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포 청년 상견례
요즘 새 며느리를 맞은 지인의 아들 상견례 얘기가 재미있다.
그 분의 아들은 미국에서 낳고 자란 교포 2 세다. 그는 얼마 전, 미국에 유학을 왔다가 졸업
후 직장을 얻어 눌러앉은 아가씨를 알게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기다리던 자녀의
결혼소식에 양가 부모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당자들은 이미 결혼 약속을 했고 그 분의
아들은, 장인 장모가 될 처가 식구들에게 처음 인사를 드리기 위하여 신부 될 아가씨를 따라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들은 예정보다 늦은 저녁에야 아가씨의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걸게 차린 저녁상을 받은 후, 집안 어른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안내 되었다. 한국 말이 서툰 우리 교포 청년은 긴장하여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장인은 내심으로, 미국에서 탄탄한 회사에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잘 생긴
사윗감이 흡족하여 둘러앉은 친척들에게 한껏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과년한 딸을 머나
먼 이국 땅에 두고 노심초사 불안해 하던 부모로서는 같은 한국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것에 얼마나 마음이 기쁜지 몰랐다.
드디어 장인 될 그녀의 아버지가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사윗감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모님이 다 계시다고?”
“예”
“그래, 자네 이름이 무엇인고?”
“아, 예, 제임스 — “ 이 때 옆에 앉은 신부 될 아가씨가 쿡 찌르는 바람에
“아니, 이 아무개입니다” 얼른 자신의 한국이름으로 바꾸어 말했다.
“그래? 이씨면 양반 이구만”
“본本은 어디인고?”
“예?” 청년은 얼굴이 벌개지며 옆의 아가씨를 바라본다. 색시 될 아가씨가 청년의 귀에
대고
“어디 이씨냐고, 본 말이야” 하고 작게 속삭였다
“아~하, 보-온 born?” 청년은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뉴져지 입니다!”
“에~엥?, 그게 무슨 말인고?”
청년의 엉뚱한 대답에 장인 될 사람이 딸을 쳐다 본다.
“아, 예!!, 버겐 카운티입니다!!”
청년은 얼른 바른 답을 생각해 냈다는 듯 큰소리로 대답을 고친다. 그가 태어난 곳은 미국
뉴져지 주, 버겐카운티였다.
청년에게 시선이 집중됐던 방 안의 사람들이 어리둥절 해 하며 서로를 쳐다 보았다.
우리의 교포청년은 성씨의 본관을 가리키는 본本을 영어의 본born(태어난 곳)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본을 물어본 장인의 질문은 우리 이민2세의 청년에겐 너무 어렵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상견례가 지나가고 미국에서 청년의 부모님이 한국으로 나가 결혼식을 올렸다.
나중에, 부모님 보다 늦게 미국으로 돌아 온 아들 내외에게서 그 때의 해프닝을 전해 들
으며 두 내외는 한참 웃었다 한다.
“본本을 가르쳐 보낼걸...”
한국말을 익히게 하려고 집에서는 주로 한국말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지만 자신들에게
쉬운 영어로 대답하기가 일쑤였던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한국문화와 한글공부를 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딸네, 아들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다 모인 날, 나는 그 상견례 이야기를 하며 너희들은 본이
뭔지 아니? 하고 물었다. 머뭇거리는 1,5세인 제 부모들 속에서 토요일마다 한글학교를 몇
년 다녀 떠듬 떠듬 한글을 읽는 10살 손녀가 팔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스프링(spring) !!”
아이는 본을 봄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된 어른들을 쓰~윽 돌아보며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본本은 아이가 배우고 있는
기초 한글보다 훨씬 급이 어려운 한문이라는 것을 어찌알았으랴.
그렇게 본本은 또 다시 봄春이 되어서 어이없는 웃음을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