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웹관리자 2023.06.15 13:02 조회 수 : 28

나야

 

내가 학창시절에 제일 심취했던 단어는 추억이었다. 마음이 한가롭거나 심란할 때 낙서를 하면, 내 이름을 쓴 다음엔, 무의식적으로 추억을 쓰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연연해하던 추억을 밀어내고, 어느 날부터인지 내 가슴 깊숙이 와 닿은 단어가 나야였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한 남자에게 사랑받을 때 부터였다.

지금도 나는, 목 안에 첼로의 현을 간직한 그 남자가, 전화 속에서 나야!”라고 말했던 순간의 생경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건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섬세한 경이의 떨림이었고, 막 터질 것 같은 도라지꽃봉오리의 설렘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나야의 마력을 일깨워준, 목소리만큼은 확실히 좋았던 남자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줄기차게 나야하고 있다. 그때 첫 순간 마냥 달콤하지도 않게, 또 짜릿하지도 않은데...

TV 연속극중에서, ‘나야의 매력에 찌르르해져서 뭉클한 감동에 휩싸였던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와, 그녀의 목을 꼬옥 안는다. 치한인 줄 알고 놀란 그녀가 공포심에 으악!”하는 순간, 그 남자는 연인의 귀에다 대고 나야!”한다. 말할 수 없이 다정하고 감미롭게. 그러자 그녀는 마법에라도 걸린 양, 당장에 평온하고 행복한 천사의 얼굴로 바뀐다. 그런 때, 사랑하는 남자의 나야!”는 백 마디의 미사여구나 사랑해!”라는 말보다도, 더 강렬하고 따사로우며 은밀한 느낌이 실린, 함축성 있는 말일 터. 그녀의 현실이 춥고 외롭고 힘든 상황임에도, 그 모든 고통과 상처가 아물어버리게 만드는 나야인 것이다. 지극히 짧은 그 한마디의 위력과 어감이, 감성이 메말랐던 중년의 내게까지 포근하고 아늑하게 스며들어왔다. 사막에 갑자기 소낙비가 스며들 듯, 촉촉하게 해줬다. 오죽 마음이 짜릿하게 저려오면 눈물까지 핑 돌았을까. 다시금 나야라는 단어의 신비롭고도 무한함에 매료돼서, 문득 나야에 대해 짚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언어 중, 가장 정겹고 따뜻함을 표현하는 형용사와 동사는, 대체로 사랑과 정을 모태로 파생된다. ‘나야는 글자 상으로 보면, 사랑의 감정을 대변하는 형용사와 동사가 아니다. 단지 나라는 걸 알리는 인칭대명사구일 뿐, 어떤 감정을 표출하거나 수식하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말하는 사람이 간직한 느낌과 억양, 목소리의 감정에 따라서, 또 듣는 사람의 심정과 상태에 따라서, 수많은 형용사와 동사를 내포하게 된다.

연정을 느껴서 서양식으로 I love you!"했다면, 빨간 장미처럼 정열적이고 적나라한 직선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나야!”했다면, 은은한 노란 색의 호박꽃마냥 서정적이면서 수줍은 곡선적인 고백이다. 서서히 뜨거워지고 쉬 식지 않는 아랫목 같은 열정이 감춰진 듯해서, 우리 민족의 은근한 정서와도 딱 부합된다. 우리 민족끼리만 감지할 수 있는 그 감칠맛 나는 어감과 맥맥히 이어져 온 묘한 분위기의 나야, 도저히 외국어로는 절대 번역 불가능일 거였다. 제일 비슷한 영어표현으론, 기껏 It's me!일 텐데 나야의 감엔 어림없다.

그렇게 나야에는 사랑 외에도 따사하고 깊은 정과 신뢰, 믿음이 담뿍 담겨있다. 한데, 내재한 느낌의 함축성이 다양하다고 해도, 포용성까지 넓은 말은 아니다. 그 단어를 허용하는 제한과 한계가 없는 것 같아도, 천만의 말씀이다. 오랜 시간과 신뢰성, 진심을 투자한 엄선된 극소수에게만 그 말의 문호가 개방되니까. 그렇다고 절대 혼자서는 쓸 수 없는 상대적인 말인데다, 아무나 그 상대가 될 수도 없는 아주 까다로운 말이다. 일테면,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거나 진심이 결여된 만남이거나 어정쩡한 사이에선, 감히 쓸 엄두도 못 낸다. 아니 상대를 잘못 가려 썼다간 정신병자 소리 듣기 딱 이다. 상대방의 나이, 성별, 직위 친분정도 까지 잘 숙고한 후에 말해야한다.

남녀 간에도 서로의 감정이 무르익어서 마음이 합일돼가는 과정이 꼭 같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그 말을 시작하는 시점도 중요하다. 암암리 서로 간에 동의 없이, 한쪽 기분만 무르익었다고 불쑥 사용했다간, 땡감 먹은 꼴 되기 십상이다. 일방적으로 전화기를 통해 그 말을 썼다고 하자, 상대방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더라도 욕이나 하기 십중팔구다. 속으로 제가 뭔데 나보고 나야. 얼마나 알고 친하다고할 테니까. 그러다보니 서로 마음이 통해 나야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관계는 그리 많지 않다. 연인사이거나 부부, 가족 형제, 친구들, 그 외에 서로가 온갖 실수와 약점을 덮어주고 감싸주며, 모든 걸 이해하는 아주 친근한 사이에서만 허용된다.

신분과 상황, 분위기에 따라, 상호간에 주고받는 호흡과 감성에 따라, “나야!”가 빚는 표정은 다채롭다. 사랑해, 그리워, 보고 싶어, 잘못 했어 미안해, 외로워, 힘들어, 고통스러워, 고민이야, 슬퍼, 고마워, 행복해, 등등...이토록 인간의 모든 감정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그럼 어떤 마음가짐 이래야 나야의 숨은 멋을 가장 아름답게 애용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서로 간에 수맥처럼 흐르는 깊은 사랑과 정의 공감대가 교류돼야한다. 돈독한 믿음과 끝없는 관심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필수다. 끊어지면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특히나 이성관계에선, 수없는 만남이 있었다 해도, ‘나야라는 말이 통용되기 전엔, 깊은 애정이 교감되는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양쪽 사랑의 무게가 같은 눈금이고 이심전심의 경지에 이를 때 써야지, 어느 한 쪽이 준비가 덜 됐거나 설익어 기우는 사랑에선, 그 말은 위력이 없다. 짝사랑이라면 당연히 쓸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설혹 잘 통용하던 사이도, 두 사람의 감정교류에 이상이 오거나, 어느 한순간 한쪽에서 전류가 끊기면 더 이상은 묵인도 안 된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게 되면 칼같이 남남이니까, 그때부턴 그 말을 하거나 듣는 게 감정상 매끄럽게 용납이 안 된다. 혹여 별 뾰족한 대칭이 없어 그냥 쓴다고 하자, 그건 이미 나야라는 말의 생명과 가치가 죽은 말이다. 아름다운 나야라는 말만 모독하는 경우다. 연민과 애정이 깃든 나야가 아닌 거북하고 위선적인 말이니까. 이미 상호간의 변함없는 성실성과 지속성이 엄수되는 약조가 깨져버렸으니까. 이런 법조는 가깝고 진솔한 친구관계에서도 요구되고 유효하다. 명백한 건 가족 관계만 빼곤, 무조건 아무 때나 나야할 수 있는 권리와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쉽게 나야를 범접할 것도 아니다.

나야가 가장 빛나고, 심연에 안식과 애잔한 여운을 줄 때가 언제인 가를 헤아려 봤다.

같은 연인 들이라 해도 사과처럼 풋풋하고 투명한 사랑이 녹아있어서, 홍시마냥 달고 원숙한 관계에서 더 빛을 발한다. 또 나란히 서서, 어떻게 하면, 저 뿌연 안개를 지우고 사금파리 같은 청명한 햇살아래에서 살까 속삭이는 나무 같은 부부. 한쪽의 일방적인 하향성이 아닌, 동반자로 성장하는 부부관계에서 더욱 진가가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의 가슴 속 치부까지도 시냇물의 조약돌인양 말갛게 보여주고 또 보는 친구관계. 그리고 서로가 자상한 헤아림 속에 애틋한 정의 탑을 쌓아가는 진실한 지인관계에서, 더 가치가 있는 말이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흉허물이 없고 적나라한 관계인 가족들, 끝없는 믿음과 신뢰로 질기고 끈끈하게 뭉쳐진 가족애를 대변할 때는 극치를 이룰 거였다.

따라서 나야라는 말을 많이 애용하고 듣는 사람은, 행복하고 외롭지 않은 진짜 부자다. 심지가 우물처럼 깊고 다정다감한, 인복과 인덕이 많은 사람이란 증거니까. 교제 범위의 폭이 넓고 겉 사귀지 않아, 개개인마다 특별한 인상과 친밀감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니까. 한 번 맺은 인연은 놓치지 않고, 서로에게 소중한 그대가 된다는 걸 의미하니까.

나는 과연 나야!”를 몇 명에게나 들으며 또 하고 있나 꼽아봤다.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을 합해 한 15명쯤 될까? 이 친구들은 전화를 걸고는 나야!”의 첫 마디에 내가 못 알아채도, 앵무새마냥 계속 나야! 나야!”만을 반복하는 친구들이다. 그건 아마도, 이름을 대야 신원이 확인된다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싫은 잠재의식이일 거다. 일면, 나는 너의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라는 자긍심과 우정의 확인이기도 할 거였다. 이렇게 나야한마디면 신원파악 없이도, 암호처럼 척 알고 통한다. 그 이상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서로의 유대감과 친밀함을 나타내는 말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앞으로도 나야라는 말을 듣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많이 품어야겠다. 아무리 삭막해진 세상이라 하더라도, 삶이 곤해졌다 하더라도, 많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위로받고 정겨워 질 수 있도록...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이성 간에는 어렵고, 아니 꿈도 꾸지 말아야 될까보다. 만약 새로 만들었다가는 큰일 나겠다. 그럼 남자로는 오직 남편 한 사람에게만 계속 들어야 하나보다. 남편도 나 외에는 어떤 여성에게든지 나야!”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니, 뭐 피장파장 억울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살짝 고백할게 한 가지 있다. 나에겐 또 하나 건장한 남성이 사랑이 담뿍 담긴 멋진 목소리로 자꾸 나야!”를 하니 어쩐다지? 남편이 나야!”할 때보다, 내 가슴에서 더 사랑이 퐁퐁 솟아나게끔, “나야. 엄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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