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꽃<노랑꽃>

웹관리자 2025.08.29 20:49 조회 수 : 3

할머니꽃<노랑꽃>

 

 

   할머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신지도 어언 40!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고, 우리 6형제를 꽃인 양 사랑하고 돌봐주셨던 할머니! 나는 결혼 전 까지 내내 할머니하고 룸메이트였었다.

   박완서 선생의 산문 주말 농장에서 “8년 동안의 시골생활과 조상이나 친척들이 시골뜨기란 걸 큰 다행으로 알고 있고, 그걸 갖고 남에게 자랑하기 좋아한다.”는 문장이 있다. 나 역시, 개성 근교 박적골에 사셨던 그분처럼, 원주시내를 벗어난 가메기에서 딱 8년을 살고 서울로 이주했다. 8년 동안, 할머니랑 계곡에 가서 빨래하고 나물 뜯고 메뚜기도 잡던, 자연에 순응했던 시골생활은, 그야말로 온갖 진주 같은 추억들이다.

   당시 시골집 화단 해바라기 옆엔, 늘 이름도 몰라 "할머니꽃"이라 불렀던 키 크고 풍성한 노랑꽃이 있었다. 일테면 다알리아 같이 소담스럽고 꽃술도 없이 겹겹의 그 할머니꽃은 내 시골시절의 상징이자 유년기의 향수다. 서울로 이사 올 때, 할머니는 여러해살이로 뿌리번식인 그 꽃의 종근을 챙겨오셨다. 다사다난한 서울살이에도 우리랑 동행하게끔.

   세월이 흘러 흘러 뉴욕에서 살게 된 동안, 할머니가 하늘로 가셨다. 할머니랑 가꾸었던 화초들이 할머니 대신인양 더 살가워졌다. 특히나 아끼시던 한련화(Nasturtium)는 홈 디포에서 씨를 팔아 매해 씨를 뿌리고, 목단(peony)과 영산홍(Azalea)도 쉽게 내 곁에 공존시켰다. 하지만, 할머니꽃인 그 노랑꽃만은 속수무책이었다. 차타고 가다 훌러싱 어느 집 화단에서 딱 한 번 엿 본 게 다였다.

   1990, 고국을 떠난 지 7년 만에 한국에 갔다. 부모님이 아파트로 옮기신 데다, 서울사람들한텐 소박데기처지인지 그 노랑꽃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마침 부모님과 양평콘도리조트로 놀러가게 됐다. 시골에선 분명히 있을 노랑꽃의 자취를 찾아 마을 집들의 마당탐색 끝에 드디어 반갑게도 그 꽃을 발견했다. 주인아주머니한테 미국에서 왔다며 사정을 얘기하니 선뜻 세 포기나 캐줬다. 부모님아파트 베란다에 신주 모시듯 하다가 꽁꽁 짐 속에 무사히 모셔와 세 군데로 분식했다. 허나 생명력이 강함에도 워낙 긴 여행인지라 숨이 막혔는지 기사회생(起死回生)못했다. 오호 통재라!

   허나 간절히 염원하면 이뤄지는 법! 할머니가 하늘에서 응원하신 건지, 하느님이 도우신 건지, 나로선 천우신조였다. 한국교회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벽안의 노신사께서 하루는 답사 차 근처의 루터란 미국교회로 데려갔다. 세상에! 화단에 그 노랑꽃이 지천일 줄이야... 염치불구하고 해설하시는 노년의 백인 여자에게 할머니꽃 얘길 했더니, 웃으면서 쾌히 댓 뿌리나 캐주었다. 그게 다 잘 자랐고 맹렬하게 자손을 퍼뜨렸다. 개화기가 5~7일까지인데다 7~9월까지 피고지고하면서 집주변을 노랗게 물들이듯 환하게 밝혀줬다.

   2009, 고교동창 둘이 서울과 LA서 방문했다. 꽃사랑파인 서울 친구가 대뜸 어머! 이 시골꽃이 뉴욕에도 있네. 이거 나물로도 먹으면 맛있어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대뜸 이름부터 물으니까 잎이 세 갈래로 갈라져 삼잎국화야했다. 비로소 수십 년간 할머니꽃, 노랑꽃으로 불리다가 친구 덕에 처음 본명을 찾은 셈이다. 좀은 막연했던 존재가 이름을 아니 더 가까워졌다. 김춘수 선생의 시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략>시 구절처럼 말이다.

   알고 보니 삼잎국화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영어이름은 Golden Glow, 1940년대에 우리나라원예식물로 귀화 토착했다. 국화과로 내한성이 강해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여러해살이고. 꽃이 홑겹인 홑삼잎국화와 겹꽃의 겹삼잎국화가 있다. 키들이 다 커서 키다리노랑꽃, 키다리꽃 등의 별명으로 불려왔다. 삼잎국화란 이름은 잎이 삼베를 짜는 재료인 삼, 즉 마()잎을 닮아 지은 이름이라고도 한단다. 친구말대로 나물과 차로 먹으면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신진대사 촉진에 면역력강화인 기특한 꽃이었다. 2021년엔 공식적인 나물식품으로 인정도 받았단다. ‘영원한 행복이란 꽃말도 내겐 딱 맞는다. 지금도 화단에 한창 흐드러진 꽃을 볼 때면,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고향이 상기되면서 행복감이 쓱 밀려오니까. 또 영원히 그럴 거니까.

   그런데 원산지임에도 뉴욕에서 인기가 시들한 이유가 뭘까? 추측하건데 1,5m~2m의 장신임에도 꽃대는 가늘어, 비바람이 치면 앞이나 옆으로 자꾸 쓰러져서인가 보다. 도저히 무성한 꽃송이들의 무게감당이 안 되니까. 내가 분양해준 친구들도 그 단점 때문인지 '정신 사나워지는 꽃'이라며 눈 흘기는 눈치다. 처음엔 나도 아니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만큼만 분수껏 피지, 웬 꽃 욕심이 그리 과하지. 과유불급(過猶不及)도 모르나딱하게만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흐드러진 꽃송이 잔치에 반해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느낀 순간, 문득 이건 과욕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생에 대한 희생적 헌신과 뜨거운 열정이구나 싶었다. 그 후론 꽃들이 만개하면 지지대를 박고 끈으로 한 아름씩 포옹하며 묶어준다. 그러면 태풍이 와도 기개가 장대하고 의연해 더 상큼하니 돋보인다. 과연 매사가 어떤 마음과 시선으로 보는 가에 달려있는 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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