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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꽃 길을 걸으며 / 이경애

웹관리자 2025.08.16 14:30 조회 수 : 96

 

레이스 꽃길을 걸으며

 

이경애

 

나는 최영선회장 때 등단을 했다.

그 동안 나는 미국에서의 문학활동을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한인마켓에서 장을 보고 우연히

딸려온 신문광고 한 귀퉁이에 난 <뉴욕문학 신인상 공모>를 발견했다. 그것은 공모기간이

끝났으나 일주일을 연기한다는 세줄짜리 광고였다. 나는 놀라움과 흥분으로 마음이 들떴고 새로운

글을 쓸 여유는 없었다.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 써 놓은 글을 원고지에 다시 써서 광고에 실린

연락처로 전화를 했더니 회장은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사시는 분이어서 직접 가지고 가서 원고를

제출했다. 그렇게 나는 미동부한인 문인협회의 일원이 되었고, 쌓여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었다.

 

몇 년 후, 2014년 여름 하운회장님 때 나는 수필분과위원장을 맡아 수필분과 행사를 포코노 청솔

쉼터에서 1박2일 동안 가졌고, 다음 해에도 같은 곳에서 1박2일 동안 수필 분과 두 번 째 문학모임을

가졌다. 레이스 꽃 만발한 들길에서 우리 회원들은 소녀같이 환하게 웃으며 노래하고

사진도 찍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림같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명수필을

해석하여 발표했고, 자신의 작품들도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그 때 참석했던 분들 중에

4분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정재옥, 김명순, 양정숙, 이경희선생님이다. 내게는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던 분들로써 갑작스러운 비보에 몹시 당혹스러웠다.

 

정재옥선생님은 우리 수필분과의 선배로써 내게 따뜻한 관심을 주셨고, 업스테이트 숲속의 그의

집에 한국문단의 문인들이 오면 나도 초대해 주어 한국 유명 문인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김명순선생님은 한국 수필계를 전혀 모르던 내게 월간 <한국 수필>공모를 알게 해주어 거기에도

응모하여 한국의 수필계에도 등단하게 되었다. 양정숙선생님은 수필분과 부위원장으로 나와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여서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경희선생님은

나와 같은 뉴저지에 살면서 가까이 사는 협회회원들 몇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였다. 그가

양로원에서 돌아가시기 전, 찾아갔을 때 새로 나온 <뉴욕문학>을 갖다드렸으나 반가와

하지도 않고 거들떠 보지도 않으시는 걸 보고 치매가 많이 진행되었구나 알 수 있었다. 간호원이

선생님의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남았다고 내게 귀뜸했다.

 

2009년 내가 우리 문인협회의 일원이 된 후로 그 동안, 최영선(제12대), 김자원(제13대),

이전구(제14대), 하운(제 15대), 윤관호(제16대), 황미광(제 17대), 양정숙(제18대), 노 려(제 19대),

지금의 윤영미(제 20대) 회장까지 우리 문인협회를 이끌어 가며 노심초사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35년 전, 우리 문학단체를 처음 만든 원로, 선배선생님들의 공적과 더불어 지금의 8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리는 미동부 최대의 문인협회가 된것은 이들의 헌신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처음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우리 문인단체의 문앞에 섰을 때, 글을 쓰는 이 사람들은 이슬만 먹고

살꺼야 라는 3살짜리 어린아이 같은 공상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며 가끔 웃는다.

 

바라기는 먼저 들어 온 우리들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며 따뜻한 말로라도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 우리 후배들도 우리협회를 위해 열정을 가지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와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협회의 위상은 곧 우리의 위상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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