “지금 심으면 딱 좋다”며 한
손 가득히 상추모종을 건네 주셨다. 어린시절 시골 조부모님 댁의 담장 너머로 오가던
애호박덩이나 갓 베어온 부추 한 줌의 훈훈한 정을 이곳에서 다시 떠 올리게 된다.
뿌린 대로 거두는 흙의 교훈도 함께 깨달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