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나무가 있는 풍경

웹관리자 2024.01.15 13:19 조회 수 : 16

 

 

비파나무가 있는 풍경

 

낡은 홈스펀 외투 위로 내리는 첫눈 향기였다

 

꽃잎 송송이 시린 손을 꽂고

뱃소리 저문 겨울 바다를 건너는

꽃잎들의 길을 따라 돌아오는 물결들을

비파나무에 기대어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아직 여물지 않은 도다리 새끼들은

뻘을 물고 잠든 바닥을 울리지 않고

빨리 달리는 말처럼

2월의 짧은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등대 뒷산 바람들은 긴 생각을 흘리며

밤의 종패(種貝)들을 감싸 안은 나뭇잎 사이

겹겹이 밀려오는 비파소리에 부서지고 있었다

 

눈물을 깨우며 일어서는 파도의 손가락들은

 

얼마나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인지가장 깊은 호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잉크들은

끝없이 편지를 쓰고

 

부치지 못한 채 밀봉된 녹청색 바다가

굽 언저리 돌아오는 이도다완 비색(枇色)의

달빛으로 익어가는 바닷가 언덕

 

어두운 바다를 들여다보는 밤마다

빛의 사다리를 출렁이며 둥근 달무리들이 부서져 내리고

키 큰 회색 어깨너머 황금빛 소리의 바다는

 

첫눈 향기로 혀끝을 맴돌고 있었다

높은 ‘라’음(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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