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의 겨울

nohryo 2022.10.12 18:29 조회 수 : 26

‘월든’의 겨울

 

눈이 내린다. 오늘은 마른 목화에서 금방 뜯어내어 뿌려주는 듯한 탐스러운 함박눈이다.

그것들은 도화지에 그린 그림인듯이 멈춘듯, 아닌듯, 천천히, 때로는 바람에 이리 저리

쫏기다 떨어져내린다. 이런 눈은 옆으로 뻗은 잔가지들에는 물론,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는

나무 줄기에도 흰옷을 입힌다. 나무는 그대로 하나의 꽃다발이 되고 세상은 아무것도 더러운

것없는 백색의 나라가 된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창가에 앉았다. 눈내리는 풍경을 그냥 앉아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아쉬워 밖으로 나가 눈을 맞으며 설경속을 걷고 싶다. 아무도 걸어가지않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 떠나보고싶다. 매세추세츠 콩코드의 꽁꽁 언 월든 호수위에

내리는 눈밭이라면 더 좋겠지. 거기에 누어 거칠것 없이 넓은 호수에 내리는 눈을 두 팔에

모두 받아 안고싶다. 나는 어두어지기 전, 산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리기 전, 호숫가 숲속

데이비드 소로의 통나무 오두막집 문을 두드릴것이다. 장작불이 타고있는 작은 통나무집

안은 따뜻할 것이며 난로 위에 끓고있는 주전자의 물을 따라 주인은 내게 뜨거운 차를

대접할 것이다. 소로가 아직 그 집에 살아 있다면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817년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콩코드에서 죽었다.

1845년 28세의 청년 소로는 홀로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 숲으로 들어가 직접 나무를 베어 폭

3m 에 길이 4.5m 의 5평 짜리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2년 여를 살았다. 그 때의 삶을,

책『월든』에 남겼다. 소로는 말하기를 ‘나는 그저 방해 받지 않는곳에서 사적인 삶을

살아보려 의도적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고 말한다. 사람이 욕심부리지 않고, 최소한의

것으로 만족한다면 과도한 노동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않고 자연속에서 쉼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것을 그는 몸으로 직접 체험하여 들려주고있다.

몇 년 전, 늦은 가을 나는 우리 문인협회 회원들과 그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다른 일정이

늦어진 바람에 해가 숲 뒤로 떨어지기 직전 우리는 그 곳에 도착했다. 주차장 입구에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건물의 사무실이 있지만 그들은 지금 막, 문 밖에 close 싸인을

내어걸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그 여직원은 소로의 오두막을 그냥 밖에서 들여다 보라며

오두막 안에는 침대 하나와 작은 책상, 나무 의자와 난로 등이 있다 고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작은 창문을 통하여 집안을 들여다 보았지만 높이솟은 나무숲에 둘러싸인 그 오두막은

해 그림자만 남은 볕으로는 집안의 아무것도 눈에 잡히지 않았다. 그의 책 ’월든’ 에서 그

오두막을 짓는데 든 돈은 28 달러였으며, 집 안을 훔쳐 볼 이가 없기때문에 커튼값은 한

푼도 들지았았다 고 기술했는데 정말 커튼은 쳐 있지 않았다. 소로가 살던 오두막은 좀 더

떨어져있는 숲 안쪽에 있으며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지금 이 오두막은 소로가 지은 오두막과

똑같이 만든 모형집이라 했다.

 

우리는 호수로 달려갔다. 소로가 그토록 사랑했던 눈 덮인 월든호수에서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는 젊은 자연인, 소로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나는 꼭 다시 와

보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돌아섰다.

어느 햇살 좋은 겨울 소로는 낚시를 하기위해 눈 덮인 월든 호수로 간다.

‘나는 일단 한 자 깊이의 눈을 치우고, 또 한 자 두께의 얼음을 깬다. 그리고는 발 아래 열린 창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물을 마신 후, 물고기가 사는 조용한 거실을 들여다본다. 수면 아래는 젖빛 유리를

통해 비쳐 든듯한 부드러운 햇살이 고르게 스며 있었고, 바닥에는 여름철과 마찬가지로 밝은 빛의

모래가 깔려 있었다. 천국은 우리의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 밑에도 있다’

-‘월든’의 겨울 호수 중에서-

스며든 햇살로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얼음밑의 물속에서 그는 천국을 보노라고 서술하고

있다. 얼마나 호숫물이 깨끗하면 물속이 훤히 보일까? 그는 쌓인 눈과 차갑고 단단한 얼음

밑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천국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월든의 숲에 사는동안 필요한 모든것을 스스로 해결했다. 그가 실천하고자했던

소박한(simplify) 삶은 늘 그를 즐겁게했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혜택을 허락한다.

그것이면 족하다는 자세로 산다면 소로가 얻었던 만족을 우리도 얻을 수 있을텐데….

월든 호수는 내가 사는 뉴져지에서 3~4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추운

겨울이 무서워, 꼭 보고싶은 월든의 겨울로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있다.

커피 잔은 이미 비었는데 눈은 여전히 계속 내리고 있다. 눈송이는 이제 흰 배꽃처럼 작아져

가볍게 흩날린다. 마을엔 인적이 끊기고 모두 입을 다문듯 어떤 소리도 다 눈속에 묻혔다.

월든의 겨울 숲에서 울던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궁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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