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ce Scam -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는가?
몇 해 전 아침에 잘 아는 고객에게서 급히 전화해달라는 연락을 받
았다.
이분은 나이가 70대 후반으로 혼자 된 지가 10년이 넘는데, 꽤 많
은 재산이 있는 재력가다.
언뜻 보기에는 50대 건강한 장년으로 젊게 보이는 분이다.
사업에도 성공하고 영어도 잘하는 편이고 우리 동포 교회에서 열심
히 일하기 때문에 존경받는 분이다.
주위에서 재혼을 권했지만, 완곡히 거절해서 오래전에 병사(病死)
한 부인을 못 잊어 재혼을 안 하는가 보다고 부인들이 로맨틱한 노인
으로 존경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나 나는 재혼할 마음은 많지만, 그 자녀들이 재산 문제로 재혼
을 극구 반대해서 못 하고 있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나에게는 모든 일을 다 말하고 상의하기 때문이다.
전화로 하는 말이 두서가 없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자고 하
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예의 패기 찬 모습과는 달리 갑자
기 늙어 보이고 어딘가 우울해 보인다.간단한 인사말을 주고 받은 후 본론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전과 달리 우물쭈물하면서 말끝마다 “이거 창피해서, 원”하면서 이
야기하는 내용은 이렇다.
몇 해 전에 Facebook을 통해서 한 35세 된 미여군(美女軍)과 친하
게 돼서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더욱 친밀하게 된 이유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는데 고향이 부산이라고 한다.
어릴 때 미국으로 아버지를 따라 Wyoming 시골로 이주해서 살았
기 때문에 한국어는 못 한다고 해서 영어로 통신했다고 한다.
20세 후반에 부모와 문제가 생겨서 미군에 직업 군인으로 입대해서
Iraq으로 파병돼서 있다고 하면서 미 육군 간부후보생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을 여러 장 보냈는데 아주 미인이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서 벌써 이 사람이 국제 사기단에 그 유명한
Romance Scam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색은 안 하고 그 사람이 말하는 뻔한 사기극을 인내심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을 때 사담 후세인 정부 고관 집을 습격한 적
이 있는데 거기서 큰 가방을 압수하고 보니 미화 5백만 불이 차곡차
곡 쌓여 있어서 몰래 숨겼는데,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인 것을 그동
안 facebook을 통해서 연락하면서 믿게 되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미
국에 돌아갈 때까지 보관해 주면 후히 사례하겠다고 간절히 애원 투
로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고 한다.
자기를 믿고 그 큰돈을 보관 좀 해 달라고 하는 말에 이 사람은 깊
은 감동을 받고는 쾌히 승낙했다.얼마 있다가 ‘그 가방을 특수 루트를 통해 미국으로 보내는데 1,500
불 경비가 드니 좀 보내달라’고 해서 “500만 불도 믿고 보내는데,
1,500불 쯤이야 나중에 500만 불 받은 데서 계산하면 되지.”하고 즉
시 송금했다고 한다.
그 후 얼마 후 그 여자의 오빠라고 하는 미국 남자가 전화가 와서
‘동생이 부탁해서 세관 통과를 하려고 하니 scan하면 그 내용물이 무
엇인지 발각 나기 때문에 scan을 안 하고 통관하려니 5,500불이 든다
고 빨리 송금시키라.’고 해서 그 예의 미 여군에게 연락하니 같은 이
야기를 하면서 ‘편리를 봐주면 사례하겠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보내
라는 계좌로 송금했다고 한다.
좀 있더니 갑자기 그 여군이 California의 San Diego로 전출돼 왔다
고 하면서 시간 내서 뉴욕으로 가서 만날 날만 기다린다고 애정 어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며칠 후 그 가방을 자기가 받았는데 상관이 그 내용물을 검사하고
는 30만 불을 줘야만 가방을 돌려준다고 하면서 군법(軍法)회의에 송
치하겠다고 협박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면서 전화가 왔
다고 한다.
‘그러지 말고 가방에서 30만 불을 꺼내서 주고 나머지를 돌려받으
면 되지 않느냐?’니까 ‘특수 seal을 해놔서 그건 불가능하니 좀 손을
써봐 달라’고 하면서 ‘이 일이 해결되면 San Diego에서 만나서 가방
을 직접 전해주겠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써 보내준 계좌로 여기저기
서 돈을 모아서 30만 불을 이체하고 ‘고맙다’는 연락을 받고는 급히
San Diego부대로 찾아갔다고 한다.그 부대에서는 면회가 안 된다고 하더니 하도 끈덕지게 졸라 대니
장교가 나와서 ‘그런 사람은 이 부대에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를 들었다.
그럴 리가 없고 이건 무슨 착각이라고 생각한 이 사람은 그 여인과
전화를 해봤으나, 전화가 갑자기 불통이고, 그 오빠란 사람에게 연락
하니 전에는 그렇게 상냥히 살갑게 대하던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면서 ‘다시는 전화를 걸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외
국에서 그 많은 돈을 불법으로 미국에 들여온 당신은 돈은 압수되고
FBI에 잡혀간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송금한 돈이 당신이 범
인이란 증거라고 되려 호통을 치고 다음부터는 전화 불통이 돼버렸단
다.
기가 막힌 이 사람은 그 여인이 그럴 사람이 아니고 이건 그 오빠
를 위시한 돈에 탐난 사람들의 농간이라고 믿고는 사방으로 알아본다
고 힘만 빼고 속만 썩이다가 자기가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아차렸다고 한다.
창피해서 아이들이나 남에게는 말도 못 하고 끙끙 앓다가 나를 찾
아온 것이다.
이런 비슷한 상담을 내가 직접 받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사기
꾼들은 꼭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 심리를 이용하고는 불법적인 일에
끌어들여서 공범(共犯)으로 만들어서 고발도 못 하게 만드는 것이 상
투적인 수법이다.
모든 일을 다 변호사하고 상의하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이 이런 어이없는 사기에 걸려든 것을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건 전형적인 Romance Scam으로 홀로된 부자 동양 노인을 주 타
켓으로 하는 사기 사건이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하는 이 고객의 문제를 시원히 해결해 줄 아
무 방법도 없다는 말을 듣고는 낙심천만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이 노
인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쓰려왔다.
미인계를 써서 늙은 사람 마음, 꺼진 불에 불을 지펴 놓고는 그것
을 이용해서 사기를 놓은 이 국제 사기단은 그동안 사냥감을 찾아다
니다가 이 사람을 만나서 다 분석해 보고 작심하고 달려든 데에 할
일 없이 걸려든 것이다.
어떻게 하든 이 여인을 만나면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이분에
게, 처음부터 그런 여인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5백만 불 운운도 다
사기라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직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한다.
다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이야기 중에 내심(內心)을 내비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늘그막
에 타오른 애정에 속았다는 것이 죽고만 싶은 심정이라고 한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달 후 갑자기 아버지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아들에
게서 받고는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사기꾼들에 대한 분노에 치를 떨
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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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mance Scam - 누가 이 사람을 죽였는가? | 웹관리자 | 2024.01.15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