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맛 그리고 봄

웹관리자 2023.06.21 08:32 조회 수 : 24

, 맛 그리고 봄

 

 

 

여보,

 

당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얼마 전 당신 모르게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것은 실로 아주 오랜만의 흡연이었습니다. 아마 이 소리를 당신 앞에서 한다면, 당신은 버럭 화를 내며 언제 어디서 피웠냐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고국에 있으니 면박을 받을 염려가 당장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흡연은 장장 15년 만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당신이 내게 모질게 퍼부었던 온갖 협박과 공갈이 생각납니다. 결국 그것 때문에 수십 년 피웠던 담배와 작별을 했지요.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것은 실로 대단한 결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심과 이후에 벌어진 금단의 고통을 이긴 것이 지금 생각해도 꽤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당신에게 고백하건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담배의 유혹은 은근하게 접근하기도 했고, 때로는 노골적이기도 했으며, 등에 박힌 화살처럼 치명적이기도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고,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던 그 옛날을 그리워했습니다.

 

지금부터 얼마 전 담배를 피우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당신이 고국에 가고 없으니 자연히 먹는 것이 부실해 졌지요. 끼니를 때우는 것 자체가 많이 불편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살판이 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영양 보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식료품점에 들렀습니다. 식품점에는 여러 가지 식재료가 있었고, 그 중에서 당신이 맛있게 요리하던 재료가 눈에 띠어 여러 가지를 사 왔습니다.

 

당신이 하듯이, 우선 마른 무말랭이와 고사리 말린 것 그리고 시래기 등을 물에 충분히 불린 다음, 참기름과 고추장 그리고 깨소금을 풀어 손으로 비벼 밑반찬을 만들었지요. 된장을 풀고, 시금치를 넣고, 두부와 마늘 그리고 파를 넣어 국을 끓였습니다. 그 다음 멸치와 땅콩 그리고 호두에 꿀을 묻히고, 후리이판에 살짝 볶으며 들기름을 뿌려 마른 반찬을 만들었지요. 그러다보니 이런 일들이 일상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되었는지 그리 힘들지 않고, 오히려 만드는 과정이 즐거워 졌습니다. 이렇게 반찬을 만들어 아이들과 같이 점심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고, 봄 날씨도 포근해 나도 모르게 졸음이 쏟아져 왔지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나는 꿈속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가끔씩 꿈속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오늘은 담배가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마 맛있게 먹은 점심 때문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담배를 끊은 지 어느새 15년 되었습니다. 15년 전 20여년 넘게 피어온 오래된 친구 담배 녀석을 잔인하게시리 단칼에 잘랐습니다. 당신의 끝없는 잔소리가 일조를 단단히 했지요.

하지만 잘라진 담배는 15년이 넘도록 녀석의 끈끈한 우정을 과시라도 하는 듯, 고소한 향수는 아직도 내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토록 꿈속에서 실감나게 피운 것이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이상하지만, 오랜만에 피워본 그토록 그립던 담배가 오늘은 그리 정겹지만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담배를 물고 있었습니다. 무슨 심각한 토론을 하고 있었지요. 토론을 하면서 나는 이 담배를 피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계속 들고만 있었습니다.

 

때로는 격렬하게 흔들어 보고,

때로는 부드럽게 다져주고,

때로는 무엇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분필삼아 다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된 달콤한 유혹에 이기지 못하고, 나는 한 순간에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어디선가 지퍼 라이터가 날아옵니다. 마치 영화 다이하드에 나오는 장면처럼 불이 붙여져 있는 채로 그렇게……. 난 그 불을 멋지게 잡아 붉은 연기를 내뿜어 봅니다. 내뿜어진 연기는 가볍게 둥실거리더니 내 호흡기를 통해 살며시 내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담배 연기는 15년이 지났어도 길잡이 없이 익숙하게 내 폐부를 찾아냅니다. 복잡하게 얽혀진 내 몸 장기 속 지름길을 빤히 아는 듯 말이지요. 연기는 심장을 향해 돌진합니다. 거침없이 심장에 도착해 거기에서 펌프질 해 내 보내는 핏속으로 바로 용해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용해된 연기는 니코틴으로 변형되어 내 몸 구석구석 신경 속으로 스멀스멀 퍼져 갑니다. 고향의 구수한 할머니 된장국 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나 바로,

쿨럭, 쿨럭,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쿨럭, 쿨럭,

담배는 더 이상 내 몸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불청객으로 나의 내면은 그를 거부하는 것 이었습니다.

쿨럭 쿨럭,

 

나는 기침 소리에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한바탕 담배 꿈을 꾸다보니까 다시 잠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나는 꿈속에서 열심히 담배를 피웠습니다. 당신은 지금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담배를 다시 피울 거냐고 내게 묻는 것 같군요.

아닙니다. 담배는 절대 피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끔, 그냥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꿈속에서 스릴있게 담배를 피우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의 잔소리가…….

 

 

 

당신의 남편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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