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짧은 인생: I Started a Joke

웹관리자 2025.08.27 17:57 조회 수 : 5

 

내 짧은 인생: I Started a Joke

 

 

 

 

 

전준성

 

 

  모든 게 다 꿈만 같았다. 심신이 나른해지고 몽롱해지더니,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 하늘이라도 날고 싶었다. 그래,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현실적이었다. 희미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전해주는 상쾌함과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지린내 ……,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핏줄기가 이건 꿈이 아니야, 라고 나를 확신시키고 있었다. 피는 내 오른쪽 머리에서 출발해 하수구를 향해 마치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핏물은 바닥에 있던 먼지와 섞여 검붉은 색이 되었고, 나는 숨이 차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오 층 난간에 머리를 삐쭉 내밀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를 보았다. 그녀였다. 우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며 잠시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금방 살기가 충만해져 섬뜩한 미소를 보냈다. 그녀는 자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누가 자기를 지켜보는지 무척이나 조심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같이 온 여자에게 고갯짓을 하며 자기 쪽으로 오라고 했다. 둘이 나란히 서서 나를 내려 보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잠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흐릿해진 내 눈 앞에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들이 스르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 장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서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그들과 대화하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눈앞의 장면들은 마치 플레이 버튼과 되감기 버튼을 동시에 눌러보는 것처럼 내 삶의 전체가 한꺼번에 드러나 총알처럼 스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지난 삼십여 년의 삶을 파일로 정리해 보여준 다음, 메모리 스틱에 담아 던져 줄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장면들은 시간 순이 아니었다. 여러 장면들이 동시에 떠오르고 겹치며 흩어졌다. 어떤 장면은 물 위에 뜬 돛단배처럼 주위를 맴돌며 떠돌았다. 떠돌다 지워지고, 다시 재생되기를 반복했다. 살면서 경험하고 보고 느낀 것 이외에 생소한 것들도 많이 보였다. 그것들은 기억의 저편, 어둡고 음침한 골목길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포장지 속에 단단히 감추어져 있어 단숨에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들은 마치 총알처럼 내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혀 있어 자연적인 기억이라 당연하게 믿고 있었다. 내가 집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와 군대에서 통제를 위해 마음속에 수시로 집어넣었던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야 한다, 희생하라' 그런 것들이었다. 지겹도록 남용되던 마인드 컨트롤의 영향이었다. 마인드 컨트롤로 인해 기억이 황폐해지고 거품이 생겨 죽을 때가 되어서 비로소 내 본연의 기억을 찾아간다는 사실은 불편했고 아쉬웠으며 슬펐다. 내 감춰진 기억들의 대부분이 죽을 때가 되니 스르륵 거품 빠지듯 줄줄 새 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빠져나왔을 때, 실없는 농담처럼 나는 혼자였고, 무척이나 쓸쓸하고 측은하고 더럽고 못생긴 한 동양인 아이였다.

 

 

 

*

 

 

 

  “지금부터 당신은 미합중국 영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추후, 당신은 미합중국 영토 어디에도 다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공항에서, 이민국 직원의 말은 사형 선고와도 같이 엄숙하고 차가웠다. 삼십여 년의 미국에서의 삶이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요약 정리되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우습게도 내 머리 속에서는 비지스 (Bee Gees)의 노래 아이 스타티드 어 조크 (I Started a Joke)가 맴돌고 있었다.

 

 

- 내가 농담을 하자 세상은 울기 시작했고 ~(생략)~ 내가 울자 세상은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농담이 나에 대한 것인지 몰랐다.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비지스의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변태 성욕자인 의붓아버지로 부터 버림을 받고 아동 보호소에 잠시 있었을 때였다. 성폭력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몇날 며칠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어느 날, 저녁노을이 내 작은 방 창가를 빨갛게 적시고 있을 때, 라디오인지 어디에선가 그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내가 처한 모든 것들이 다 농담처럼 들렸고, 마침내 내 가슴 속에 무엇인가가 빠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살 수 있었다. 그래 다 농담인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덧없는 농담인거야. 그때 이후로 나는 뭔가에 부딪혀 꼼짝하지 못할 때, 그 노래를 떠 올리며 벗어나곤 했다.

 

  팔 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마약을 소지한 혐의로 네바다 주 라스베거스 경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그때 나는 노숙자로 거리를 방황하며 인생의 어두운 골목길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거리에서 나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었다. 자살을 그리며 마약에 길들여져 있었다. 마약 소지로 구속되기는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소지한 양이 지난번보다 많고 또 재범이어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재판을 위해 국선 변호사가 선임되었고, 그를 통해 나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당신 양부모가 영주권 신청을 하지 않아 그동안 불법체류자로 미국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이민법에 의거 한국으로 추방 절차를 밟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내게 무슨 재미없는 농담을 하거나,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나 했었다. 미군으로 이라크 참전까지 했던 나는 당연히 며칠 구류를 살거나, 최악의 경우 재활원에 끌려가 단기 재활 코스를 수료하면 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심각해져만 갔다. 일심에서 나는 추방 명령을 받았고, 재심 청구를 할 형편이 되지 않아 바로 추방 절차를 밟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게 남은 희망은 없었다. 내게 한국은 그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나 같은 의미였고, 가서 살 수 없는 극한의 시베리아처럼 무서운 곳이었다. 나는 이민국 직원에게 일말의 동정을 바라며 물었다.

 

한국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내 절박한 질문에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그건 당신 나라에 가서 물어보시오. 당신은 불법 체류자일 뿐입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

 

  나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물을 내렸다. , 하는 소리와 함께 심호흡을 깊게 들이 마신 다음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주머니에 들어있는 어머니 사진을 꺼냈다. 한국 외무부 직원이 공항에 있는 사무실에서 나를 조사하며 내게 건네 준 것이었다.

 

  “조사해 보니 당신 어머니와 누나가 충청도 J 시에서 작은 쪽방을 운영하며 살고 있더군. 그리 넉넉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서 다시 만나니 축복받을 일이야. 그렇지 않나.”

 

사진을 내게 건네줄 때, 외무부 직원은 마치 새 신자에게 세례를 주는 동네 목사님처럼 가늘게 눈을 뜨고는 짐짓 거룩하고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고단했던 그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는지 얼굴 전체에 주름이 깊이 파여져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와 무심한 표정 그리고 거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가 숨겨져 있었다. 치아가 빠져 입술 주위가 주름이 자글거렸고, 머리는 쪽을 틀어 비녀를 꼽았다. 이마는 좁고 작았지만 그 안에 주름이 가득해 등고선 표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면 누나는 얼굴이 둥글고 살이 통통해 친근한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눈초리가 아주 사나웠다. 키는 어머니와 비슷했지만, 깡마른 어머니와는 대조적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모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진을 보며 감정이 북받쳐 우는 일은 없었다. 내게 그들은 단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일 뿐이었다.

 

  화장실을 나와 직원을 다시 만났다. 그들을 놀래게 해주고 싶으니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는 부탁을 했다.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며칠간의 소양 교육을 마치자, 한국 정부는 내게 소액의 정착금을 주었다. 나는 그 돈과, 내가 미국을 떠날 때 가지고 들어온 돈 그리고 재미동포들의 후원금을 들고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서류에서 이들의 주소를 찾아 받아 적었다.

 

  나는 어제, 그러니까 이곳 J 시에 내려오기 하루 전, 시장에 들렀다. 거기서 내가 살 수 있는 고급 양복과 구두 그리고 넥타이를 구입해 입었다. 어머니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어머니와 누이에게 줄 선물 몇 개를 사 들고 나는 충청도 J 시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어머니가 살고 있는 J 시는 바닷가에 면해 있는 전형적인 항구 도시로, 도시 곳곳에 비린내가 촘촘히 배어있었다. J 시는 구 도시와 신도시로 나누어져 있는데, 어머니가 운영하는 쪽방은 구 도시의 재래시장 안에 있었다. 오래전 항구 도시로 번창하던 시기에 구 도시는 부산에 못지않았다는데, 평택 항이 열리고 인근 미군 부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던 재래시장 지역은 경제 사정이 나빠져 급속히 빈민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도시는 유흥가가 밀집된 지역으로 최근 인근 도시로부터 인구 유입이 많아져 새롭게 번영하기 시작한 지역이라고 직원이 말해주었다.

 

  어머니의 쪽방을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았다. 시장의 좁고 굴곡진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었는데, 갑자기 허름한 담벼락으로 둘러싼 작은 철거촌 입구(달리 적당한 말이 없었다)가 나타났다. 그것은 입구라기보다는 작은 틈새처럼 협소했다. 입구는 작고 지저분했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서니 마치 딴 세상에 들어온 듯 했다. 철거 직전의 허름한 집들이 거대한 무리로 줄을 지어 언덕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집들은 서로에 서로를 잇대어 길고 가늘게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내가 살았던 미국의 흑인 빈민촌보다도 훨씬 열악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쪽방이 있었다. 어머니의 집은 그 중심에서 쓰러지는 집들을 양 축으로 받혀주는 듯했다. 그곳은 주로 노동일을 하는 장기 투숙자나 떠돌이들이 값싸게 하루 머무는 그런 곳이었다.

드디어 나는 어머니의 쪽방 앞에 바로 섰다. 그곳의 이름은 개벽이었는데, 허름한 쪽방 치고는 꽤나 대단한 이름이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물론 나는 처음에 개벽이라는 의미를 몰라 직원이 내게 그 뜻을 설명해 주었다.

 

 

세상을 열다, 라는 뜻인데…… 구멍을 여는 것이나 세상을 여는 것이나 똑같지……. 흐흐흐.”

 

직원은 이상한 농지거리를 하며 능글맞게 웃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어떻게 같고 무엇이 웃기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하늘을 열고, 세상을 여는 거창한 이름의 초라한 쪽방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대낮인데도 전기를 아끼려는지 쪽방 내부는 어두웠고,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차츰 시력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카운터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머니가 선명히 보였다. 카운터 위에는 재떨이가 하나 있었는데, 잘 닦지 않아서 담뱃재가 소나무 껍질처럼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재떨이 안에는 오래전 누군가가 침을 뱉어 비벼놓은 담배꽁초가 노랗게 변색되어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카운터 맞은편에는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는데 반쯤 열려 있었고, 거기에서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쓰레기통 주위로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똥파리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마치 쓰레기 처리장에 온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깨지 않기를 바라며 어머니의 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어머니의 주름은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거친 바위처럼 깊이 파여 있었다. 어머니를 보며 갑자기 밀려드는 원망과 알 수 없는 그리움 등이 뒤섞여 어쩐지 거북한 마음만 들었다. 삼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던 여자를 보며 나를 낳아준 어머니라는 가슴 먹먹해지는 감정의 몰입은 없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무엇을 의식했는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희미하지만 강렬한 인상이었다. 그녀는 내게 어떻게 왔는지 물었다. 내가 며칠 묵을 라고 한다고 하자, 어머니는 비싼 양복을 입고 번지르한 내가 이상했는지 정말인지 다시 물었다. 내가 정말이라고 하자, 갑자기 묘한 웃음이 얼굴에 서렸다. 그녀의 묘한 웃음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적의를 느꼈다. 그것은 오랜 시간 고생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천착되어 나타나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발톱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며칠이나 묵을라우?” 어머니가 물었다.

 

  “한 삼 일이요.” 내가 말했다.

 

  “만 오천 원만 내요.”

 

 

  나는 일부러 지폐가 가득한 지갑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며 돈을 꺼냈다. 어머니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나를 위아래로 주위 깊게 훑어보았다. 어머니는 돈을 받아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근 다음 카운터에서 나왔다. 그녀는 방 열쇠와 물 주전자를 들고 어둡고 긴 복도를 따라 앞서 걸었다. 어둠 속으로 갑자기 빨려 들어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빠지지 않았나, 갑자기 두려워졌다. 나는 어머니 등 뒤로 바싹 붙었다. 허리가 굽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안도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우니 발 조심해요. 넘어져도 절대 책임지지 않아요. 지난번에 노가다 하는 어떤 무식한 놈이 미끄러지지도 않았는데 미끄러졌다고 하면서 지 다리가 부러졌으니 치료비를 물어달라고 지랄 염병을 떨었지 뭐야. , 기가 막혀서……쯔쯔쯔…… 막무가내로 깽판을 놓는 바람에 아주 힘들었어요. 우리 젊은 사람은 그럴 사람 같이 보이지는 않구먼.”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쪽방은 여러 채의 철거 예정 집들을 통합해 개조했는지 카운터에서 객실에 가는데 다중의 문과 미로를 거쳐야 했다. 마지막 문을 열고 나가니 큰 마당에 재래식 펌프가 있는 세면장이 보였다. 그 옆에 화장실과 커튼으로 막아놓은 샤워장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가 마당에 가득했다. 마당 구석에는 채소와 고추 등을 심어놓은 작은 화단이 있었다. 208호실 문 앞에 서서 어머니는 가져온 열쇠로 방문을 열고는 내게 주었다. 주전자를 밀어 놓고는 선풍기를 틀면서 날이 더우니 세면실에 가서 샤워를 하면 좋다고 말했다. 나는 가방과 사 온 선물을 방안에 밀어 넣었다. 어머니의 눈길이 가방과 선물에 멈췄다.

 

  “선물 샀나 보네. 받는 사람은 좋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 아주 오랜 만에 만나는 분에게 드리려고요. 그동안 모은 돈 다 드리려고 여기 왔어요.” 내가 말했다.

 

  “외국에 나갔나 보네. 요즈음 외국에 나가 돈 벌어 오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받는 사람은 참으로 좋겠네 그려.”

 

  “그랬으면 저도 좋겠어요.”

 

 

  나는 짐을 푼 다음 어머니에게 식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시장에 가면 맛있는 국밥집이 있다며 찾아가는 길을 그림으로 그려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막상 밖에 나오니 허기는 없어지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입양되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는 중부 내륙 아이오와의 옥수수 농장 지역이었고, 내가 커서 노숙자로 떠 돌 때는 주로 따듯한 네바다 주 라스베거스에서 살았다.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이라크 파병을 위해 마련된 수송기 안에서 내려다본 바다였다. 그때 본 바다는 실체가 없어 망막한 느낌이었다. 검푸른 것이 바닷물이 아닌 두터운 잿빛 장막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사는 J 시는 바다와 근접한 도시라는 것을 외무부 직원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국밥집에 가는 대신 시장을 나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바닷가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냥 걸어가도 오 분도 채 걸리지 않아요. 택시 탈 필요 없습니다. 내려서 저기 앞에 보이는 길로 죽 따라가다 오른편으로 돌면 됩니다. 바로 바다가 있어요. 괜히 돈 낭비하지 마시오.”

 

  그는 내게 훈계조로 말하며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라고 했다. 이상한 택시 기사였지만, 나름 철학이 있는 정직한 사람 같았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그가 말해준 방향으로 잠시 걸었다. 사거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자 신기하게도 바로 바다가 보였다. 바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날, 바다는 빛으로 가득 차 뿌옜다. 하늘은 맑고 푸르러 빛의 밀도는 점점 고조되었다. 어느 빈 구석 한 점 없이 자글거렸다. 이따금 바람이 불었는데, 그때마다 바람은 파도를 올리고 빛을 허공 속에 부유케 했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빛은 밝게 퍼져나가 공간이 있는 곳이면 살아있는 생물처럼 흘러 가득 채웠다. 나는 바다가 좋았다. 내가 어머니와 여기서 같이 산다면 바다를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을 거라 생각했다. 바다를 보고 나서, 쪽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어머니에게 내 정체를 밝히고 나름 감동적인 재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쪽방에 들어가니, 어머니와 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나가 내게 시간 있으면 근처 노래방에서 술 한 잔 해요, 라고 말했다. 내가 그러세요. 저도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잘 되었네요, 라고 하자, 누이는 노래방에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셔요, 하고 말하며 내게 윙크했다. 그 순간 나는 이들이 아직 나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이가 안내한 노래방은 어머니의 쪽방과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노래방은 철거촌의 맨 끝 자락에 있었는데, 검게 퇴색된 콘크리트 빌딩 안에 있었다. 콘크리트 빌딩의 외관은 페인트가 다 벗겨지고 일부는 허물어져 흉물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흉물스러움이 주위에 늘어져있는 집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샴쌍둥이처럼 거북하지만 서로 떼어 낼 수 없는 이상한 정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것은 철거 촌을 보호하는 정령이 사는 신성한 상징물처럼 보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철거 촌을 억압하는 잔인한 독재자의 궁전처럼 고독해 보이기도 했다. 더러운 골목길을 따라 건물로 향하는 길에 석양이 건물 뒤로 조용히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기운이 검게 퇴락한 건물에 색을 입히며 생명의 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시간은 어찌 보면 신성한 제사를 드리는 엄숙한 의식 같기도 했다. 길게 늘어진 노을 속에서 건물은 황금빛을 발하며 어둡고 초라하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철거 촌을 향해 아름답고 화려한 빛을 내리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철거 촌에 새로운 생명이 깃드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만은 더 이상 더러운 빈민촌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으로 덮인 신전의 백성들이 사는 곳이었다.

 

  허름한 빌딩이 우리를 맞았다. 나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건물 안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노래방은 오 층의 맨 끝단에 있었다. 건물은 칠 층이었고, 상점 간판들이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건물 외벽에 아무렇게나 붙어있었다. 대부분은 영업을 하지 않고 간판만 달고 있을 뿐이었다. 건물 내부는 더욱 형편없었다. 청소를 전혀 하지 않았는지 쓰레기 더미가 널려있었다. 지린내가 진동했고, 인분 냄새도 어디선가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숨을 쉬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서 오는지 사람들은 끝없이 들랑거렸고, 술이 취한 사람들이 돌아가며 소리 지르고 침 뱉고 구토하는 것이 곳곳에서 보였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모습이었다. 누이는 주정꾼들을 헤치며 나를 노래방으로 안내했다. 노래방 입구에서 누이가 내게 지나가듯 말했다.

 

  “저기가 화장실.”

 

  누이는 굵은 손가락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나는 소변이 마려웠다.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돌리려 하자, 누이가 호들갑스럽게 내 팔짱을 끼고는 나를 노래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누이에게서 싸구려 향수 냄새가 났다.

노래방 안으로 들어가자 실로 극적인 반전을 계획한 것처럼 깨끗한 노래방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종업원들은 예의가 발랐고, 깨끗한 복장에 취객들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내 코를 간질였다. 다른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우리는 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누이는 종업원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며 귓속말로 시킨 거 가져와, 라고 했다.

  음식은 한식과 중식이 이상하게 섞여있었는데, 맛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맥주와 소주를 같이 가져왔다. 나는 한식에 익숙하지 않아 중식을 먹으며 술만 들이켰는데 누이는 내게 바싹 다가와 돼지고기에 김치를 싸 내게 하며 입을 벌리라고 했다. 내가 하고 입을 벌리자 누이는 고기를 내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어느새 나는 좋은 기분이 들었다. 누이가 다시 건배를 하자고 했다. 몇 잔을 급하게 들이켜니 취기가 확 올랐다. 나는 어머니는 언제 오시는지 물었다. 그러자 누이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근처에 사시는 할아버지에게 잠시 가게를 맡겨야 하니까요, 라고 했다.

  누이는 내게 의식적으로 술을 권했다. 나는 술을 계속 들이켜면서도, 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말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후, 조용히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들어왔다. 어머니는 앉자마자 소주를 물 컵에 가득 붓고는 벌컥 마셨다. 안주는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누이에게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밖에 나와 누이가 말해준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 내 뒤를 따라온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뒤를 살피지 않았다. 그냥 취객이려니 생각했다.

화장실 앞에 서서 노크를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고 화장실 안으로 오른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발을 움직여 보았지만 디딜 바닥이 없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나는 간신히 발을 거두고 정면을 보았다. 황당하게도, 내 앞에는 있어야 할 화장실은 없고, 정체모를 어둠의 절벽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는 안전하게 몸을 뒤로 빼고 화장실 문을 다시 보았다. 문에는 화장실이라는 표시가 분명히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멍하니 밖을 보며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등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

 

 

머리가 먼저 바닥에 닿으며 나는 아무런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오른쪽 머리 부분이 부서지고, 목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나는 쓰러져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데, 누군가 오 층 난간 사이로 머리를 삐쭉이 내밀며 두리번거리며 땅에 떨어져 있는 나를 찾았다. 맙소사! 그 사람은 내 누이였다. 누이가 나를 오 층 난간에서 밀쳐 떨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아아, 정말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만일 알았다면,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할 수는 없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니 제발 그들을 혈육마저 죽이는 파렴치한으로 몰지 않기를 바란다. 어머니가 누나 옆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죽어가는 나를 내려다보며 기도하듯 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그때였다.

 

 

  - 그 사람 그대라는 걸, 따라라 라~~라라라 따라라……

 

 

  어디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니가 핸드폰을 찾으려 허리춤을 주섬주섬 거리더니, 잠시 후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비명과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라고요. 무슨 말이……, 그럴 리가 없어요. ! 하느님…….”

 

 

  어머니는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땅에 떨어트리며 나를 내려 보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어머니는 그저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제야 내가 잃어버린 당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녀가 애절한 눈으로 나를 보며 눈물을 쏟아냈다. 깊게 파인 주름 속으로 눈물이 파고들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말이 필요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기에 어머니가 느끼는 절망의 정도는 쉽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었다. 나는 두려움이 생겼다. 제 자식을 죽였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는 절망으로 어머니를 끌고 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계속 볼뿐이었다.

 

 

  “어머니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나는 죽지만 어머니는 살아야 돼요. 제발 죽지 마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에게 계속 말을 했다. 어머니는 나만 바라보며 울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무슨 전환데 그러는 거야. 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 옆에 있던 누이도 어머니의 급작스런 절규에 겁을 내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급속히 무너져버렸다. 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절규하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다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무슨 결심이 섰는지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없는지 다시 쓰러졌다. 나를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는 일어서기를 포기한 듯 앉아서 누이에게 고개를 돌리며 뭐라고 말했다. 누이 역시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나에 대해서 누이에게 말했으리라. 잠시 후, 내가 꿈에서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뒤에 서 있던 누이가 어머니마저 오 층에서 밀어 떨어트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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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는 불과 삼 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머리가 깨져 골수가 터지고 피범벅이 된 어머니가 내 쪽으로 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그저 눈만 껌뻑이며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도 어머니를 향해 눈만 껌뻑거렸다. 곧이어 누이도 떨어진 어머니를 보며 자기도 몸을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우리 모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

 

 

  우리들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짧지만 강렬했다. 남들이 우리들의 죽음을 놓고 대단히 비극적이라 말들 하겠지만, 사실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넓게 보면, 이렇게 안타깝고, 불쌍하고, 또 재수 없는 인생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내 인생은 실없는 농담처럼 덧없고 부질없었다. 순간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모든 것이 농담이라는 자기 최면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텨왔어야 했다.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 받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양부모들에게도 다시 버림받고, 노숙자로 거리를 떠돌다 마약에 중독되었다. 인생의 어두운 골목길에 우두커니 서서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고, 한국으로 추방되어 지금 죽는 이 시간에도, 나는 다시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의 별 볼일 없는 최후를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마침내 내가 거의 죽을 때가 되자, 세상은 활기차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한때 고아 수출국 부동의 세계 1위였다. 민관(民官)합동으로 아이들을 수출하듯 해외로 내보낸 부끄러운 결과였다. 외화 벌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정당화 되었던 참담한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버림받아 만신창이가 된 그들에게 지금까지 나라는 없었다.  

 

이 소설은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한호규, 미국명 몬테 하인즈)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었다.

 

주인공이 어머니와 누이를 만나 살해되는 과정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22장에 나오는 신문 기사에 영감을 받았다.

 

 

2014년 뉴욕문학회 단편소설 등단/2014년 해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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