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두 얼굴

웹관리자 2022.11.14 22:01 조회 수 : 18

미국의 두 얼 굴

 

어느 나라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하지 않나 싶다.

 

1989년 5월, 가족들을 데리고 뉴욕에 처음 이민 왔을 때 낡고 우중충한

건물, 쓰레기가 딩구는 지저분한 거리, 난잡한 낙서, 지하철 승강장에서 오줌을

갈기는 홈리스들을 보고 ‘아이구, 내가 잘 못 왔구나.’하고 생각 했다.

다음날 맨하턴의 5에브뉴를 걸으며 웅장한 건물들, 유명 브랜드의 간판들,

반짝거리는 쇼윈도를 바라보며 미국의 또 다른 얼굴에 혼란이 일었다.

 

뉴 저지 뉴왁의 '펜 스테이숀'근처에는 새로운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그 건물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고 그 건물들 안에는 각종 시설과 사무실과

상가가 들어 있다. 주차장 건물에서 내려 연결 통로나 에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각기 일터로 갈수 있어 땅에 발을 안 딛고 살게되어 있다. 그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백인들이다. 이 건물 밖으로 두 세 불럭을 걸어 가면 거리는

쓰레기가 쌓여 있고 일자리가 없는 흑인 젊은이들이 몰려 서서 조그마한

풀래스틱 봉지에 담겨진 무엇을 주고 받는 것을 보게 된다.

미국 부(富)의 절반을 미국 부자들 20%가 거머 쥐고 있다고 한다. 부익부

빈익빈의 치유하기 힘든 구조적인 병은 더욱 깊어 가는 걸까.

1년 동안 펜실베니아 '랭카스터'에서 지내며 미국의 지방도시를 볼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한 일이였다. 끝 없이 넓은 옥수수 밭,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초록빛 잔디, 만나는 사람마다 “하이”하며 반가워 하고 우리들이 외면해

버린 한국 고아들을 입양하여 기르는 부부를 보며 미국의 희망과 축복을

보았다.

 

미국은 지극히 자유롭고 무질서 한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내 어디를

가든 '소셜 시큐리어티 넘버'만 들추면 어디에 살았고 무얼 했고 신용도가

어떤지 금새 들통난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그저

만족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이민 왔다고 쉽게 말을 한다. 그러나 처음

여기에 와서 아이들의 형편없는 수학 수준에 실망 했다. 구멍난 청바지에

염색한 머리를 하고 남자 아이들까지 이어링을 달고 다니는 것까지는 봐

주겠는데 빨간 루즈를 바르고 담배를 피우며 등교하는 아이들을 볼때 우리

아이들도 잘 못 될까 봐 조마조마 했다. 아침 등교시 학교 앞 큰길에는

빨간불이 켜져도 학생들은 떼를 지어 몰려 간다. 아이들의 질서의식에 대한

불감증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질까 염려스럽다.

 

미국내 대학공부는 퍽 어렵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도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공부를 안하면 졸업할수 없고 실력이 없으면 사회에서 거절

당한다.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방치 된 아이들과 코피를 흘리며 공부하는

아이들 차이는 바닥과 천정만큼 그 인생이 달라지고 말것이다.

해 마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미국의 학자들이 휩쓰는 것을 보게 보게

된다. 학문적 깊이와 다양성은 미국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자동차는 왜 고장이 잦으며 미국제 제품은 왜 그렇고 그런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느날 점심을 먹으려 레고팍에 있는 어느 피자가게에 앉아 있었다. 흑인

젊은이와 여인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언성이 높아지고 욕 까지 섞어

나왔다. 갑작히 젊은이가 권총을 꺼내 여인의 복부에 두발을 쏘았다. 젊은이는

잽싸게 도망해 버리고 여인은 쓰러져 기어가며 살려달라고 했다. 가게주인은

경찰을 부르고 가게안 손님들은 혼비 백산하여 가게를 다투어 빠져 나오자

엠부런스와 경찰차가 요란스럽게 몰려 왔다.

학교내에서 아이들에 의하여 총기난사의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부는 왜

강력한 총기 규제법을 세우지 않는 걸까. 총기 제조업자나 판매업자들이 총기

규제법을 제정하지 못하게 로비를 한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계속

일었다.

배심원으로 불리어 미국 법정을 볼 기회가 있었다. 판사석 뒷편에 'IN GOD

WE TRUST'라는 글은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판사의 독단이 아니고

배심원이라는 여론 재판은 그럴듯 하다고 생각 되었다. 그러나 O.J.심슨의

재판 이야기를 보고나서는 미국도 '유전이면 무죄요 무전이면 유죄'라는

생각을 떨칠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입고 어떻게 다녀도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없고 간섭할 사람이

없어서 미국생활은 자유롭고 편하다고 말한다. 그 자유로움이 지나쳐

밤새도록 파티를 열며 춤과 음악으로 이웃의 잠을 설치게 한다든지

전철안에서 여러 좌석에 길게 누어 가도 아무도 나서서 말리는 이가 없다면

답답한 일이다.

 

300년이 못 되는 이민의 역사로 이룩된 미국인들에게는 다른나라의 귀족과

문화재에 대한 우러러 보는 마음과 열등감 같은 것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듯

싶다. 다른나라의 귀족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메스콤에서 떠들고 세계의

문화재들이 메트로포리탄 박물관에 집합해 놓은 느낌이다. 모 대통령이 쓰던

흔들의자가 소더비 경매장에서 수만 달러에 팔린 촌극은 씁쓸한 훗맛을

남겼다.

 

미국의 경제를 한마디로 말 할수는 없을 것이다. 뉴욕 지역이 폭풍이 몰아

쳐도 캘리포니아나 후로리다쪽은 햇빛이 쨍한 일기예보 만큼 복잡하다고

한다. 미국의 농작물이 흉작이 들면 세계가 불안해 하고 끝없이 펼쳐진

땅위에 포도가 영글어가고 방아개비가 끄덕거리며 땅속의 기름을 퍼 올려

따로이 저장한다는 미국의 경제적 저력은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다.

적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은 하나마나라고 한다. 소상인은 연중

세일하는 대형 점포와 싸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내노라하는

회사들이 기업 합병을 왜 자주하는 걸까. 자체적인 경영합리화 보다 경쟁력을

키우는 거인을 만드는 것이 더 급한걸까. 이제 미국경제는 엄청난 자본력을

동원한 공룡들만 살아남게 되는것 아닐까.

 

미국의 이민자들은 종교의 자유와 풍요의 꿈을 안고 모여 들었다. 광활한

땅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이 필요 했고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다

노예를 삼았으며 그들이 해방이 되자 남미와 아시아 동 유롭 저개발 국가에서

값싼 새로운 임금 노동력을 끌어 오고 있다. 팬실베니아의 어느 곳에는

냉장고 속같은 닭공장에서 값싼 노동자들이 영주권을 갈망하며 손을

불어가며 도계공으로 일을 하고 캘리포니아의 뙤약볕아래 맥시칸들이 생계를

위해 농장에서 일을 하고있다.

미국의 기업들에게 저임 노동력은 필요한 것이고 새로운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채우어야 하는 공식이라면 반 이민법을 심하게 흔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도시 지역에서 흑인과 히스페닉, 아시안의 증가는 선거라는

정치적 게임을 벌리는데 기득권을 가진 백인들에게는 환영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 대통령 휘장인 독수리는 한 쪽 발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오리브 잎을

쥐고 다른 발에는 전쟁을 뜻하는 화살을 쥐고 있다. 그 독수리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는 뜻의 오리브잎을 바라 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독수리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화살을 바라 볼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이백

여년간 미국의 외교 정책은 이러한 양면성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미국은 얼마나 많은 나라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피를

흘리고 도와 주었는가. 그 도움을 받은 나라들이 지금 진정으로 미국에

감사하고 미국을 좋아하고 있는가를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미국의 숨은 이야기는 훨씬 많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을 다 알지도 못하고 가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의 출발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도덕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하면 내가

이민을 선택하고 내 자식과 그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미국이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나라가 되기를 조용히 기도 드릴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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