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에 스미다
정 희수
벌써 며칠 째야, 저 시무룩한 하늘
우울 할 때 함께 놀던 흰 구름들 다 어디로 사라졌나
비 냄새에 시끄러운 참새 떼 대신
전깃줄도 없는 지루한 허공에 엉거주춤
음표처럼 걸려있는 물음표들
꿈속에서 속수무책 수렁에 빠지듯
자꾸만 흐림에 스며드는
이 미묘한 안도감의 발원지는?
그가 유년을 살았던
항구도시의 음습한 안개와
비릿한 골목의 멜랑코리를
몸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까
들쳐보고 싶지 않은 앨범 속 압화
서러운 빛깔 제.비.꽃.
그 시절 웅크린 채 잠든 아이의 몸뚱이는 늘 축축했지
몰래 삼킨 울음이 살갗으로 삐져나왔으므로
이제 값비싼 향수로도 어쩔 수 없는
소멸의 냄새 흥건한 생,
옷장에 걸린 그의 어둑한 옷들을 보면 알겠어
그저 희미하게 존재하기 위해
은밀한 곳에 닻을 내리고 싶은걸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