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본 삶의 반경 - 손정아

웹관리자 2023.07.01 12:54 조회 수 : 16

나 본 삶의 반경

 

정류장을 지나간 버스는 멈추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20분도 금세 분화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기를 뽑고 달리는 차들이 멀어지고 다가오고

나의 한여름도 벗겨지는 오후 앞에 서있습니다

 

지친 반경이 더 지나는 동안 시간은 점점 잠식되고

바늘구멍에 들어선 실핏줄도 옴짝달싹 못하는데

마모된 세포는 지난 간 것들만 빠르게 간추려내는

지금이 길 것 같은 짧은 오후입니다

 

기다림에서 더욱 더딘 것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의 이름도 생각나기 전 쉽게 달라붙는 상실의 아픔은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조바심 같은 것

늘어진 목은 휘고 아직도 생소한 길이 불안한 오후입니다

 

놓치지 않으려 가슴 졸일 때 타들어가던 쓸개도

어느 난간에 홀로서서야 낡은 눈물이 시렸고

진액이 보타지는 열정을 사르며 몹시도 훌떡거리던 삶

버스가 올 거라는 기대 층에 살아있음을 올려놓고

빼든 고개 처 들다 어깻죽지가 휘는지도 몰랐지요

 

이젠 펴지지 않는 척추를 두 손으로 바쳐들고

감질나던 그 한창의 시절을 돌아보는데

불편한 것들이 삶의 요소이었음을 알고 나니 친구여

엇나간 세월이 따라와 두 다리 후들거릴 줄이야

만나 본 그날 다들 성한 곳은 없고 옹색한들 것뿐

무게를 덜어내 줄 수 없는 아픔만 무거운 어께동무였네

 

그래요 힘든 세상에서 멋진 쇼를 창작하며

우린 열심히 살아왔지요

고쳐 쓸 수도 없는 모든 숨을 손에 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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