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겨울 산 의 단상

웹관리자 2023.06.15 12:56 조회 수 : 25

뉴욕 겨울 산 의 단상

 

 

산은 사람에게 기를 주지만, 바다는 기를 뺐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반추해보니 바다를 보고 왔던 날은, 자석처럼 딸려온 끈적끈적한 습기와 노곤함으로 절여진 배추였다. 반면에 산행을 했던 날은, 다리는 땡 길망정 머리는 별이 초롱초롱 떠있을 만치 명징했다. 몸도 갓 뽑은 초록빛 무청처럼 쌩쌩했다. 자연히 바다보다 산을 즐겨 찾게 됐다.

뉴욕 근교에 있는 산들은 낮지 않아도 험준한 산세는 아니다. 경사가 완만한 구릉들이 다정하게 어깨를 겯고 있는, 순하고 살가운 자태다. 바위들도 뾰족한 성상이 아니라서 오르는데 부담이 없다. 생 초보 등산가인 내겐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사로잡힌 건, 자연의 눈과 마음으로 마련된 자연친화적인 등산로였다.

처음엔 등산객이 적어서 무심히 방치해둔 산인 줄로 알았다. ‘길을 잃기 딱 좋네!’하면서 주위를 살피니까, 10m정도의 간격으로 나무나 바위에다, 빨강이나, 노랑, 파랑, 흰색으로 네모지게 페인트칠을 해놓았다. 축구경기 때 주심이 꺼내드는 반칙카드 같다. <흰색에 빨강 점이 찍힌 건 일장기가 떠올라 그 코스는 사양하고 싶다.> 그렇게 나무에 활쏘기 과녁 같은 것이, 바로 길 안내 표시였다. 등산객은 그날 선택한 코스의 색깔만 따라가면 된다. 어떤 산은 옆 산과 앞, 뒷산이 악수하고 있는 형상이라, 등산로를 여러 개씩 품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차로에 있는 나무나 바위는, 옐로카드에다 레드카드까지 받고는 울상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서 두리번거릴 때, 어김없이 등대 불 마냥 손짓하는 직사각형 딱지가 친구처럼 반갑다. 너무 원색적이라 유치하고 튀어 보이지만, 사람에게 보물찾기를 시키는 숨겨진 재미를 감추고 있다. 같은 색의 카드를 두개씩 그려놓은 건 커브 길임을 암시해준다.

그토록 세심하고 친절하게 안내표적을 부착해놓고도, 정작 산행로는 왜 정비를 안 했을까? 의아심이 들었다. 그런데 계속 그 표적만 추적하다보니 이상하게도 수월히 걸어졌다. 그제 서야 걷고 있는 그 길이, 바로 예비해둔 등산로라는 걸 눈치 챘다. 콘크리트와 시멘트 한줌, 철근 한 가닥 없다. 태고의 산 그대로 존재하듯이, 자잘한 바위와 돌, 고목의 부러진 가지와 흙이 자연스럽고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다. 발이 딛어지기 편해 발걸음의 흔적이 쌓이게끔. 자연이 스스로 빚은 길 인양 있는 듯 없는 듯, 그야말로 길 없는 길`이라, 산이 한결 손때가 덜 탄 듯 느껴졌다.

어떤 산엔 누워있는 아름드리 고사목 가운데에다, 벤치대용으로 네모반듯하게 홈을 파놓기도 했다. 정상 가까이 대피소 하나만 있다. 산 아래 주변과 주차장에도 화장실만 있지, 식당이나 기념품점도 없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산들은 자연생태계를 무시한 채, 인간을 우선 시한 인공구조물로 몸살을 앓는다. 조악하게 설치된 철 계단, 쇠 난간과 콘크리트 벤치, 케이블카 등이, 자연의 숨통을 조르는 듯해 눈에 거슬렸다.

중국의 5대 명산에 낀다는 황산과, 4대 불교성지중의 하나라는 구화산에 가봤더니, 그 빼어난 산들이 설치물들로 한국산보다 훼손이 더 심했다. 산한테 외경심이 없는 오만한 간섭은 절대 금물인데, 과유불급 이었다. 정상에 못 가보고 구석구석 안 봐도, 다리품이 더 들고 허기가 져도, 자연그대로 둘 일이었다. 산의 넉넉한 품에 동화되는 첩경은, 거만한 이방인 같은 태도를 버리는 거다. 철저하게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한다.

지난 일요일 겨울 산을 방문했다. 겨울바다같이 고즈너기 적막강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산은 따스한 숨결들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선 각양각색의 인간들처럼 자태가 제가끔 다른 나목들이 있었다. 짐을 내려놓으면 홀가분할 줄 알고 다 벗었겠지만, 너무 추워 보여 벌서는 것 같다. 내 마음까지 시려온다. 그래도 바람을 만난 까만 가지들이 수런수런 얘기를 쏟아내자. 못이기는 척 빙긋이 웃고는 있다.

아스라한 꼭대기쯤에는, 무성한 잎들 속에 꼭꼭 숨어만 있던 새집들이, 하늘을 열고 Open House 한다며 집 자랑을 하고 있다. 앙증맞기 그지없다. 세상에서 가장 엉성하고 초라해 보이지만, 그 이상 아늑하고 따뜻한 집도 없을 것 같다. 허지만 지붕도 열어 제친 이 겨울엔, , 비를 어쩔꼬! 싶어 연민이 솟는다. 그러하여도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며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줄 테니, 충분히 견딜 만도 하겠다. 나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피어난다. 산책을 나왔는지, 나이팅게일보다도 작은 새가 가지에 앉더니, 도라지꽃씨 같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포르르 선유했다.

햇살이 피해간 잔설위에다 사슴이 화석처럼 발자국도장을 찍어놨고, 솔개는 상형문자를 새겨놓았다. 지금은 어디선가 숨어서들 나를 주시하고 있을 거였다.

그런데다가 며칠 전에 왔던 폭설과 그 동안 쏟아졌던 겨울장대비로, 온 산은 물, , 물이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라고 어린 왕자`는 말했는데, 산이 아름다운 것도 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가을에 왔을 땐, 겸손하고 얌전해서 물이 시냇물처럼 흐르던 산골짜기였다. 지금은 한 겨울인데도, 댐의 수문이라도 열은 듯 엄청난 수량과 급류로 인해, 곳곳에 작은 폭포와 소가 만들어졌다. 계곡을 따라 걷는데 물의 합창소리가 어찌나 산을 흔드는지, 아찔해서 오싹할 지경이었다, 고국에서 친숙했던, 다소곳하고 아기자기한 새색시계곡이 아니라 이질감이 들었다. ’마릴린 몬로가 주연하고 불렀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격류가 떠오르면서 주제가가 흥얼거려졌다.

잔설이 계속 녹는데다 어제는 온종일 비까지 왔었다. 거기다 빗물에 질린 낙엽들까지 물을 도로 뱉어내는 바람에, 길 없는 길도 푹 젖었다. 산길을 에우듯 생겨난 작은 골들마다 물이 포화상태라, 징검돌 신세를 져야했다. 어떤 징검돌은 거북이처럼 물속으로 엎드린 바람에 발이 젖기도 했다. 죽어있는 줄로만 여겼던 겨울산은, 그렇게 생생하고 풍성히 살아있었다.

지난번 가을산행 때는, 너무나 화려해 슬퍼 보이던 단풍잎들이 낙엽비로 날렸었다. 도토리들도 결실의 축제가 한창이었었다. 그런데 은빛 분칠을 하고 토토톡 떨어지던 연 연두 빛의 도토리들이, 어느새 짙은 갈색의 무생물로 변신해있다. 그 찬란하던 오색의 단풍잎들도, 모두가 똑같은 흙색 한가지로 퇴색되어 참담하게 죽어있다. 거의가 다 익사상태라 측은지심이 더 든다. 그렇게 무표정한 퇴적물로 쌓여 있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인간의 인생길이랑 똑같다. 각자가 걸어왔던 삶의 빛깔과 양태는 달랐어도, 종착역에 이르면 저 낙엽들 모양 닮은꼴이 되어, 속절없이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마음이 착잡해져서 무연하게 나무에 눈길이 갔다. 생의 미련 때문에 마음의 정리가 아직도 안 끝났는지, 가랑잎 몇 개가 새가되어 아등바등 매달려있다. 당장이라도 한 줄기 바람결에,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질걸, 아는지 모르는지. 죽음의 선고를 받은 인간의 비통함이 연상되어, 마음이 저려온다. 생자필멸인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허망한 삶이 겹쳐진다. 생 과 사< >가 저리도 찰나적인데 싶다. 최정자 선생의 시 가랑잎이 떠올라 가만히 낭송해본다.

꽃을 위해 태어났다고 하면/ 안 되지요/ 열매를 위해 살았다고 하면/ 안 되지요/ 생명을 위해서나/ 죽음을 위해서나/ 치열하게 매달렸다가 / 냉혈하게 놓았을 뿐이지요.”

산자락의 양달에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뒤엔 인수봉 같이 생긴 큰 바위가 바람막이가 돼준다고 병풍처럼 옆으로 누워있다. 오른편에 준수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데, 딱 영화 모정`의 그 언덕, 그 정감 있는 모양새다. 나이테가 늘 수록에 의젓해지고 기품이 풍기듯이, 너도 헛나이`만 먹지 말고 나이 값을 하라고 일깨워준다.

어디선지 낯설고 특이한 냄새가, 솔바람에 실려와 자꾸만 코끝을 감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뒤에, 반지르르 윤기가나는 초콜릿 빛깔의 사슴 똥이 소담스럽게 쌓여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비타민인 줄 알겠다. 옆엔 까만 콩자반 같은 새끼사슴 똥이 소복하다. 사슴가족이 해바라기하고 노니는 놀이터 인가보다. 영물인 사슴들은 기가 충만한 곳만 찾아 머문다고 한다. 제대로 명당에다 자리를 잡았다싶어, 더럽다는 느낌은커녕 기분만 좋다. 사슴 똥을 코앞에다 모셔놓은 채 명상을 했다. 떡국을 끓여먹고 녹차도 마셨지만, 하나도 역하지 않다. 이제껏 먹어본 떡국 중에서 제일 맛있고 녹차는 더욱 향긋했다. 만약 인가 옆의 사슴목장이나 동물원에 있는 사슴 똥이었다면, 충분히 비위가 상하고도 남을 냄새인데 하는 순간, 문득 깨달아졌다.

! 그렇구나! 산 속에선 사슴 똥마저, 청정한 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구나. 나무, , 바위, 바람과 조화를 이뤄 자연과 완전 동화됐구나. 냄새마저도 달콤한 자연의 향기에 녹아들었고. 그럼 이 순간엔 내 탁한 냄새도 사슴 똥처럼 자연 속으로 융화될 수 있을까? 언감생심이다. 속진 들이 쌓여 추하고 추한 내가, 어떻게 사슴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겠는가? 잠시나마, 깨끗이 열린 눈과 마음으로, 자연의 오묘한 섭리와 신성함을 엿보고 깨우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만족할 일이다. ‘루소`가 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겠는가? 인간이 자연과 일치될 때만, 지고지순하고 맑아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가급적 자연의 품에 자주 안겨서 때 묻은 몸과 맘을 자꾸자꾸 닦아내다 보면, 좀 순화될까? 그렇게 해도 욕심 많은 속물인 나는, 안될 것을 안다.

하산 길은 다른 색깔의 카드를 잡았다. 우묵하게 패여 있는 산마루마다, 나무가 있는 섬까지 갖춘 미니호수로 변했다. 낮은 산골들마다 웅덩이를 품고 있다. 작은 물 옹당이들은 떠있거나 잠수해있는 낙엽들로 꽉 차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단순하게, 눈에 투영되는 대로 그윽하게 물속을 응시했다. 명상할 때 가로막는 잡념처럼 굳이 부정하려고도 하지 말고, 시선을 어지럽히는 낙엽들까지 물의 한 부분으로 느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물밑엔 딴 세상이 그림처럼 펼치어졌다. 고적하고 순일한 자태로 서있는 새까만 나목들, 청아하고 투명한 깊고도 깊은 청자 빛 하늘, 순연하고 순백한 백자 빛의 구름들까지 존재해있다. 어찌나 미적이고 정적이고 적요 한지, 넋 놓고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눈을 현혹하는 저 낙엽들에 연연하지 않아야, 그 밑에 숨어있는 맑은 세계가 보인다.’ 그렇듯 가식과 탐욕, 물욕을 제거한 다음에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심연의 자의식까지 정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백하지만 나는 이기와 타산으로만 뒤엉킨 속내를, 교묘하게 위장하고 감춰왔다. 스스로에게마저도 합리적이었다며 변명하고, 안도하면서 살아왔다. 인생을 가장무도회 하는 것같이...

 

 

아무리 자연 속에 쌓여서 좋은 기를 받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티 없이 순전한 물밑세계를 구경했으면 뭐하나! 어차피 산을 내려가면, 다시금 분수처럼 분출되는 욕심 앞에서, 속수무책일 것이다. 속물로 돌아가서는 시침 뚝 떼고 살 것이 뻔하다. 이 검고 교만한 마음과 아만, 명리만 쫓으려하는 자세론, 다 소용없는 일이다. 소귀에 경 읽기 아니겠는가. 바끄럽다. 무욕의 삶을 살지 못해서. 어렵다. 정말! 참 인간으로서 살아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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