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정엔 수정같은 호수가

nohryo 2022.10.12 18:23 조회 수 : 28

그 산정엔 수정 같은 호수가 …

 

등산 할 수 있는 산이 가까이 있는 것은 행운이다.

마음만 먹으면 30~40분 거리에 있는 산을 얼마든지 오를 수 있으련만 자주 못 오는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봄을 밀어내며 올라오는 초여름의 기세가 대단하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올라가더니 온 세상이 짙은 초록으로 점령되고 있다. 오늘도 90도가 넘는 더운 날이 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내가 사는 뉴져지 주의 경계를 살짝 넘어서면 뉴욕 주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곳에 해리만 주립공원(Harriman State park)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일곱 개의 호수 세븐 레잌(seven lake) 주변으로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들이 둘러쳐있다. 산에는 수 많은 트레일 코스가 있어 등산객들을 불러모은다.

우리가 자주 가는 코스는 계곡을 곁에 두고 오르는 R 코스다. 등산로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부 터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풀과 나무, 계곡의 바위, 그 거친 돌 틈을 헤치며 떨어져 내리는 하얀 물보라에 가슴이 열린다.

 

잠시 걷기 좋은 평지 길을 벗어나면 돌짝밭 너덜겅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인 탓인가 얼마 가지않아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온 길을 돌아보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그냥 오늘은 여기서 내려갈까? 잠시 갈등하게 된다. 언제나 산에 오르는 길은 내려 올 때 보다 힘이 들지만 그 산 꼭대기에 있는 호수를 보고싶은 마음에 무거운 발길을 다시 내어 딛는다. 우리는 천천히 쉬엄 쉬엄 산 정상에 올랐다. 흙 한 점 보이지 않는 넓은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 우리는 그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물이 많이 불어 호수에 그득하다.

푸르게 넘실대는 호수, 어쩌면 저렇게 맑을까? 그 물에 손을 씻기도 미안하다. 하늘이 맑아 한 낮의 태양이 호수를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바위 위로 차오른 물결의 그림자가 바위 위에 일렁인다. 호수 둘레엔 요즘이 개화 시기인지 이름 모를 나무의 희고 발그레한 꽃으로 물녘이 온통 꽃밭이다.

 

점심으로 쪄 가져온 감자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발 아래로 조용히 손님들이 몰려든다. 크고 작은 20~30 마리의 물고기들이 서로 입을 들이밀고 있다. 던져 준 감자부스러기를 서로 채트리려 물속이 소란하다. 조금 있으려니 아직 노오란 털이 부숭한 일곱 마리의 어린 새끼들을 앞 뒤에서 호위하고 나타난 거위부부가 등장했다. 물위를 우아하게 밀고 오던 그들도 식사시간임을 눈치 챘는지 몰려있는 물고기들 틈을 비집고 들어선다. 나는 재빨리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저장한다. 먹이가 더 이상 나올 기미가 없자 그들은 새끼들을 몰고 스르륵 미끄러져 바위 뒤로 사라진다.

소나무 뒤쪽으로는 수련 밭이다. 둥근 잎 위에 노란 꽃을 물고 떠 있다. 몇 점 구름이 하늘 보다 짙은 푸른 호숫물에 빠져있어 빛의 화가 끌로드 모네가 그린 ‘수련’ 의 풍경을 연상케하고 있다.

하산 길은 날듯이 가벼웠다. 방심하다가 잔 돌멩이 구르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졌다. 저도 놀란 듯 굴참나무 가지에서 박새 한 마리 푸드등 어디론가 날아간다. 내려 가는 길 또한 그리 쉽지는 않구나.

 

우리 사는 나그네 길, 늘 잘 닦인 평지만 있는 건 아니니… 때로는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비탈길에 구르기도 하고, 진흙탕 길에 발 둘데가 마땅치 않을 때 있다.

그러나 잠깐 걸음을 멈추고 숨 한 번 크게 쉬면 다시 힘이 난다. ‘산이 있어 그 곳에 간다’고 했던가, 나는 그 산정에 호수도 있어 그 산에 가기를 좋아한다.

 

숲을 나와 파킹랏에 세워 두었던 차에 오른다. 물에 들어 가지도 않았는데 몸이 씻은듯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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