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뭇잎
누런 나뭇잎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아직은 가을이라고 우기며 두툼한 파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졌음에도 크기도 다르고 바랜 색도 약간씩 다르다. 어? 분홍색이다! 그런데 촌스러운 분홍색이 아니라 고상한 분홍색이라서 더 더욱 눈이 간다. 갈색을 바탕으로 분홍색을 만들어서 고상하게 나왔는가 보다. 주으려 하니 바사삭 부서진다. 예쁘던지 밉던지 상관없이 에너지를 다해 떨어지면, 형태의 존재를 잃고 무너져 버리는 모습은 똑같다. 그저 어떻게 살았길래 그리 예쁜 분홍색으로 물들어졌을까? 하고 물어본다.
떨어져 버리기 전, 예쁜 색깔로 팔랑팔랑거리고 있을 때 우리는 가을 단풍 구경이란 타이틀로 짙은 감동과 함께 마주한다. 불과 몇 달 전, 옅은 연두빛으로 싹을 틔우고 싱그러운 초록 숲으로 안식을 주었던 시간들을 무던히 보내고, 이제는 하나둘씩 크기도 약간씩 달리, 빛깔도 다양하게, 떨어지는 시간도 다르게 너풀너풀 제 속도를 즐기며 하강한다.
연둣빛으로 세상을 봄기운으로 가득한 숨 막힌 벅찬 순간이 있었고, 찌는 더위속에서 짙은 초록색 그늘을 만들어 가슴 터진 시원한 순간들,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찬란한 색의 순간들, 갖가지 나뭇잎들이 빚어낸 짙은 산냄새로 묵은 기억이 소환되던 아하! 하는 순간들, 하나씩 떨어져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순간들, 하늘색과 어울어져 고운 빛 단풍으로 눈이 번쩍 뜨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즐거움과 큰 기쁨을 준 순간들만 있었으랴? 폭우와 천둥과 번개, 추위와 더위, 강한 바람에 버텨야 했던 순간들, 이유없이 팽 뜯겨져 버린 순간들, 산불로 질식해서 기절했던 순간들, 포식자들이 행하던 공포스럽고 위험한 순간들, 벌목으로 인해 사시나무 떨듯 두려웠던 순간들, 가뭄으로 잎사귀 끝이 쩍쩍 타들던 순간들도 있었다.
계절마다 본분을 다하여 순간에 충실하고 몰입하여, 풍성한 숲을 만들고 생기를 불어 넣어준 나뭇잎이다. 이에 새들이 지저귀며 예찬하고 햇살이 밝게 비추며 칭찬하니 연둣빛일 때부터 낙엽이 되어 떨어진 후까지 생의 존재가 확실하다. 꽃나무에 음악을 틀어주고, 물을 주며 사랑스러운 말을 하면 더 잘 자란다는 말은 관심과 예찬의 반사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낙엽의 모습으로 치닫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떤 색으로, 모양으로, 크기로 살랑살랑 떨어질까?
온 마음으로 몰입했던 순간, 영혼까지 충만했던 순간, 감동으로 온 가슴이 열렸던 순간, 깨우침에 전율했던 순간, 삶에 가슴이 뛰던 순간, 안개가 자욱해 길을 잃었던 순간, 고통의 파도가 넘실거렸던 순간, 목울대를 젖혀가며 버텨야 했던 순간, 무의미한 것들을 놓아주던 순간들로 채워진 나의 인생의 색은 나뭇잎의 분홍색처럼 예쁘게 물이 들고 있는 것일까? 서로가 감동이 있는 예찬을 많이 해주어 존재의 틀로 엮어져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