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랙스톤 블루스

 

2. 신체검사 받던 날

 

 

    

 

                                                                                                                                                                        전준성

 

휴게실에서 바라보는 공장 안팎의 풍경은 언제나 같았다. 밖은 뜨겁고 안은 서늘했다. 밖은 느리고 건조했지만, 안은 축축한 비린내로 가득 차 있었다. 공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흑인이거나 멕시코인이었고,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백인이었다. 공장을 상징하는 회사 로고에는 슈퍼맨 복장을 한 근육질의 닭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닭다리를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림 속의 닭을 치키라고 했는데, 녀석은 언제나 웃고 있으며 행복해 보였다.

휴게실 밖 공터에서 점심때를 이용해 한 무리의 멕시코인들이 축구공 대신 폐사된 닭으로 멀리 차기 내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앞굽이 단단한 작업화를 신고 있었는데, 닭을 차면 배가 터져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위에는 검은 새들이 원을 그리며 공장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한 녀석이 동료들로부터 돈을 걷으며 축구 선수처럼 요란한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새들이 피 냄새를 맡고 떼 지어 몰려들어 땅에 떨어진 닭 내장을 허겁지겁 쪼아 먹고 있었다.

 

*

 

 

가족들과 미국 이민을 결정한 것은 큰 아들 상우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던 삼 년 전 여름이었다. 판정을 받기 전 우리는 아이가 몇 시간이고 혼자 앉아 고난이도 그림 퍼즐을 척척 맞추며, 가르쳐 주지도 않은 글을 혼자 깨우치는 것을 보며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듣지 못한 클래식 음악에 열중 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혹시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어쩌다 지극히 평범한 부모로부터 이런 아이가 나왔을까, 그저 신기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정밀 검사로 상우는 언제나 같은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선호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시청각 정보를 유독 잘 기억하는 전형적인 자폐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돌아온 날, 나는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아이가 계속 커갈 텐데, 내가 건강하게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현대의학으로는 자폐 원인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가 잘못 해서, 라는 죄책감만 들었다. 국내에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아이의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눈을 마주쳐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늘 혼자 있는 아이, 마음을 닫아 버린 아이였다. 아이는 늘 자기 세계 속에서만 살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 시를 정착지로 정한 이유는 그곳에 유명한 아동 자폐증 치료 병원이 있었고, 아내 쪽 친척들이 애틀랜타 시에 살고 있었다. 마침 내가 다닐 수 있는 아이티 계통의 직장이 있었고, 기후도 좋아 초기 정착지로는 좋았다. 그러나 지난 해, 금융위기를 겪으며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말았다. 나는 규정상 이 주 안에 직장을 잡아 근로 비자를 다시 만들어야만 했지만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 년만 고생하시면, 영주권 받게 해 드리겠습니다.”

 

얼마가 들어갑니까?”

 

만 불정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한국에서 직접 오는 분들은 삼만 불씩 받고 있습니다만…….”

 

생각보다 비싸군요.”

 

영주권 브로커는 조지아 주 클랙스톤에 소재한 대형 닭 공장에 취업을 알선했다. 닭 공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란, 말 그대로 닭을 잡아 내장을 빼고 부위별로 잘라 무게를 단 다음 포장하는 일이었다. 닭을 죽여 가며 그 비린내를 맡아야지만 비로소 미국에 체류할 수 있다는 현실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지금의 삶이 불편한 의자에 앉아 억지로 보아야 하는 재미없는 연극이기를 바랬다. 그래서 내가 겪고 있는 불필요한 고통이 연극이 끝나듯 마지막이 있으며, 지금이라도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간다면, 밝고 새로운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

 

 

토요일 오후 어스름이 내리기 전, 황량한 클랙스톤 벌판은 희뿌연 빛으로 가득 차 흐릿했다. 지평선 너머를 비추던 오롯한 빛이 태양 속으로 사라지며 안개처럼 뿌예졌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태양이 마지막 빛줄기를 내뿜어 보지만, 밀려드는 낙조에 빛줄기는 서서히 약해졌다. 태양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녹아 들어가 사람들 시야로부터 아득히 멀어져 갔다. 거칠고 황량한 클랙스톤 벌판의 낙조는 화려했지만, 치명적이기도 했다. 노을 속에 깊이 빠져,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먼 길을 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망상에 사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화려하지만, 아쉽고, 아쉽지만 어딘지 모르는 불편함이 클랙스톤 벌판의 노을 속에 그대로 있었다. 노을은 천천히 진행되어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석양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색깔을 입혔고, 스치고 지나며 황량한 클랙스톤 광야에 훈훈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석양이 길게 늘어지고 하늘은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노을은 이제 어둠의 전령사가 되어 빛이 들어 왔던 그 길을 따라 어둠을 등에 지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저예요…….”

 

아내의 비음 섞인 목소리가 핸드폰 폴더 속에서 작은 신호를 타고 내 귀에 전달되었다. 이백여 마일의 거리가 단숨에 접혔다. 사위는 어두워졌고,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치는 부분만 보일 뿐 주위는 칠흑처럼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한 두 시간이면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아이는 자나?”

 

…….”

 

무슨 할 말이 있소? 있으면 말해.”

 

이민국에서 신체검사 통지서가 왔어요.” 아내의 말꼬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신체검사? 무슨 신체검사를 말하는 거지?” 내가 물었다.

 

영주권을 받는데 필요한 거예요, 하며 아내는 이민국에서 발송한 편지를 읽어주었다. 신체검사 대기자가 많아 두 달 후에나 예약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

 

 

월요일 오후 두 시경, 근무조가 바뀌는 시간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작업반장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를 수군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민국 직원들이 인근 경찰들과 물밀듯 들이닥쳤다. 경찰은 먼저 총을 뽑아 들고는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출입구를 봉쇄했다. 그리고 이십여 명쯤 되는 이민국 직원들이 경찰과 한조를 이루어 근로자들의 신분증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탈의실에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벗고 샤워를 한 다음 잠시 벤치에 앉아있었다. 갈아입을 옷은 벤치 옆에 놓고 퇴근 준비를 하며 여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단속원들이 들이닥쳤다.

움직이지 마, 라고 소리치며 그들은 내게 큰소리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나는 가방 지퍼를 열고 내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밤 가방 정리를 하면서 신분증과 여권 등을 다른 곳에다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감했다.

 

신분증은 집에 있습니다. 두고 왔어요. 시간을 주면 가져오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여기 있는 놈들에게 물어보면 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장난치지 말고, 얌전히 따라오라고.” 이민국 직원이 말했다.

 

나는 이들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이들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들을 따라오라 했다.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이민국 직원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던 경찰이 내 팔을 젖히고는 수갑을 채웠다. 졸지에 나는 범죄인이 되어 버렸다. 이들은 나를 거칠게 끌고 갔다. 내가 이들에게 신분증이 집에 있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지만,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들은 내가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더욱 더 나를 압박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신분증은 집에 있다고. 나는 불법체류자가 아니란 말이야.”

 

나는 얼떨결에 큰소리로, 그것도 한국말로 소리치자, 단속반 중 한 사람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를 계속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렸고, 경찰이 가라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우리가 닭을 구분할 때 고기용과 달걀용으로 구분하듯 표정 없는 이민국 직원들은 우리를 신분증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했다. 우리가 병든 닭을 폐기 통에 폐사시키듯, 이민국 직원들은 신분증이 없는 자들을 닭장차에 쓰레기 더미처럼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우리는 이민국 보호실로 보내졌고, 거기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취업을 알선한 브로커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곧 변호사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불법체류자들과 섞여 이민국 보호실에서 지내야 했다. 수감자 대부분이 멕시코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이런 경험이 많은 듯 아무런 동요 없이 시시덕거리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내던 멕시코 친구 아미고가 불안해하는 내가 안쓰러운지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친구 너무 불안해하지 말게나. 나는 이번이 세 번째야. 겪어 보니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하지 말게.” 녀석은 느긋한 표정으로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되풀이 말했다.

 

누구나 다 길이 있는 법이야. 불안하다고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아미고의 말에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길이 없으니 너는 땅굴을 팠지. 그렇지.”

 

수백 개도 넘는 땅굴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 근처에 널려있는데, 이 중 긴 것은 상상을 초월하지.”

 

냉동차도 있어. 한 이틀 냉동고에서 있어 보라고. 참치가 매끈한 여자로 보인다니까. 흐흐흐.”

 

컨테이너는 어때. 100여 명 되는 사람들이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똥오줌 싸대며 한 일주일 지내보라고. 삼십 퍼센트가 질식해 죽고 나머지도 호흡기에 문제가 생기지. 마침내 미국 땅에 도착해, 컨테이너 뚜껑이 열리고, 순식간에 밀려들어오는 신선한 공기 그리고 햇빛……우리가 지금 숨 쉬는 이 공기와 따사로운 햇빛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고. 죽어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지.”

 

그 와중에도 어떤 것들은 붙어서 섹스를 하지. 일주일 내내 끙끙거리는데 집요한 것들이었어. 그래서 태어난 아이가 있는데, 우리는 녀석을 컨테이너라고 불렀지. 녀석은 지금 엄연한 미국 시민이야. 미국에서 태어났으니까. 헤헤헤.”

 

이민국 보호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제히 웃으며 밀입국 때 경험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 추방된다 하더라도, 결국 다른 경로를 통해 미국 땅에 다시 들어올 것이다. 멕시코 친구들이 우선 추방되었고, 나 역시 변호사가 오지 않아 추방의 선상에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도 이런 사실을 주지시켰다.

 

상황이 어렵게 될 수 있으니 만일을 대비해 학생 비자도 신청해 놓고.”

 

그리고 마침내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는 마치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위해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에 때마침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변호사는 내 신분이 확실하다는 것을 이민국에다 증명했고, 나는 그날 풀려 날 수 있었다. 그날 시행된 불심 검문으로 나와 잘 알고 지내던 한국사람 중 다섯 명이 추방되었다. 이들 모두는 공문서위조혐의로 기소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영주권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

 

 

작은 구멍을 통해 나는 시퍼런 바다 물결을 헤치며 나아가는 커다란 선체의 일부와 거기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았다. 포말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천장이 스르르 열리더니 새파란 하늘과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한꺼번에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어둡고 음침한 어둠이 사라지자, 공기는 순하고 향기로웠다.

 

나는 누군가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육지에 첫 발을 내딛자, 청량한 바람과 향긋한 비린내 때문인지 배가 몹시 고팠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큰 광장이 있었고, 중앙에는 커다란 단상이 하나 있었으며, 단상 위에는 흑인들이 벌거벗은 채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이 있는 단상으로 끌려가 가운데 서게 되었다. 이때, 나는 내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태양은 중천에 높이 걸려 있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햇살은 우리의 헐벗은 검은 몸을 태울 듯이 사납게 달려들고 있었다. 단상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노예들을 보았다. 잠시 후, 한 무리의 늙은 백인 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는 내 몸을 만지자 경매장은 이상한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당황스러워졌다. 그 중 한 여자가 내 앞에 서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놀라 소리쳤다.

 

검둥이가아니지?”

 

갑자기 단상 주위에 있었던 백인들이 사라지면서 경매장 전체가 어둡게 변했다. 어둠속에서 천천히 빛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경매에 참가했던 사람 중에는 흑인들만이 남았다. 흑인들은 모두 동양인들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검은색에서 황색으로 바뀌는 장면은 급작스러웠고 어색하기도 했다. 한 흑인 노예가 검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한껏 웃어대기 시작했다.

 

새벽 5. 알람이 울렸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았다. 사위는 안개에 젖어 어둡고 눅눅했지만, 멀리서 희붐한 빛이 밀려오고 있었다.

 

파란색 가운, 장화, 앞치마, 토시, 고무장갑, 머리망, 귀마개, 가글…….나와 동료들은 마치 수술하는 의사의 복장을 갖추고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555. ‘하고 부져가 울렸다. “빨리 들어가!” 작업반장의 신경질적인 재촉이 들렸다. 사람들이 공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때, 나는 내가 진공청소기에 내장이 빨리는 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 안에 들어서자, 컨베이어 벨트 위에 걸려 있는 닭들이 내장을 빼달라고 애원하듯 와글와글 소리치며 쏟아져 밀려왔다.

세 명이 한 조이다. 세 명은 닭 내부를 검사해 똥을 걸러내는 나와, 닭 간과 내장을 골라내는 친구 그리고 병든 닭을 골라내는 인스펙터로 구성되어있다. 인스펙터가 병든 닭의 증상을 말하면, 우리는 지시대로 병든 닭을 따로 빼냈다. 요즈음 피부가 빨간 닭이나 달 분화구같이 구멍이 난 닭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암에 걸린 닭이라고 하는데, 처음에 나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 있었던 대규모 단속에도 불구하고 추방된 만큼의 인원이 다시 보충되었다. 한국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이 있고, 그 기억 속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에게 그 이민국 직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눈길과 나를 보며 놀라는 표정……. 그것은 내가 어떠한 탈출구가 없는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서 미친 듯이 한국말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나의 밑바닥을 그 사람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그를 계속해서 볼 수 없었고,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경찰이 가라는 곳으로 순순히 걸어 들어갔다.

내가 그 이민국 직원을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팔월. 그는 점심이 시작된 지 오 분이 지난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휴일을 애틀랜타에 있는 집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 일찍 클랙스톤에 도착했기에 약간 피곤한 상태였고, 지난번 신분증 문제로 큰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민국 직원을 만나는 것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혹시 무슨 구실이라도 잡아 나를 다시 곤경에 빠지게 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가 항상 앉아 창밖을 보던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밖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 점심을 가지고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갔다.

제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이민국 직원은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였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에 첫인상이 아주 좋았다. 남을 배려 할 줄 아는 말투와 매너가 나를 어느 정도 편하게 해주었다. 나이는 이십 대 말이나 삼십 대 초 정도 보였으며, 이민 2세임에도 한국말이 아주 유창해 웬만한 대화를 하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지난번 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고개를 왜 돌리셨지요?” 그가 물었다.

 

그냥부끄러웠어요. 그날은 왠지…….” 나는 당황스러워 말을 더듬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나를 만나러 온 용건을 밝혔다. 그는 나를 통해 닭 공장에 취업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실태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다고 하자, 그는 고맙다고 하면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물었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내가 이곳에 와서 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내 아이와 그때 벌어진 외환위기와 직장 그리고 근로 비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며 그는 내 처지를 공감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다른 한국 사람들에 대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만을 말했고, 그 내면의 일이나 이민자들의 실태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서 더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는지 가벼운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치키라는 저 닭 그림이 몹시도 불편합니다.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그가 물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불편합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동양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불편해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멕시코 인들이나 흑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보아요.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귀엽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아마 제가 여기에 더 오래 있다면 저 닭 먹는 닭이 귀여워 보이겠지요. 허허허.” 내가 말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벨 소리가 들렸다. 작업반장이 신경질적인 말투로 사람들에게 자리로 빨리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며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머리 위로 치키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하며 밖으로 나갔다. 다들 돌아간 텅 빈 흡연 장소에는 담배꽁초들만이 무수히 쌓여 못다 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 와글거리고 있는 듯했다. 아직도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는 무더운 공기 속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잘 참아온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담배 한 개비 꺼내 불을 붙였다.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뿜었다. 내뿜은 연기가 허공을 향해 퍼졌다. 작업복을 벗고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채 문을 여는 순간, 밀려드는 청량한 바람……. 나는 바람을 느끼며, 바람 속에 스며든 작은 편안함과 노곤함으로 그와 앞으로 나눌 이야기를 생각했다.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들어가면 더 물어볼 이야기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내 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리로 돌아와 그와 한 십 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것처럼 서로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며 헤어졌다.

 

 

*

 

 

밤새 비가 내렸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는 깊고 강하게 내렸다. 천둥은 집을 흔들 정도로 강렬했으며, 번개가 칠 때마다 창밖은 대낮처럼 밝았다. 뒤척거리다 새벽녘이 되어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우리가 집을 나설 때, 시커먼 구름 사이를 뚫고 햇빛이 조각조각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급작스러운 변화였다. 사위는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고, 빌딩을 두르던 유리창은 쏟아지는 빛을 더는 감당할 수 없어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빛은 빠른 속도로 넓게 퍼져 나갔고, 스쳐 지나간 모든 것을 일순간에 화려한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거리의 자동차들도 넘치는 빛을 사방에 튕겨내며, 어느새 주위는 빛의 천지가 되어 자글자글 들끓었다. 먼지에 찌든 가로수 이파리들조차도 내리는 햇빛 아래서 아름답고 공평해 보였다. 우리는 급작스러운 빛의 홍수 속에서 주위를 돌아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오래된 도시인 애틀랜타 시내에서 주차할 곳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오 분 정도 떨어진 골목에 겨우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벽은 허름했고, 흑인 특유의 번잡스럽고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진 낙서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불편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어색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어렵게 주차를 한 후, 병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비트의 흑인 음악이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흘러다녔고, 허름한 건물 주위로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다시 잿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병원을 향해 걸으며 주위에 한가하게 놀고 있던 흑인들과 마주쳤다. 이들 중 하나가 나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검은 얼굴에 새하얀 이빨이 선명한 대조를 보였지만, 싱그럽게 웃는 모습은 아주 천진해 보였다. 오 분 정도 걷자,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병원의 이름이 조지아 클리닉이었는데, 지난밤 몰아친 폭풍우에 간판 일부가(클리닉) 떨어져 나갔는지, 조지아만 남아있었다.

병원은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맞아야만 하는 풍토병 예방 주사와 영주권용 신체검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병원이었다. 병원의 원장은 은퇴한 내과 의사였는데, 자기가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월급을 받는 의사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니면, 의사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병원 안에 들어갔다. 병원 입구에 깔린 빨간색 카펫이 색이 바란 채 여기저기 구멍이 나 너덜거렸다. 병원 안으로 들어가다 보니 오래된 곰팡냄새와 병원 특유의 포르말린 냄새가 뒤섞여 묘한 냄새가 났다. 대기실 입구에는 입술이 두껍고 뚱뚱한 흑인 간호사가 우리를 보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영주권 신체검사? 라고 짧게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간호사의 무뚝뚝한 표정이 금방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고,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반갑습니다. 나를 따라오세요.” 간호사는 우리를 대기실로 안내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의사 선생님께서 부를 것입니다.” 간호사가 말했다.

 

삼십 분 정도 지나자 허리가 꾸부정한 백인 의사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미스터 황! 닥터 화이트라고 합니다.” 우리는 눈인사를 하며 악수를 했다. 악수를 하자마자 그는 기침을 요란하게 해댔다. 그렁그렁하게 가래가 끓는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귀에 무척 거슬렸다. 그가 기침할 때마다 주름진 목울대가 닭 볏처럼 너덜거렸고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신체검사는 바로 시작되었다. 의사의 눈과 손은 느릿느릿 움직였지만, 그 속에서 어딘지 모르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과 귀를 보았고, 이빨이 튼튼한지 획인 하고자 작은 장도리로 이쪽저쪽, 구석구석을 쳐 보았다. 그리고는 이빨의 색깔과 모양을 상세히 적었다. 그는 또, 눈과 입술과 그리고 머리의 색깔도 꼼꼼하게 적어 넣었다. 청진기로 우리의 호흡을 들어 보았으며, 엑스레이 사진도 찍었다. 그동안 받아 온 일반적인 신체검사였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팬티를 벗으세요.”

 

나는 의사의 말에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내가 따지듯 그에게 벗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나는 당신과 당신 아이의 남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거부한다면, 나는 이민국에다 당신이 신체검사를 거부했다고 보고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시죠. 미스터 황! 의사는 내게 신체검사 항목을 보여 주었다. 그는 무표정했지만 단호했으며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의사의 기세에 눌려 쭈뼛쭈뼛 팬티를 벗었고, 의사 앞에 멋쩍게 서 있어야만 했다.

 

, 한번 봅시다.”

 

그는 호기스럽게 검사용 라텍스 고무장갑을 끼며 하는 요란한 소리를 냈고, 무표정한 미소를 지었다. 의사의 금니가 전등 빛에 반짝거렸다. 자기가 의사라는 사실을 내게 각인시키기 위한 의도적으로 연출한 행동 같았다. 늙은 의사가 검사를 계속하는 동안 나는 쉴 새 없이 달려온 지난 몇 년간의 미국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닭 내장 빼며, 암에 걸린 닭을 분리폐사 시키던 일, 도망가는 닭을 잡다 넘어져 울던 일, 닭 모가지를 가위로 자르던 일……. 문득, 피곤함에 지치고, 절망스럽고 외로운 이 황량한 미국에서 그래도 살아야 하는 내가 너무도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일면식도 없는 늙은 백인 의사에게 바짓자락을 내려 내 성기를 내맡긴 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솟구쳐 나온 것이었다.

 

미스터 황! 아유 오케이?”

 

의사는 내 급작스러운 반응에 놀랐는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느릿느릿 검사를 계속했다.

 

알이 하나라도 생식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옆에 있는 아이가 그 증거지요. 십만 명 중의 한 명은 알이 하나입니다. 선생을 닮아 아드님도 알이 하나군요.”

 

그가 엷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아이의 검사서를 펴 알의 숫자와 남성임을 기재하는 난에다 1 Male의 약자인 M이라 썼다. 우리가 남자임을 확인한 절차였다. 검사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의사 소견서에는 양호라고 썼고, 자기 사인을 큼지막하게 집어넣었다. 검사서와 소견서를 함께 접어서 이민국으로 보내는 봉투 안에 동봉했고 봉인했다. 그는 병원에서 편지를 이민국으로 직접 보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신체검사가 끝났다. 밀려오는 수치감 때문에 불쾌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는 서둘러 병원 밖을 나왔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는 여전히 흑인들이 무리를 지어 놀고 있었다. 아까 본 흑인이 나를 보고는 반갑게 말했다.

 

헤이, 재키 챈! ~ ~~~!” 어설픈 쿵후 흉내를 냈다. 모든 동양인들이 다 성룡처럼 무술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헤이, 마이클 잭슨!" 나는 농담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헤이, 재키 챈!” 그가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나는 작별 인사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도 내게 손을 흔들며 바이바이라고 했는데, 상우가 갑자기 손을 흔들며 빠이라고 하고는 그를 보고 웃는 것이었다. 웃는 상우의 눈망울에 총기가 서렸다. 우리가 차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소낙비 때문에 차를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는 비가 그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던 흑인들도 어느새 다 없어지고, 내리는 비는 마치 연극이 끝난 극장을 청소라도 하듯이 거리의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었다. 빗물에 실려 시커먼 물이 수로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비가 그쳤다. 한낮의 열기로 물렁물렁해진 아스팔트는 잠시 내린 빗물에 젖어 식으며 다시 단단해졌다. 도로는 한증막처럼 잔뜩 김이 서렸으며, 증기는 안개처럼 도로 위에 낮게 깔려 몰려다녔다. 그때 애틀랜타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잿빛 하늘 저 너머에서 치키가 닭다리를 들고 천진스럽게 웃으며 우리를 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오래 동안 묻어 두었던 소설을 최근에서야 다시 보았는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이 탈고를 재촉했고, 다 고치고 나서야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다음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부끄러움이 저를 재촉할 것입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 동안 이러한 부끄러움과 탈고의 재촉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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