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개 얼룩이 이야기

웹관리자 2023.06.21 08:29 조회 수 : 35

우리 집 개 얼룩이 이야기

 

 

 

아주 오래전 내가 방위로 복무하고 있던 어느 오후였다. 나는 평소처럼 목욕탕 청소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기를 내리고, 수도 잠금과 보일러 등을 확인한 다음, 도시락을 집어 들고 나가려는데, 문 앞에 아주 자그마한 강아지 한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수줍게 나를 보고 있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인이라도 만난 듯 제 집처럼 목욕탕 카운터 안으로 설설 기어 들어왔다. 아마 주인을 쫒아오다가 길을 잃었거나 아니면 버림을 받았음직한 개처럼 보였다. 생후 3개월 정도 지났을까, 아주 자그마한 녀석이었다. 귀엽고 붙임성이 있어 보였다. 불가에서는 개와의 인연을 전생에 아주 깊었던 만남이 있었을 거라 하기에 나는 녀석을 나를 찾아온 손님으로 생각해 냉장고에 있던 우유하고 빵 부스러기를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배가 고팠는지 게눈 감추듯이 내가 준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녀석,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로구나!”

 

낑낑…….”

 

더 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게 더 이상 없다. 네 집이 어디냐?”

 

말이 통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녀석에게 친근한 마음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몸통 중간 중간에 갈색 점들이 크게 있어서 이름을 잠시 얼룩이 라고 불렀다.

 

그래, 네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 가자. 네 주인이 너를 찾으러 오면 그때 돌아가고.”

 

나는 녀석을 안고 집으로 갔다. 그 후로 얼룩이는 우리 집에서 아주 오랫동안 한 식구 같이 지냈다. 녀석은 아주 영리했다.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섰다. 먹으라면 먹고, 먹지 말라면 먹지 않았다. 악수하라면 손을 올려 내 손위에 포개기도 했고, 공을 던지면 그 공을 찾아왔다. 던진 공을 못 찾아오면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은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가 의심이 나는 곳이 있다면 열심히 공을 찾았다. 다음 날에도 잊지 않고 그 공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남 다른 개였다.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았어도 개로서 가져야 할 양식은 이미 다 갖추어 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얼룩이의 총명함을 보고는 진돗개의 피를 받았다고 했고, 어머니는 무슨 개뿔이나 진돗개의 피냐고 하면서 그냥 똥개여, 똥개! 하셨다. 우리 모두 얼룩이를 정말로 귀여워했다. 우리에게 그의 태생은 그리 문제될 일이 없었다.

 

얼룩이는 나와 잠도 같이 잤다. 여름날 더워 방문을 열어 놓고 자면 녀석은 밤에 슬슬 내 방으로 기어 들어와 내 발을 베게 삼아 자곤 했다. 녀석과 아침 운동도 같이 했는데, 운동 시작한지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는 내가 가는 길을 금새 다 외어 내 앞으로 먼저 나아가 길잡이를 하곤 했다. 내가 집을 비운 날이면 녀석은 기가 죽어서 밥도 잘 안 먹었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녀석은 내 친구가 되었고 식구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얼룩이는 성년이 되었고 키도 다 커버렸다. 다 자랐지만 녀석의 태생적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그리 큰 키는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의 작은 키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목줄을 하지 않고 자란 덕분에 녀석의 목은 다른 개들의 목보다 두 배는 두꺼웠다. 강한 목은 강한 힘을 낼 수 있지 않은가! 녀석은 아주 힘이 좋은 개였다. 녀석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기 스스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고, 어느새 작은 동네의 대장이 되었다. 작은 동네의 대장이 되기 위해서 그동안 벌렸던 수많은 다툼으로 인해 상처도 많이 입었지만 힘든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 동내 개들 사이에서 얼룩이는 드디어 대장의 반열에 오른 것이었다. 대장 얼룩이가 지나가면 개들은 그에게 존경의 몸짓을 보내왔고 녀석은 거만하게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 다녔다. 그 거만함이 어울리는 대장 얼룩이의 풍모였다. 얼룩이는 여자 친구도 많이 있었다. 동네 암캐들은 모두 그의 차지였다. 아무도 그에게 암캐를 사이에 두고 시비를 건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얼룩이가 자랑스러웠다.

 

나와 아침 운동을 다니면 녀석은 다니는 곳 마다 오줌을 조금씩 뿌리면서 거리를 휘잡고 다녔다. 마치 여기가 내 영역이야 하면서…….

 

녀석의 오줌 뿌리기는 계속되었다. 녀석의 오줌발은 강해지고 또 진해졌으며 오줌을 뿌리려고 드는 녀석의 다리도 훨씬 높아지고 경쾌해 졌다. 녀석의 다리가 전봇대를 향해 강하게 뿌려대면 댈수록, 뿌려대는 전봇대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녀석의 영역은 점점 넓어졌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크고 작은 싸움은 계속되었다. 녀석은 태생적으로 싸움을 잘해서인지 어지간하면 터지지 않고 가벼운 상처만을 안고 집에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이 관리하는 전봇대에 이상한 오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룩이가 갈기는 오줌보다 한 서너 뼘 정도 높은 곳에다 새로운 개가 오줌을 뿌려댄 것이었다. 얼룩이는 그 전봇대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오줌을 작정하듯이 한참을 갈겨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갈기고 난 다음에도 긴장을 하고 있는 듯 귀를 쫑긋거렸다. 그에게 강한 녀석이 동네에 나타난 것 이었다.

 

내 걱정이 씨가 되었는지 다음날 녀석은 귀가 반 정도 잘라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피가 철철 나면서도 나를 보고는 꼬리를 흔드는 녀석을 보고 나는 기겁을 하면서 녀석의 상처를 보았다. 아마 싸우다가 귀를 물렸거나 혹은 개장수가 지나가는 얼룩이를 낚아채다 생긴 상처라 생각이 들었다. 약을 발라주고 밥을 주니 다 먹고는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더니 피는 멈추었고 이내 기력도 회복이 되었다. 흘린 피를 닦아주고서는 한동안은 집에서만 있게 했다.

 

며칠이 지나 녀석은 다시 밖에 나다니기 시작했다. 상처는 다 아물었지만 찢어진 귀는 그냥 그 상태로 남게 되어 흉해보였다. 상처는 다 나았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나는 녀석의 뒤를 멀찌감치 뒤에서 밟아 보았다. 얼룩이는 이미 갈 곳을 정했는지 익숙한 솜씨로 골목길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지날 때는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고는 건넜다. 한참을 갔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막을 내렸다. 빠르게 뛰지 않고 멈추지도 않았다.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얼룩이는 이내 어느 한가한 단독 주택 앞 모퉁이에서 서성거리다가 그 집을 보면서 나지막하게 컹컹 짖고 있었다. 싸움을 하려고 부르는 짖음이었다.

 

컹컹, 컹컹

 

나는 호기심이 나 자리를 뜨지 않고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자 그 집에서 진돗개 두 마리가 나란히 당당한 모습으로 나오고 있었다. 날씬하게 쭉 뻗은 황구들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집 개 얼룩이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고 있었다. 진돗개들이 나오자 녀석의 찌그러진 한쪽 귀가 살짝 움직이더니 꼬리가 버쩍 올리고 입으로는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얼룩이는 진돗개들을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었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진돗개 중의 한 마리가 이내 얼룩이를 보고 달려와 같이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둘이 으르렁 거리기만 하고 싸우지는 않는 것 이였다. 나는 진돗개를 잘 알기 때문에 얼룩이가 물려 죽을까봐 바로 싸움을 말리려고 뛰어 들었지만, 예상외로 싸움은 그냥 싱거운 닭싸움 같이 되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진돗개가 전의를 상실한 듯 보였다.

 

진돗개 주인이 집에서 나와 내게 물었다.

 

이 개 주인이세요?”

 

, 그런데요. 우리 개를 아시는지요?”

 

, 알다마다요. 지난번 이 녀석하고 우리 집 개 호동이하고 한바탕 붙었는데요. 이 녀석 진짜 빠르고 힘이 장사더군요. 진돗개가 쉽게 이기지 못 했어요. 그날 서로 지쳐서 나중에는 으르렁 거리기만 하더니 이내 흩어졌어요. 녀석, 귀는 다 나았네…….”

 

진돗개 주인은 얼룩이의 귀를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내가 물었다.

 

, 그러면 그때 상처가 이 녀석하고 싸우다 생긴 상처인가 보네요.”

 

,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왜 싸웠나요? 나는 호기심이 넘쳐 물어 보았다.”

 

내 질문에 진돗개 주인은 이내 슬슬 웃으면서 손으로 한쪽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진돗개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녀석 때문입니다. 저 녀석 암놈이거든요.”

 

나는 놀라 물었다.

 

그러면 우리 집 얼룩이가 저기 서있는 암캐 때문에 자기 덩치에 두 배나 되는 진돗개하고 귀가 잘리는 피나는 싸움을 했다는 말인가요?”

 

믿기지 않지만 그렇습니다. 주인도 놀랐다는 얼굴을 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보통 개들은 진돗개를 보면 꼬리를 싹 내리는데 이 녀석은 그냥 덤벼들었습니다. 저도 이 녀석 금방 물려 죽는 줄 알고 걱정했었는데요, 만만치 않게 싸우더라구요. 막상막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이렇게 다시 찾아온 것을 보면 승부를 지으려고 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서로 탐색만 했어요. 그렇다면 언젠가는 한번 다시 터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게 단속을 해 주세요. 다음에 다시 붙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진돗개 주인은 새삼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경고성 발언을 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진돗개가 다시 싸운다면 우리 집 얼룩이를 물어 죽일지도 모른다는 경고인 셈이었다. 나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녀석은 못내 늘씬한 진돗개 암컷이 아쉬웠는지 자꾸 뒤 돌아 보았다. 그 진돗개 암컷 뒤에는 녀석과 싸웠던 수컷 녀석이 으르렁 거리면서 얼룩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녀석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했다.

 

얼룩아, 이제는 가지 마라. 다시 저 진돗개랑 싸우면 지지 않겠니. 나는 네가 다치는 것이 싫다. 가지마라 다시는, .”

 

…….”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한참동안 그 진돗개 집에 가지 않은 듯 보였다. 몸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 녀석은 그 늘씬한 진돗개 암컷을 잊은 듯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녀석이 밤이 늦었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밤새 기다리면서 걱정을 했지만, 녀석은 결국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도 얼룩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룩이의 사진과 연락주소를 만들어 방을 동네 여기저기에 부쳤다.

 

개를 찾음, 이름 얼룩이. 귀 한 쪽이 찌글어졌고, 목이 두꺼움. 찾은 분에게 후사함.”

 

삼 일이 지나니 누군가로 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동네에 부친 방을 보고 전화했습니다.”

 

, 누구신가요?”

 

개장수가 채 갔어요. 지나가다 봤어요. 잊어버리세요.”

 

우리는 얼룩이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난 줄 알고 슬퍼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흘이 지나 얼룩이는 초췌한 모습으로 집에 다시 돌아왔다. 우리 모두는 기뻐서 얼룩이를 모듬어 안고 기뻐했다. 지난 며칠간 무슨 고초를 겪었는지 녀석의 행색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마 몇날 며칠을 묶인 채 한 자리에서 있었으리라. 그리고 그 자리에서 먹고 싸고 하면서…… 고약한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녀석을 목욕시키고 난 다음 음식을 준 다음 잠을 자게 했다. 죽은줄 알았던 얼룩이 녀석이 다시 살아온 것이었다. 자고 있는 녀석의 머리맡에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다시는 어디 가지마라, 얼룩아……

 

낑 낑……"

 

녀석의 목 두께가 그를 묶고 있었던 목줄을 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몸을 추스르고 나서는 좀이 쑤신지 이내 녀석은 다시 자기 구역 점검을 나서기 시작했다. 지나 다가면서 그가 뿌렸던 오줌의 냄새를 맡으면서 옅어졌다고 생각이 들면 재차 뿌려댔다. 동내 한 바퀴 다 돌 무렵 녀석은 마지막 전봇대에다 오줌을 뿌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고 나는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만 사거리에서 녀석을 놓쳐 버린 것 이었다. 녀석을 추적하는 것은 포기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한참이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만났던 진돗개 주인입니다. 댁의 개가 여기에 찾아와 호동이랑 한바탕 다시 붙었습니다. 서로 심하게 물고 싸웠는데 이번에는 호순이도 같이 덤벼서 댁의 개가 많이 다쳤습니다. 제가 말려서 싸움은 끝이 났는데요. 그만 댁의 개가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어요. 상처가 심해 보였는데요. 걱정이 되서 전화 했습니다. 잘 치료해 주시고 다음부터는 여기 오지 않을 겁니다.”

 

거기에 갔었군요. 쫓아가다가 놓쳤어요. 그런데 얼룩이는 아직 집에는 돌아오지 않았는데요. 한번 찾아보아야겠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녀석은 잊지 않고 그 진돗개 집에 찾아가 다시 시비를 걸고 한바탕 붙은 것 이었다. 무슨 이유로 녀석은 그 진돗개 근처에 또 간 것 일까? 왜 잊지 않고 그 진돗개를 찾아가 싸움을 한 것일까? 궁금해지면서 다친 녀석의 행방이 걱정스러워 졌다. 우선 얼룩이가 그 집을 가려고 지난번 택했던 길을 따라 걸어 보았다. 사거리를 지나고 시장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언덕을 내리면서 펼쳐지는 작은 논들이 다닥다닥 붙어져 있는 작은 논길을 따라 걸었다. 진돗개의 집은 논길을 따라 저 넘어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옆에 있었다. 그 집에 다다를 무렵 논두렁 아래 피투성이로 외롭게 쓰러져 있는 얼룩이를 보았다.

 

얼룩아, 얼룩아!”

 

얼룩이는 이미 숨이 넘어간 상태였다. 목에는 깊이 상처가 패어져 있었고 입은 벌어진 채로 차갑게 죽어 있었다.

 

나는 울면서 얼룩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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