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시인
허드슨 야드(Hudson Yards) 옆으로 흐르는 허드슨 강물이 보이는 하이라인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눈길에 머문다.
맨해튼이라는 도시의 매력은 살아있는 무대 같은 느낌을 항상 받는데 걸어 다니며 여행하듯
원하는 곳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면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쉽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에서 사는 일이
필수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시간을 명상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고독한 노시인은
외롭거나 고독한 것이 아니라 살아온 긴 시간을 사색하며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남은
시간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을 뵙고 싶어 문자를 드리니 기꺼이 오라고 하셨다.
맨해튼의 늦은 오후가 길게 늘어져있는 어느 날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그녀는 반갑게 기다리고 계셨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짧은 은색 머리에 귀여운 목걸이를
하시고 군복 같은 조끼를 입어 그런 지 몇 달 전에 본 모습보다 훨씬 세련되시고 건강하셨다.
건물 사이에는 찬바람이 불어 살짝 추웠는데 좋은 말씀과 인자한 모습으로 따뜻한 온기로
채워주셨다.
그녀가 건낸 몇 권의 시집을 받고 개망초 꽃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개망초는 외로움을 견뎌낸 긴 여정 같은 고독한 사랑의 흔적이었고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그녀의 글에 묻어났다.
개망초 꽃 사랑은 60년간 계속되었다.
개망초 꽃사랑은 83의 시로 끝났지만 그 아련한 고독한 사랑은 84 85… 계속 마음 속에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뚫어 본 것처럼 내 마음이 거기가 있는 것처럼 읽는 내내 동병상련 같은
마음을 곤두박질치며 가버린 사랑에 아픈 내 잃어버린 웃음도 보았다.
간밤에 읽다 만 글을 더듬거리며 다시 개망초 꽃 사랑에 빠졌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 안의 상처와 아픔을 다시 꺼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삶이 더 진실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아픔을 승화하며 살아온
고독한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는 것을..
새벽이 오기 전 어둠은 더 짙게 이어지더니 한 줄 희망 같은 빛이 창문 틈으로 흘러나오며
답답한 마음이 스르르 사진 속 두 여인에게도 머물렀다.
누가봐도 천진난만한 웃음과 인자한 모습에 아무런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긴 세월 동안 시인은 시로 노래하고 시로 고독한 삶을 승화시키고
그 아픔이 퇴색되어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웃는 모습이 진짜인지 지나간 아픔이 가짜였는지는 모른다.
진짜인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했고 그녀도 잔잔한 미소에 인자함까지 고독으로 뻥 뚫린 빈
마음을 잠시 채운듯 했다.
그러나 시인의 웃음 뒤에 가려진 고독이 여전히 있더라도 인간 자체는 산다는 것에
해결되지 않는 고독과 상실감이 있기 마련이라고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길로
말하는 듯했다.
누구나 나만의 원칙을 중시 여긴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음으로 다가가면 그 외롭고 고독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같이 물들고 스며들어 순간을
아름답게 저장하게 된다.
그녀는 위대한 유산에서 미스 하비샘이 사랑에 상처 입고 결혼식 드레스를 벗지 않고
기이한 모습으로 살아가듯 사람들에게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내면은 고독과 슬픔에 갇혀 나만의 시를 쓰며 그 안에서 다른 소녀 같은 아름다운
자신을 꿈꾸는 분이셨다.
80대 중반의 연세에도 정정하시고 멋진 시인의 정신과 글 속에 남아있는 깊은 고독을
사랑한다.
정서나 감성도 같이 나이 들면 좋으련만 맑은 영혼은 젊어서 와 같이 그대로다.
그리움도 사랑이라…그리워지면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하고 싶다.
붉은 석양이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수평선 너머로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바라보았다.
노을은 그녀의 모습이었고 외로움과 내일 다시 떠오를 희망이 공존하는 살아내야 할
내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