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n으로 쓰고 Sun으로 읽는

웹관리자 2024.01.15 14:13 조회 수 : 3

 

Tun으로 쓰고 Sun으로 읽는

 

모기가 사라져 간다.

모기의 극성 때문에 참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모기는 보이는데 공

격은 사라졌고, 그러면서 차차 모기 개체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살만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세상이란 모기 외에도 온갖 골칫거리들

이 넘쳐나는 곳. 더구나 지금은 겨울이다.

꼭두쇠는 모기가 사라진 것이 ‘속임수’ 때문임을 안다. 자기가 파는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기에게 포만을 유발하는 먹이

를 주어 굶겨 죽일 거라는 기사였다. 위장은 비었는데 배불러 죽는

것. 성공한 속임수의 미덕이다. 사람들이 위를 잘라내 포만감으로 자

신의 배를 속이고, 식욕을 억제하는 약으로 자신의 뇌를 속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 인간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스스로 기꺼이 선택

한다. 외계인도 그렇게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유명 연예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벌어진 폭행 시비와 관련해 경찰

이 피해자를 폭행했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은 하루

만에 참여 인원 13만명 (2019년 1월 29일 오후 5시 기준)을 넘어섰

다. 이날 자신이 해당 사건의 피해자 K(28)씨라고 주장한 청원인은

‘경사 ***, 경장 ***, 외 ***에서 뇌물을 받는지 조사 부탁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청원을 시작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은 지난해 11월 24

일 클럽 ‘썬’에서 발생했다. 피해자라고 주장한 K 씨는 당시 클럽에서

관계자와 보안요원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고, 신고자가 자신인

데도 출동한 경찰들에게도 폭행을 당하고 뒷수갑이 채워져 연행되었

다.(출처 : 한국일보)

 

이것이 오늘의 주요 기사다. 이 기사 때문에 오늘은 신문이 잘 팔

린다.

뻔해. 경찰들이 무슨 오해를 해서 실수한 게 아니라고. 도리어 돌

아가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거지.

지금 거리에 멈추어 선 행인들은 신문에 실린 사진과 길 건너에 있

는 ‘썬’의 입구를 대조하면서 번갈아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갑자기 이쪽 길의 인기가 짱이 되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새삼스럽게

‘썬’을 바라다보며 발길을 멈춘다. 구경꾼들도 몰려온다. 그 덕에 모

퉁이에 나타날 군밤장수가 오늘은 한 몫 하겠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중요하다. 군밤장수와 꼭두쇠는 용무가 급할 때 서로의 가게를 보아

주는 공생관계다.

방송 차량들이 몰려와 길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썬’에서 한길을

건너면 바로 꼭두쇠의 간이 신문판매대여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이

그에게 여럿 다가왔지만, 그는 인터뷰를 안 하겠다는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손사래만 친다. 시간을 낭비한 방송사 직원들은 그가 농인인

가보다 생각하며 재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 뛰어다닌다. 꼭두쇠는 말

이 소금 맛을 잃어 길거리에 버려진 지 오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 장수 씨 오시네. 집사람 수레 먼저 끌어다 두고 오는 게지.

군밤장수는 손수레를 밀고와 그의 간이 매장 바로 옆에 자리를 잡

는다. 좀 떨어진 코너가 잘 팔리는데...... 이 사람이야 말로 농인이라

서 오늘 돌아가는 분위기가 영 불안하다. 가게는 간이 매장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유리로 된 가건물인데다 일이 끝나면 셔터를 사방팔방

다 내리는 국가 인정 신문판매대다. 그렇다고 신문만 파는 건 아니고,

껌도 과자도 음료수도 잡지도 판다. 군밤만 빼고 무엇이든지 팔고 싶

은 게 주인의 심정이다. 꼭두쇠는 한평생 여기서 일했다. 유리 밖 가

판대에서 행인이 집어드는 물건값을 재빨리 받아야 하기 때문에 여름

이고 겨울이고 앞 유리창을 활짝 열어 두어야 한다. 대략 6자와 3자

인 가게 안에 선풍기를 돌리고 전기히터를 켜며 견뎠다. 그는 가을이

좋다.

오늘은 반품할 신문도 없이 일찍 완판이다. 불안한 분위기에 겁을

먹은 군밤장수는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서 그가 내민 신문을 들여다

본다. 물론 꼭두쇠는 신문에 나온 그 모든 장면의 목격자다. 유일하

게 열 수 있는 유리창 쪽 말고 180도 뒤로 돌아서면 유리벽 너머로

길 건너 ‘썬’이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게 절로 보인다. 2018년 11월 24

일. 꼭두쇠가 꼭두 새벽에 신문을 받아 놓으려고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싸움은 벌어져 있었다. 흰 후두를 입은 청년이 사람들에게 매를

맞았고, 곧 경찰차 두 대가 나타났지만 경관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

서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높으신 분들이 ‘썬’ 입구에 태양처럼 뜨신

다음에야 그들은 천천히 차에서 내려 흰 후드의 남자를 낚아채고 수

갑을 채웠다. 그리고 그를 연행해 갔다. 남은 사람들은 손을 탁탁 털

기도 하고 담배를 피워 물기도 하고 침을 뱉기도 하며 여유를 부리다

사라졌다. 그게 지난 11월에 있었던 오늘의 기사 내용이다.

가관이네요.

꼭두쇠는 듣지 못하는 군밤장수에게 말한다. 못 들어도 상관은 없

다. 안 듣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에게 항상 문어체로 고상

하게 말을 건네려 한다. 이 요지경인 세상에서 자신의 인격을 유지하

기 위한 거의 유일한 언어구사다.

방송사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이번에는 인플루언서들이 등장

한다. 정말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은 방송사 기자들보다 더 극성이다. 어떤 이는 꼭두쇠

에게서 물을 사서 자신이 들고 온 빈 꼬냑 병에 붓는다. 카메라 앞에

서 그걸 흔들며 저 안에서 파는 만수르 세트에 이게 포함되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은 그걸 매일 마신다고도 떠든다. 그의 날개는

오스트리치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지만, 그 거대한 날개로도 오스

트리치는 날지 못한다. 꼭두쇠는 군밤장수를 내다보며 또 한마디 던

진다.

어디, 날아오르는지 두고 봅시다.

어떤 이는 사람들을 헤치고 ‘썬’ 로고 앞까지 간신히 진입해 먹방을

진행한다. 그는 “저 안에서 뭘 먹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

은 이것도 충분히 맛있지 않습니까,” 라며 냠냠 치킨을 뜯는다. 그가

그 말 끝에 ‘?’를 붙일지 ‘!’를 붙일지는 뻔하다. ‘!’를 붙일 사람이라면

여기 오지도 않았다. 꼭두쇠는 그에게 바셀린을 한 병 팔았고, 그는

말라서 퍼석한 치킨에 그것을 정성껏 발랐다. 코스프레는 다양하고

치열하다. 다 저 ‘타오르는 태양’의 안쪽이 부러운 것이다.

참 애쓰며 사네요.

거리를 메운 사람들 때문에 차량 통행이 멈추었다.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고 떠밀고 또 용케 빠져나간다. 꼭두쇠는 쪽문을 열어 놓고 일

이 바쁜 군밤장수를 도와 군밤도 판다. 손수레가 사람들에게 밀려 엎

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대 소란을 하나도 듣지 못하는 군밤장

수지만 그도 고요하지는 않다. 귀는 사방의 소리를 듣지만 눈은 전방

만을 보여주는 법이다. 그는 자꾸 뒤를 돌아다본다.

“아하, 우리 아버지!”

군중 속에서 짜잔하며 아들 상쇠가 나타난다. 일대가 다 막혀서 한

참 걸었다고 투덜댄다. 꼭두쇠는 대답하지 않는다. 상쇠는 궁전 옆에

초라하게 빌붙은 초가집, 그 곁에 허접하게 기대 놓은 군밤 수레를

눈을 부라리며 발로 찰 기세다. 어디 이런 걸 감히 내 집 옆에다. 꼭

두쇠가 때맞춰 벽력 같은 “어딜!”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뜨거운 수

레는 군중들 사이로 엎어져 화상자와 부상자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자를 낳을 뻔했다.

상쇠는 아버지에게 좋지 않은 낯빛을 보인 적이 없다. 언제나 웃음

으로 대한다. 자신의 사업을 네 번 말아먹었지만, 나이 탓인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웃음이 카르마가 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네 번의 사업

실패 끝의 다섯 번째 휴지기다.

“아버지, 인터뷰했어요? 텔레비전에 막 뜨던데, 인터뷰하려면 우리

아버지보다 더 적절한 인물이 어디 또 있겠어! 기자들이 오면 사양하

지 말고 제까닥 응해요. 유명해지면 장사도 잘 된다니까.”

꼭두쇠는 대꾸를 하지 않고 일부러 군밤 파는 데 더 열을 올린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래도 사정이 좀 나았다. 그와 아들 사이

에 아내라는 범퍼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쇠 녀석 얼굴을

마주 대하기도 힘이 든다. 그의 와이프를 보는 건 더 힘들다. 며느리는

노골적이고 아들은 위선적이다. 아들의 위선의 껍질은 아주 얇다. 그

얇은 껍질은 벗겨져도 문제고 안 벗겨져도 문제다. 벗기면 이 가게를

넘겨야 하고, 안 벗기면 오늘처럼 흰소리를 들으며 울화를 참아야 한

다.

상쇠가 첫 사업에 실패했을 때 꼭두쇠는 자신의 가게를 한 번 맡아

서 해보라고 권했다. 상쇠는 명쾌하게 거절했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싫댔다. 마진율이 적고 허접해서 싫댔다.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하니 건강에 좋지 않댔다.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게 불가능하

댔다. 어름산이 공부시키는 돈도 안 나올 거라고 했다. 6자 곱하기 3

자 유리 박스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할 수 없댔다. 그냥 팔아서

달랬다. 그러고보니 아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자연스럽게 빼도 박도

못하는 자기 것이었다. 이제 그는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냥 자

기 것으로 생각하고 기다린다.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

다. 꼭두쇠의 입장에서는, 아직 신문에 날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효

자라고 할 수 있다.

“불타는 태양, 불타는 썬! 버닝 썬!”

이 길에서 지금 제일 많이 들리는 소리가 “불타는 썬!”이다. 여기서

저기서 그 말이 공명한다. 상쇠도 무슨 구호처럼 “썬이 불타고 있다”

며 자랑스러운 듯 주위를 둘러본다. 오늘이 아마 그가 일생 중 가장

아버지를 존경하는 날일 것이다. 노인네가 명당을 보는 눈썰미는 있

어서....... 그는 신바람이 난다. 꼭두쇠는 아들에게 ‘네 눈엔 그게 ‘썬’

으로 보이냐?’ 라고 말한다. 헛 가르쳤다고도 생각한다. 실제 말을 한

건 아니고, 그냥 속말로 한 것이다. 그는 아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지관을 해도 돈을 만졌을 아버지가 천지가 개벽해

도 어제나 오늘이나 그저 신문 등속이나 팔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

지 오늘은 군밤까지 판다. 사람은 많고 날은 추워서 군밤은 잘 나간

다. 이런 시점에는 더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아버지의 고지식과 완고

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제 바야흐로 팝 컬처 사적지가 될 게 뻔한

‘썬’의 지하 입구! 진입로에서 셀카를 찍어 두어야 한다. VIP입구가

따로 있다는데, 그곳도 탐사해야 한다. 사진은 자신의 가게와 각도를

잘 맞춰서 한 폭에. 그는 휴대전화를 높이 치켜들고 찌질한 대중들을

헤치고 나아간다. 그러기 전에 그는 평소의 버릇 대로, 아버지 가판대

에 놓인 ≪맥심≫ 최신호를 하나 낚아 채는 걸 잊지 않는다. 오늘은

군밤도 한 봉지 챙겼다. 요즘은 나이 드는 것이 자못 억울해서, 게재

에 유행하는 초록색 공항패션으로 단장했다. 눈에 띄게 우쭐거리며

활보하는 아들의 뒤꼭지를 보며 꼭두쇠는 한숨을 쉰다. 군밤장수의

주머니에 밤값을 찔러 넣으며 그가 중얼거린다.

민망합니다.

사람의 행동에 ‘적정 수준’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난장판이 없다.

모두를 말과 몸짓과 손짓과 속도와 범위를 잊고 마냥 요란하다.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보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짧은 겨울해가 뉘엿 질 때쯤 군밤도 다 나간다. 군밤장수는 꼭두쇠

에게 진 신세를 생각하고 마지막 군밤 봉지를 들고 가게로 들어와 나

누어 먹는다. 점심 먹을 짬도 없었다. 꼭두쇠는 뜨거운 물을 끓여 대

접한다.

말없이 둘이서 밤을 먹으며 서 있는데 여자 하나가 사람들의 난장

을 요령껏 피해가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얼굴이 조막만 하고 키도

조막만 하고 피곤에 절었다. 여인은 말없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하

고 꼭두쇠도 마주 인사를 한다. 여자는 다른 길가에서 호떡을 팔고

오는 길이다. 오늘은 그쪽도 경기가 좋았나 보다. 여인에게도 세상은

음향 없는 고요의 바다지만, 그곳도 마냥 고요하지만은 않다.

어서 어서 들어들 가세요. 오늘은 일찍 쉬시게 됐네.

꼭두쇠는 어서 가라는 시늉을 하며 그들을 내보낸다. 팔을 휘휘 저

으며 여기서 길을 건너지 말고 골목을 돌아 빙 우회하라는 말을 그들

은 다 알아듣는다. 말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 때문에 알아듣는 것이

다. 녹슨 드럼통이 얹힌 수레 두 대를 밀며 그들은 ‘썬’의 반대쪽으로

사라진다. 그들에게는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할 딸이 있다.

가판대를 접고 물건을 안으로 다 들여놓는다. 히터를 바싹 당기고

의자에 앉아 있자니 졸음이 몰려온다. 이곳은 군중 속의 오아시스.

상쇠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창을 닫았지만 이따금 사

람들이 유리를 톡톡 치며 이것저것을 사간다. 빈 집에 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으므로 좀 더 앉아 있기로 한다. 언 줄도 미처 몰랐던 몸

이 차차 녹는다.

별을 보며 집을 나섰던 셀 수도 없는 새벽들이 있었다. 콘크리트

프라이팬에 올려져 지져지던, 지져지는 줄도 몰랐던, 무수한 여름이

있었다. 피부 속 3센티미터까지를 얼리는 공기얼음이 그를 따라다녔

다. 얼려지다가 날이 풀리면 마이크로웨이브의 ‘녹이기’ 버튼을 누른

듯 몸이 풀리고, 지져지다가 날이 선선해지면 티도 안 나게 입었던

화상이 꾸득 꾸득 아물어갔다.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겨울을 무사히

견딘 건 모두 몸 깊이 매장되어 있던 생이라는 석탄 때문이었다. 이

제 그 석탄의 매장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무런 원도 없소이다.

내일 천지가 무너져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꼭두쇠는 내일 천지가 무너져도 매일 꼭두새벽엔 집을 나설 것이다.

천지가 무너지기 전에 군밤장수가 오늘처럼 군밤을 많이 팔기를 바라

지만, 그것이 원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들 내외를 제외

하면, 그가 아는 거의 모든 지인들이 ‘썬’의 지하에 있는 아방궁으로

앞다투어 이사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그들의 원이다. 거기서

앙리 4세 그랑 샹파뉴를 매일 마시고 싶어 한다. 그렇게, 원하는 바

대로, 그대로 되어라.......

모두들 몰려간 아방궁으로 인해 지상은 비었다. 하늘을 날던 새는

무료로 인해 방향을 잃고 떨어지고, 여우는 길어지는 우울증을 견디

다 못해 굶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연어는 아예 회귀를 포기하고, 오랜

발자국으로 생겼던 길은 스스로 제 길을 닫고...... 바람만이 그악스런

식물에 둘러싸인 이 유리방을 감싸며 휘몰아친다...... 그래도 그는 졸

면서 거기, 유리 상자 속에, 바람 속에...... 앉아 있다. 살아 있는 건

그가 아니라 바람이다. 그는 풍장 중이다.

달리 무엇을 하겠습니까?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 뛰어든 세상의 자

리가 바로 여긴데......

그래도 말은 안 할지언정...... T를 S로 발음해 주지는 않을 참입니

다......

말이 소금기를 잃었으니, 세상을 직시하는 확실한 눈 하나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증인이나 목격자 같은 그런 거 말이에요.

이유는 모르지만, 그게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멩이 하나,

언덕 하나, 농인 하나, 노인 하나라도....... 천지가 무너진 후 주인도

없이 물끄러미 서 있을 사과나무처럼...... 주인이 천지 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사과나무가 말해주지 않겠어요?

‘썬’ 앞에 긴 줄이 늘어서기 시작한다. 매스컴을 타서 그런지 오늘

은 줄이 더 길다. 아직은 개장이 시간 반이나 더 남았는데도...... 세

상에는 온갖 사람, 온갖 사례들이 다 있다. 지금은 말을 은폐하는 말

이 대세고, 태양처럼 빛나는 나쁜 놈 속에 내장된 부귀와 영화가 대

세다. 단골 손님은 일찌감치 VIP입구로 입장했을 거고, 아방궁을 구

경이라도 하고픈 하루치기들은 긴 줄을 참으며 음료수와 빵으로 자신

의 재정을 축내고 서 있다.

“할아버지!”

이번에 창을 똑똑 두드리는 건 어름산이다. 지 부모가 최고의 교육

을 시킨다며 보딩 스쿨로 유배시킨 녀석이다.

“응, 얼른 들어와. 춥겠다.”

곧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때로 몰려다니며 무

서운 아이들이 되기도 하겠지만, 꼭두쇠는 이 아이들의 위악이 차라

리 괜찮다. 아비의 위선은 가볍고, 아이의 위악은 무게가 좀 있다.

“웬 줄이에요?”

설명을 해주며 묻는다. “너 보기에 저게 Sun이냐, Tun이냐?”

어름산이는 줄타기를 하듯 가볍게 밖으로 나간다. 사람들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며 자세히 보고 오겠다고 한다. 그는 사진을 찍어

돌아온다.

“Tun인데.”

“네 눈에도 Tun이지?.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Sun으로 읽는다.

한 사람도 T라고 항의하지 않아. Tun이 무슨 뜻이냐?”

“술통.”

Tun으로 쓰고 Sun으로 읽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읽어 주는 대

로 Sun이라 따라 읽고, 합창하고, 그러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

고, 빼도박도 못하는 Sun이 된다.

꼭두쇠는 가게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고 어름산이와 함께 식당에

가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먹는 것보다 드러눕는 것이 더 고프다. 할

아버지 집에 가서 자자는 꼭두쇠의 제안을 뿌리치고 어름산이는 할

일이 있다며 휘황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또 한 번의 꼭두새벽.

지하로 들어가는 ‘썬’의 요지경 입구를 지나가는데 새 간판이 보인

다. 위악이 응징해 바로 잡은 위선. 그래피티. 태양이 불타던 곳에는

커다란 술통이 놓이고, Tun인지 Sun인지 위에는 알파벳 정자가 볼드

로 덧입혀졌다.

Burning TUN

아직 마르지 않은 페인트가 반짝, 가로등 불빛에 빛나고, 오늘의 첫

햇살은 증인처럼 술통의 술을 익히기 시작할 것이다.

흠, 누군가는 새 단어를 배울 수 있으려나?

 

23 한영국 소설 속 사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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