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향 가득한 유월

웹관리자 2023.07.08 19:40 조회 수 : 25

치자향 가득한 유월

 

봄이 성큼 다가오더니 갑자기 여름날씨다.

온통 천지에 노란 개나리며 수선화가  봄을  알리더니 일찍 핀 벚꽃이며 목련이 줄기에

의지해  꽃의 화려함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떨어지고  다음 피어날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더니 비로서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고운 자태를 뽐내느라 서로 앞 다퉈 꽃을 피운다.

유월 어느 밤이면 바람 타고 흘러오는  치자향기는  

언제나 그리움이 묻어  은은하게  밤하늘에 버티고 서 있는 나무 향과 함께  잔잔히 베어

온다.

 

온갖 색색이 피어난  장미가 담장에 가득 고운 꽃을 피우더니  

그토록  아름답던 붉은 장미꽃도 하얀 꽃을 피워 뿜어대는 치자향에 숨어버렸다.

치자나무 숲에 들어가면 치자 향기만  가득하여 다른 향기는 맡을 수 없다더니..

코끝을 자극하는  치자꽃 향기가  초여름 밤을 더욱 짙게 유혹한다.

치자향기를  맡으면  스물 거리며 찾아오는 추억 속에서 소박한 글이 쓰고 싶어지고

한 여름밤의 음악적  영감이 떠 오르고 한 줄의 시를 쓰고 싶어 지니..

진정 예술인들이 좋아하는 향기 같기도 하다.

어둠이 내리고 치자 향기만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아련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때는  참 열악한  시골이었다.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허름한 버스에 올라탄 고사리  같은 어린 내 손을 꼭

잡은 어머니의 분 냄새가  좋았던 기억이다.

큰 댁에 갈 때면 언제나 아버지 어머니 두 오빠들과 버스에 올라탄 나는 늘 멀미를 심하게

했다.  

 

겨우 여덟 살 남짓 한 나이었을 거다.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도시에 살던 우리는 시골로 가야 했다.

큰 아버지는 우리를 반기고 당신 딸도 나와 터울이 없어  딸의 귀여움에 특별할 것도

 없는데  항상 나를 무릎에 앉혀 이쁘다고 하셨다.

그러면  흥겨운 노랫가락을 뽑으시던 큰 아버지의  구성진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두 형제만 있었던  아버지도 노래를  좋아하셨으니 두 분이 노래를 부르시면 

어린 우리는 언제나 신났고 좋아했으니 참 소박한 시골집 풍경이었다. 

 

초가삼간 시골집에서 밥 짓는 냄새, 수박 썰어 주시던 큰 어머니의 투박한 손이 그리운

밤이다.

어릴 적 큰 댁에 가면 돌담에 걸쳐 부끄럽게 고개를 빼곡히 내민 호박꽃이 환하게 웃어주던

그 시절,

 

큰 어머니는 큰 일을 치를 때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간 아버지 어머니를 반갑게

맞아주시곤 하셨다 .

큰댁에서는 방문 간 우리를 시골 인심으로 후하게 대접해 주셨다.

오십 년 전쯤 계란이 귀하디 귀한 살림살이에 호박전도 해주셨고 아니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밀가루 묻혀 계란을 입히셨는지는..

그러나 그때의 맛은 어찌나 맛있고  고소했던지..

옛날은 가고 없다지만 더 이상 뵐 수 없으니 그리움은  더욱 커지는  유월의 치자향이 짙게

코를 자극한다.

 

사촌 오빠는 나의 오빠와 터울이 그만 그만하였고

돌담만 있던 내게..깜깜한 시골 밤에 반짝거리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도깨비불

이라고 겁을 주며 놀려대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골에서 가장 불편하고 무서운 건  아무래도  돼지가 있던 화장실이었고 

절대 갈 수 없었던 어린 나는 도깨비불이 왔다 갔다 하는 동네 길목을 찾아야 했다.

그때 어느 밤  골목에선가   바람을 타고 흘러나오는 향이 치자향이란 걸 알게 된 건

어른이 되어서다.

치자향과 반딧불이라…어린나이에도 아름다운 그날의 기억이었을것이다.

 

그 후로는  중학교 올라가면서 시골은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고 사촌들이 우리 집 도시로

찾아오면서 시골도 점점 잊혀 갔다.

어머니는 늘 큰 어머니에게서 받아오신 말린 고구마를 밥솥에 넣고 쪄 주시던  그 맛이

어찌나 달달 했던지  가끔 고구마를 보면 오분에만 굽지 말고 말려 뒀다가 밥통에 넣고 쪄

먹고 싶다.

겨울이면 귤을 잔뜩 주시니  귤은 참 많이 먹었다.

아무리 풍족한 미국이라지만  가장  그리웠던 건 아무래도 고향의 귤 맛이었다.

 

지금도 고향 방문이라고 시골집에 가면 그때의 어린 사촌 오빠인 소년은 중년이 되어

시인이 되었다니.. 아마 시골에서 자란 소박한 정서가 그를 글을 쓰게 만들었을 듯하다.

세월이 흘러 육십 대가 된 우리는 어린 시절 이야기하며 많이 웃는다.

 

지난 늦가을에 방문했던 큰 댁에서 사촌 오빠는 귤 한 상자를 주며

미국 갈 때 갖고 가라 하지만 가져올 순 없고 있는 동안 매일매일 꾸역꾸역 먹어 치웠다.

미국에선 절대 느끼지 못했던 어린 시절 먹었던 참 달고 시원한 귤 맛이었다.

큰 댁에 가는 날이면 아마 그런 귤맛과 시골 밥상에 어린 마음에도 설레기도 했던 건

아닐까?

 

기억 속으로 들어가니 고향이 그리워지니 은은히 퍼지는 담장에 가득 피어난 치자꽃 향기가

유월 여름밤을  가득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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