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즐거움

웹관리자 2023.07.08 19:19 조회 수 : 30

고독한 즐거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겨울은  얼었던  봄날의 매듭을  머리 땋듯 가지런히

봄의 기운을 땅에서 꺼낸다. 

순간 고향의 봄  냄새가 기억나지 않는다. 

유채꽃 화려한  봄날 고향 방문을 하고  싶은 일은  늘 생각 속에 머물고 만다. 

고향에서 봄을 보내고 싶다. 

 

어디서 살다왔는지 새들이 종알거리며  봄날을 물고 왔다.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줘 박씨를 선물 받은 흥부가 되었다. 

박속에 금은보화가 숨겨진 대신 매일 매일 봄기운이 새싹을 틔우게 했고  

화려한 모습으로 피어난 꽃들의 재 탄생이 숨어있어 희망적인 마음가짐도 꺼낼 수

있게 넉넉한 세상을 품은 박 속에서 나의 존재는 부러울 건 없다. 

 

오래전부터 뒷뜰을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들은 나의 애완조가 되었다. 

종알거리는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며 나를 기쁘게 했고 

긴 겨울 내내 만나지 못한 반가움에 다시 만난 부활같은 기쁨이 전해 졌다. 

반가워.. 고마워.. 고독한 시간에 날아 든 새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새밥을 줘야

하나  물을 줘야 하나..

집에  찾아온 방문객도 밥을 주고 물을 주는데.. 매일 와 주는 새들에게 어찌 보고만

있을까? 

 

빙빙 날아다니며 같은 곳을 도는 새들은 새집을 지으려다 몇

번을 실패하여 내 마음을 안절부절못하게 하더니 또 가지들을 물고 온다. 

조그만 입으로 물고 오는 가벼운  가지들을 얼마나 많이 물고 와야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조그만 존재가 뭘 할 수 있을까? 

우직한 내 손으로 가지를 한꺼번에  가져다 새집을  지어주고 싶다. 

 

자연들과 함께 하는 일, 일상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소확행이다. 

뒤뜰에 피어나는 꽃들 , 푸른 나무의 줄기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식물원에 무리지어 핀 찍어 낸 클론 같은 꽃들보다 

도란도란 몇 송이 홀로 핀 꽃들이 더 고귀하다. 

혼자서도 피어나 바람에 살랑거리며  자신을 꺾이지 않게 당당함과 의연함이

있는 홀로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약함이 더 강할 때가 있다. 

강하니 살아남는다.

살았으니 강함도 인정하고 싶다. 

 

머리를 깎고 봄단장을 하라고  재촉하듯 부산스러운  기계소리도  들린다. 

자연처럼 사람도  봄날엔 더 분주하다. 

 

자연과 벗 삼는 일은 고독해야 가능한 일이다. 

바쁘게 살아갈땐  눈에도 마음에도 안 들어왔던 일상의 버거움과 바쁨 힘듦 속에서 보이

지 않았던 생명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혼자 있어도 가능한 고독함을 즐기는 일은 둘이 있어야 해결되는 외로움과  달랐다. 

고독은 자유라 맘대로 감정을 조절한다. 

혼자 기쁘기도 즐겁기도 슬프기도 하며 자기감정을 쥐락벼락한다. 

혼자 즐기는 고독 속에 가끔 풀려버린  실타래처럼 흐물거리며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

은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가득 해지며 고독에 물들어도 좋다. 

 

고독도 태초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 나와 자기 의지에 상관없이 주어진  삶은

정해진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독함은 기다림이다.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두려움이다. 

고요함 속에서 나를 찾는다. 큰 기쁨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찾을 순 있다.

 

지인이 고독사를 했다. 

고독이 뭔지 즐길 줄 몰라 죽는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몰라 죽는다. 

자신과 놀 줄을 몰라 그렇다.  

외로움을 오래 묵히면 푹풍처럼 악마가 된다던 어느 시인의 글을 몰라 죽는다. 

자기 안에 가둬서 나올 줄 몰라 죽는다. 

 

혼자는 악마의 유혹에 빨리 물든다. 

아픈 일도 혼자여서 더 쉽게  고통을 느낀다. 

말할 사람이 없어 기계와 노는 나날은 즐거움을 갖는 대신 하나씩 하나씩 죽여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세상 이치를 우리는 안다.  

 

붉은 와인은  악마가 바빠 놀아주지 못해 대신 보낸 선물이란다. 

때론 선물을 고맙게 받는다. 

고독도 즐기면 휴식을 위한  봄날로 이어진다. 

그래서 좋다. 

고독이란 이름이...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