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웹관리자 2024.01.15 13:38 조회 수 : 3

 

40년 전

 

정확하게 40년 전이다.

그러니까 1983년 2월에 27살의 나이로 한국을 떠나 이곳 미국 뉴

욕에 도착했다. 그해엔 유독 이곳 뉴욕에 눈이 많이 왔었다.

뉴욕 방 한 칸 스튜디오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의 모습은 그렇게 생

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직장에 나간 집사람을 집에서 혼자 멀뚱치 기다리기보다는 빨리 나

도 직업을 구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학업을 계속할 거라는 생각은 이미 접어 둔 상태였으며, 결혼을 해

서 가정을 이루었으니 해야 할 첫째 일이 그 당시의 나의 생각으로는

무엇을 하든 우선 경제적으로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

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린 너무도 가난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없음으로 우리가 슬프거나 괴로워서 잠을 못 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우리에겐 젊음이 있고 앞으로의 시간이 있었다.

빈손으로 무작정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단순하고 용감했다.그리고

바로 며칠 후엔 양파와 감자를 다듬는 일로 뉴욕 빈민촌의

한국인이 주인인 어느 야채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흙이 묻은 감자와 양파를 다듬고 저울에 달아 일정량을 플라스틱

봉지에 담는 일이 처음 한 일이다.

여자 손처럼 하얗던 내 손바닥이 엉망이 되었다.

다음엔 시금치와 파를 다듬는 일을 시작했다.

그냥 밭에서 거둬드려 큰 통에 담겨온 것들을 보기 좋게 다듬고 빨

간 고무줄로 가지런히 묶는 일이다.

차가운 겨울 날씨에 드디어 손등이 터지고, 손톱 끝은 까맣게 되었

다. 레몬을 잘라서 손톱 끝을 문지르다 보면 손등이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매주 토요일이면 주급을 받아 주머니에 넣고 오는 저녁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뻑적지끈하다.

손이 굳어서 뻣뻣했다.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기합이 없으니까 할 만했다. 같이 일하는 다른 한국분이 있

는데 한마디는 나하고 좀 다른 일이다. 손에 흙이 뭍 지 않는 일이다.

나보다 상위 직급이다. 과일을 만지는 일이다.

나처럼 흙 묻은 것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사과, 오

렌지 등을 정리하고 디스플레이 한다.

그분이 일을 그만두던지 혹은 내가 경험을 쌓으면 그 일을 해서 손

에 흙을 대지 않게 된다.

언제가 될는지 모르지만....... 드디어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과일도 만지게 되었다.그러나 이 일은 더 어려웠다.

동글동글한 과일을 모양 있게 쌓아 올리는 일이 그리 간단하게 되

질 않았다.

쌓으면 허물어지고 또 허물어지고....... 진땀이 흐르는 기간이 한동

안 계속되었다.

주말이면 제법 손님들이 많다. 주말에는 고객들이 오기 전에 빨리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영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주로 하는 일은

밖에서 진열해 놓은 야채 과일을 지키는(?) 일이다.

지키고 있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냥 오가면서 거저 가져간

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절

로 웃음이 난다.

80년대 초 이곳 뉴욕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직장으로 최말단 단순

노동이다.

몇달 전 만하더라도 양복입고 와이셔츠에 넥타이 매고 사무실 책상

에서 결재 서류 작성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여기 뉴욕시 빈민가

야채과일 가게에서 흙 묻은 파를 다듬고 있다.

그래도 하나도 서럽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로 신기하기만 했다.

흑인 여성고객들이 주로 오는 야채 과일가게로 며칠 일하니까 영어

로 한 두 마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졌다.

야채 과일을 저장하는 큰 냉장고실 속에서 페인트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사다리를 세우고 페인트 통을 들고 벽을 페인트하는 일이다.

 

수필신인상 ‧ 이주용 371

생전 처음으로 페인트 붓을 들었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붓에 페인트를 적셔서 벽에 문지르면 된다. 단순한 일이다. 못할

게 없다.

냉장고실 벽이 나무로 되어 있어서 방수 페인트를 해야 했던 것이

다. 한쪽 벽을 끝내고 다음 벽으로 옮기려고 사다리를 내려오는 순간

이다.

이때 다 한 손에 든 페인트 통 때문인지 그만 몸의 균형을 잃고 말

았다.

아차 하는 순간 사다리가 쓰러지고 난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왼쪽 손으로 시멘트 바닥을 짚었는데 왼쪽 팔뚝이 매우 아파 왔다.

그리고 붓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진 것이다.

앰뷸런스 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Emergency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참에 팔뚝이 아파

오른손을 들어 왼손 팔뚝을 어루만지는데 갑자기 그날따라 시커먼 나

의 손이 그렇게 서러웠다.

뜨겁게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손등이 하얗게 드러났다.

아주 하얗게....... 그날 저녁 병원 밖에선 하얀 눈이 그리움처럼 서

러움처럼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뉴욕에서의 삶이 이제 딱 40년이 되었다.

 

(제 31회 뉴욕문학 신인문학상 가작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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