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

웹관리자 2026.04.18 18:53 조회 수 : 1

 

매미 소리

 

이경애

 

미 동부의 날씨가 연일 100도를 웃도는 불볕더위로 이어지고 있다. 창문을 꼭꼭

닫고 집안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와보았다. 현관문을 나서니 뜨거운 열기가 확 온몸에

감겨온다. 냉방에서 살짝 얼었던 몸이 스르르 녹아 내리며 “아, 따뜻하다.”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아파트 앞 울창한 고목나무에 숨은 매미들의 힘찬 울음소리가

여름의 절정을 알리는 듯 요란하다.

 

매미소리를 들으면 고국의 한가로운 시골풍경이 떠오르며 나른한 향수에 젖게 된다.

들에는 연둣빛 낟알들을 가득 품은 벼 목이 올라오고, 넓은 감자 밭 이랑마다 우거진

초록잎새 위엔 하얀 감자 꽃이 피어난다. 내려 쪼이는 따가운 태양빛에 옥수수 수염이

누렇게 타서 늘어질 때면, 마을은 숨을 삼키고 땅에 낮게 엎드린다.

 

낮은 흙 담 울타리 아래 까마중 나무 열매가 까맣게 익어가고, 뒤창을 열어 툭 터진

대청마루엔 간간히 살랑살랑 불어주는 맞바람에 목침을 베고 누운 할아버지 오수에

드셨다. 때 만난 매미들만 여기저기 목청껏 “매-엠, 매-엠” 울어댄다.

 

가족휴가를 남해 쪽으로 간 적이 있다. 여수의 어느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 떨어

진 곳에 동백 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섬이라고 하지만, 해안에서 섬까지 연결되는

방파제가 있어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수목으로 빽빽한 그 섬은 옛날에는 오동

나무가 아주 많아 오동도 라고 불렸지만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는 오동나무보다 동백

나무가 섬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어 동백 섬 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섬에 들어서자, 수 백, 수 천 마리쯤 될 것 같은 매미들의 합창소리로 귀청이 먹먹했다.

여기저기 매미 허물 벗은 껍데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지 그것들을 열심

히 주웠다. 섬 둘레엔 수많은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꽃이 피는 이른 봄

이나 되어야 동백 섬에 동백나무들이 주인이 될지, 그 때는 요란한 매미 소리에 매미

섬이 된 듯했다.

 

매미는 십 여 년간 땅속에서 유충으로 있다가 지상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면

열흘 남짓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

 

나는 매미를 한 여름 시원한 나무에 붙어 팔자 좋게 노래나 부르는 곤충으로 생각해

왔으나, 그들은 짧은 며칠 동안 암컷매미를 만나 번식을 하고 이 아름답고 자유로운

세상을 떠나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들의 노랫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울음소리였다. 주어진 시간 안에 암컷매미를 만나야 하는 안타까운 표현인 것이다.

암컷매미에겐 소리를 낼 수 있는 발성기관이 없기 때문에 숫 매미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선 최대한 큰 소리로 울어야 했다.

 

태어나고, 죽는 수 많은 생명체 가운데 각 종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있다. 180년

이상을 산다는 거북이도 있지만, 하루밖에 못사는 하루살이도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이80세 가까이 산다고 알고 있다. 열흘 남짓 사는 매미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람은 정말 엄청나게 긴 시간을 사는 것 같다. 그러나, 평생을 수고로이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인생이기에, 그 긴 시간들이 길다고 느낄 사이 없이 오히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 같다.

 

기다리던 소풍 가는 날 몇 번 지나 간 것 같은데, 어느덧 반생을 훌쩍 지나 초로 (初老)

에 들어서고 있다. 사람의 수명이 다 같을 수는 없기에 각자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

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매미의 삶을 보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여유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잘 못한 것 후회하며 돌이 킬 수 있는 시간..

아닌가 싶으면 다시 돌아 갈 수 있는..

가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좀 천천히 살고 싶다.

 

산다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 해도, 이 아름답고 기묘한 세상에서 각양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것은 축복이며, 즐거움이란 생각을 해 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아직 짝을 못 찾았는지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이

안타까운 매미의 울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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