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바람이 달려왔다
등이 휘청거렸다
산발한 머리 가다듬으려
발 밑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허락된 땅 비좁아 가늘어 진 몸
굴욕과 희망이 뒤섞인 누런 피부색깔
진창 속에 간신히 뿌리내린 생,
이방인의 쓸쓸함이 배어있는 자화상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푸르렀을 때 철없이 다 울어버려
휑하니 속 비워진 것이 오히려
폭풍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비결이 되었고
강 건너 지척의 거대한 문명도시가
제 그림자 속에 쇄락해 가도
들꽃과 철새와 더불어
오지의 생명들에게 부어지는 축복을 누렸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제 몸 속을 휘젓는 바람소리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