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랙스톤 블루스 1. 아버지 사진

웹관리자 2023.06.19 21:40 조회 수 : 30

  

클랙스톤 블루스

 

1. 아버지 사진

 

 

 

                                                                                                                                                             전준성

 

     

팔월의 마지막 주였다. 나는 조지아주 애틀랜타 공항을 나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덥고 끈적거리는 불쾌한 날씨에도 택시 승강장 근처 멕시코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항상 땀에 절어 있는 그들의 등은 언제 보아도 무거워 보였다. 호세라는 멕시코 친구는 어설픈 영어로 예썰, 땡큐만을 반복했다. 택시가 도착하자, 그는 내 가방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수줍은 미소를 던졌다. 나는 지갑에서 삼 불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돈을 받아 들고는 재빠르게 뒷사람 가방을 낚아채려 했다. 그는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환심을 사려했지만, 뒷사람은 노땡큐, 당신 도움은 필요 없어요,라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가방을 잡으려 했지만, 뒷사람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땀에 흠뻑 젖은 호세의 등 뒤로 태양의 열기는 고조되고 있었다.

 

 

*

 

 

도로 이름이 닭 공장 길인 길이가 짧은 도로 끝단에 거대한 클랙스톤 닭 공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도로변에 전진 배치되어 출동 명령을 기다렸다. 도로의 우측으로 주 정부가 관리하는 교도소 철조망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두 시 정각에 닭 공장을 급습하라는 신호가 왔다. 지역 경찰들이 앞서서 공장 근로자들이 출입하는 입구를 봉쇄했다. 경찰들은 총을 꺼내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보였다. 우리는 그들과 한 조가 되어 공장 내부를 훑기 시작했다.

공장 안은 증기로 가득 차 흐렸고, 증기 속에 닭 비린내가 녹아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철 장갑을 끼고 닭 목을 긋는 사람들, 진공청소기로 닭 내장이나 찌꺼기를 빨아들이는 사람들, 가위로 날개를 자르는 사람들, 닭을 거꾸로 벨트에 거는 사람들, 상자를 나르는 사람들……. 공장 내부는 마치 자가발전을 하는 거대한 발전소 같았고, 근로자들은 그 속에 녹아있는 톱니바퀴처럼 사소해 보였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우리 쪽 팀장이 공장장에게 기계와 근로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라는 요청을 했다. 그러자 잠시 후, 공장이 조용해졌고, 갑작스러운 고요함 때문이었는지 공장 안 사람들은 대열을 잃어버려 우왕좌왕하는 개미들처럼 동요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을 진정시켜가며 신분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경찰과 함께 신분증이 없는 자들을 따로 모아 사무실로 몰아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렸다.

 

이거 놓으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신분증은 집에 있다고. 나는 불법체류자가 아니란 말이야.”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화가 난 표정의 한국 사람은 눈빛이 아주 슬펐으며, 슬픈 표정 속에서 그는 무척이나 당황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그는 순한 양처럼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왜 그 한국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조용해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슬픈 표정과 울부짖음은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

 

 

내가 그때의 상황을 팀장인 샘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자네가 태어난 곳이 어디지? 한국인가, 미국인가?라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나는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들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하자, 샘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도무지 한국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어. 정말이지 불가사의한 이야기야.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내가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지난번 단속으로 체포된 다섯 명의 한국 사람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사해보니, 체포된 한국 사람들의 학력이 모두 대졸 이상이더군. 심지어는 치과의사도 있었어. 하지만 이들의 취업 비자와 영주권 신청 서류에는 모두 고등학교 졸업으로만 기록되어 있었고, 허위로 도계공 경력을 기재했지. 공문서 위조야. 당연히 추방이지.” 샘이 입을 삐쭉거리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이들이 입국하면서 이곳저곳에 숨겨 가져온 돈이 평균 얼마인지 아나? 자그마치 삼십만 달러야. 삼십만 달러! 자네 현금으로 그만한 돈을 들고 다닐 수 있나. 그럴 만한 사람들이 과연 우리 주위에 몇 명이나 될까? 돈 있고 배울 만큼 배운 자들이 어째서 비린내 펄펄 나는 닭 공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지 자네는 정말로 이해가 가나?” 그는 얼굴을 붉히며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샘은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나를 보았다. 나는 멀쑥해져 동의의 표시는 아니지만, 샘과 같은 포즈로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러자 그는 불쑥 자네가 이번 사건을 맡아보지 않겠나? 난 자네가 이번 조사에 가장 적격이라 생각하고 있다네,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샘은 이민이라는 특수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부서의 총괄자로서 나의 애국심을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백인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인종 편견이기에, 가급적이면 그와 충돌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겠지, 하는 낙관적인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내 생각과는 달리, 집요하리만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시험대 위에 세우고 싶어 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내 애국심을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기에 거절하고 싶었다. 샘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재빠르게 내 말을 막았다.

 

얼마 있으면 진급 심사가 있는 거……, 물론 잘 알고 있겠지. 나는 자네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결론을 끄집어낼지 정말로 궁금하네.”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샘의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표정 변화를 보았다. 그는 너도 똑같은 한국 놈이잖아,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출장 중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며, 이번 출장의 목적을 확실히 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출장의 결과를 그에게 보여주며 그동안 끈질기게 지속된 직장 상사의 의구심을 종식시키리라 다짐했다. 우선 나는 거기서 만나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했다. 공문서 위조 혐의로 추방될 한인들과 그들의 가족들, 공장에서 마주쳤던 황인수, 그리고 클랙스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몇 명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외국어 교사인 이수지라는 이름의 여자는 현재 방학 중이라 애틀랜타에 있는데 만날 수 있다고 했다.

 

 

*

 

 

이수지를 처음 만난 곳은 내가 머물고 있던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그녀는 하늘색 원피스 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가느다란 팔과 긴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녀는 갸름하면서 작은 얼굴이었지만, 코와 입이 상대적으로 커 첫인상은 어색할 정도로 불균형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말을 아끼고 있는데 여자가 먼저 날씨가 몹시 덥지요,라고 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다. 여자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조지아는 처음이냐고 다시 물었다. 어릴 때 삼 년 정도 살았다고 하는데, 기억은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자기는 여기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한 번도 조지아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왠지 그녀의 말이​​ 우울하게 들렸다.여자는 처음에 본 것처럼 불균형한 얼굴이었지만, 촉촉이 젖은 눈은 불균형한 그녀의 얼굴을 상쇄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근함을 느꼈다.

 

외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침 클랙스톤 학군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외국어 교사를 급히 찾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운이 상당히 좋았지요. 면접을 본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외국어 교사로 채용되었어요.”

 

그녀가 외국어 교사로 부임한 클랙스톤 학군은 애틀랜타 시에서 남동쪽으로 삼백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만여 명의 전형적인 남부 지역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난 이 년 사이 한국 사람들이 대거 몰려 들어와 칠백 여 명의 한국 아이들이 클랙스톤 학군 소속 초. .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아이들이 영어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학교 당국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외국어 교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때마침 수지가 채용된 것이었다.

 

전화로 말씀드렸지만, 얼마 전 이민국에서 지역 경찰과 공조해 클랙스톤 소재 대형 닭 공장을 내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백여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검거되었는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이 다섯 명씩이나 포함되어 재판에 계류 중인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조사하던 중입니다.” 내가 말했다.

 

무슨 조사를 하세요?” 여자가 물었다.

 

저희 이민 업무 담당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들 한국 사람들의 진정성입니다. 닭 공장은 혐오 업종으로 분류되어 백인들이 꺼리는 직종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난한 흑인들이나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들, 특히 멕시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의 숫자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상부에서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여자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여자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 여자의 표정은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알고 싶으세요? 하고 여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저와 내일 클랙스톤에 같이 가요. 제가 모시고 갈게요,라고 했다. 내가 내일쯤 갈 생각이었다고 하자, 여자가 마침 거기에 갈 일이 생겼어요. 제가 거기서 도움을 될 만한 몇 분 소개해 드릴게요. 그분들이 많이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

 

 

지난번 불법체류자 단속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어요? 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수지가 물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 있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황량한 대지 위에 떠있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내려가고 있었다. 환한 빛이 지평선 주위에 잠시 서리더니 어느새 오렌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 와서 그런지 새삼스럽게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 직업인걸요…….” 내가 말했다.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잡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세요? 나 같으면 좀 이상할 것 같아요.” 수지가 말했다.

 

나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제길, 또 한국 사람 타령이군, 하며 속으로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 저는 제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제게 주어진 일이란, 미국이라는 나라에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멕시코인이건, 한국 사람이건 말이지요. 저에게 미국은 조국입니다. 한국은 제 부모의 나라일 뿐이에요. 그러한 사소한 인연을 일과 연관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이 아닙니다. 미국 사람입니다. 수지 씨도 미국 시민이 아닌가요?”

 

여자는 내가 소리를 높여 한 말에 움칫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제이 씨. 이렇게 화를 내실 줄 몰랐어요. 저는 그냥 농담 삼아해 본 말이에요. 저도 제이 씨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요.”

 

한국 아이들 가르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모들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들었어요.” 나는 분위기가 어색해져 말을 바꿨다. 수지가 이어서 말했다.

 

미국에 갓 들어온 한국 학부모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이들은 우선 선물이나 촌지를 들고 교사들을 찾아와 인사를 합니다. 자기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지요. 그리고 아이들의 한국 이름 대신 미국식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선물이나 촌지가 익숙하지 않던 미국 선생님들이 한국 학부모를 만나면 금방 변하고 말아요. 그리고!”

 

클랙스톤에 접어들자,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황량한 대지 위를 뒤덮기 시작했다. 수지는 하던 말을 멈추고, 불모의 벌판 위로 쏟아지는 오렌지 빛 낙조를 보며 작고도 깊은 탄식을 내 쉬었다. 우리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 황혼 속에서 황량함이 풍요로움으로 급 반전하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거친 땅과 하늘이 잇닿은 지평선으로부터 밀려 나오는 황혼의 군대는 스치고 지나는 모든 것들을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화려한 행렬을 계속했다. 모든 것이 고귀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 수지의 볼 위에도 낙조가 떨어져 홍조를 띤 그녀의 얼굴은 눈부셨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다림 없이 황혼 속에서 길게 키스를 나누었다.

차 안에 오른 수지는 어색함이 만들어 낸 정적을 깨며 끊어졌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창밖을 한참 동안 더 바라보았다. 노을은 더 깊고 진해져 마침내 검붉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수지와 나를 싣고 있는 차는 길게 늘어진 노을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잠시 후, 수지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부분이 영주권을 받고 의무 근무기간을 채웁니다. 그런 다음,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클랙스톤을 빠져나가지요. 애틀랜타로, 플로리다로 그리고 캘리포니아나 뉴욕으로 말이지요. 제 부모님도 오래전 이곳에 오셔서 영주권 받고, 애틀랜타로 이사하셨어요. 거기서 세탁소를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은퇴해 여유롭게 사시는데……한창 때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제이 씨는 부모님들이 애틀랜타 시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세요?” 수지가 말했다.

 

제 부모님들은 애틀랜타에서의 생활에 관해 그리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어요. 사실, 저도 물어보지 않았고요. 그리고……지금은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 없습니다. 오래전에 두 분 다 돌아가셨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이민생활에 관해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했는데 이미 늦었지요.” 내가 말했다.

 

클랙스톤이 가까워지면서 수지는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 대해 말했고, 저녁 식사 후 자기 아파트에서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

 

 

내가 황인수를 만난 것은 클랙스톤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이튿날 아침 수지와 나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수지는 나를 공장 입구에서 내려 주었다. 그녀는 두 시에 다시 이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차에서 내리자, 시야의 정면에 거대한 닭 공장이 위용을 드러낸 채 거만하게 서 있었다. 주위는 공장 하나로 가득 차, 마치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압도적이었다.

봉건 영주가 사는 왕궁에서나 있을법한 거대한 철책문은 굳건히 닫혀있었다. 나는 단속할 때 없었던 이상한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철책 문 옆에는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작은 가건물이 있었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두 명의 흑인 수위들이 노래를 들으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열두 시에 황인수라는 직원을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키가 큰 흑인 수위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방문자 리스트를 들추며 내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가 이민국 신분증을 보여주니, 나를 다시 한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따라오라 했다. 긴 다리의 구부정한 흑인 수위는 겅중겅중 걸으며 휴게실로 나를 안내했다. 걸음걸이가 털 빠진 타조처럼 부산스러웠다. 그는 무엇이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지나가는 소리로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 새롭다거나, 자기가 한국 사람을 잘 안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한국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동양인인 내가 이민국 직원이라는 사실에 대해 놀랍다거나 호기심을 전혀 보이자 않았다. 나는 그의 보폭을 맞추려 종종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휴게실에 들어가 내가 그에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라고 묻자 그는 여기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보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에게서 한국 사람은 중국 사람일 수도 있고, 일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와 인종에 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휴게실을 보여주면서 황인수가 조금 있으면 올 것이나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휴게실에 앉아 황인수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황량한 풍경만이 나를 손짓하며 반기는 것 같았다. 창 밖에 두 달 전, 망원경을 통해서 본 것과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휴게실 밖 공터에서는 한 무리의 멕시코 인들이 축구공 대신 닭으로 멀리 차기를 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이 사람들 머리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내 시선은 그 속에 묻혀 오랜 기억의 나래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날은 고등학교 축구팀 학부모 만찬이 있던 날이었다. 학교에서 지역 예선을 통과해 전국 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축구팀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만찬에 참석한 아버지와 나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나는 팀 동료들과 자리를 같이 해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혼자 자리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동석할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한 가족이 아버지가 있던 테이블에 잠시 있다가, 다른 자리로 찾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아버지의 테이블은 텅 빈 객석처럼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었다. 자리는 만찬이 끝날 때까지 채워지지 않았고, 그는 혼자 식사를 마쳐야만 했다. 백인들은 아버지와의 동석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 같았다. 허름한 옷에 더부룩한 머리 그리고 어색한 행동…… 보이는 모든 것이 그가 미국 사회에 속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처럼 보였다. 나는 홀로 앉아 있던 아버지를 보며 부끄러웠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사람이 내 아버지가 아니길 바랐다.

 

너는 나완 다르니 잘 살 거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내 시선이 바깥에 머물며 지난 시절 상념에 젖어 있을 때, 황인수가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녀석들은 발로 차는 놀이를 정말로 좋아합니다. 아주 잘하지요. 흥이 많은 민족입니다. 처음에는 멕시코 인들이라 얕보기도 했는데, 막상 지내다 보면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즈음 한국 사람들보다 낫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나는 황인수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에게 지난번 눈이 마주쳤을 때 고개를 돌린 이유를 물어보았다. 황인수는 작업을 하다 나왔는지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땀에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내 질문에 약간 당황하는 듯했다.

 

그냥부끄러웠습니다.” 그가 수줍게 말했다. 그는 처음 보기에 강인한 인상이었지만, 지적이면서 사려가 깊고 부드러운 미소에 감수성이 풍부해 보였다.

 

황 선생님께서는 미국에 왜 오셨습니까? 이민 기록을 보니, 석사 학위에 상당한 재산도 있으시고……, 그리고 IT계통의 직장에서 일하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 여기 닭 공장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내가 물었다.

 

제가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입니다.” 황인수가 말했다.

 

아이 교육 때문입니까?” 내가 물었다.

 

, 아니요. 그런 것과는 관계없고요. 아이가 자폐가 있습니다. 자폐 아동과 그 가족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지요. 애틀랜타를 정착지로 정한 것은 그곳에 유명한 아동 자폐증 치료 병원이 있어서였습니다. 집사람과 아이는 아직도 애틀랜타에 살고 있습니다. 제 첫 직장은 IT 계통이었는데, 그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가장 빠르게 영주권을 받는 길을 찾다가……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벨 소리가 들렸다. 작업반장인 듯한 흑인이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로 돌아가라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황인수에게 이미 공장 측에다 양해를 구했기에 한두 시간은 더 있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황인수는 담배 한 대 피우겠다고 밖으로 나갔다. 오 분 정도 지나자 황인수가 돌아왔다. 그와 한 시간 정도 더 잡담을 나누었는데, 더는 나눌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고 공장을 나왔다. 공장을 나오면서 입구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 슈퍼 닭을 보았다. 녀석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

 

 

농장 입구에는 언제나 푸른 농원이라는 한글 간판이 걸려있었다. 수지는 농장 주인과 부모님과는 각별한 사이여서 해마다 농장을 방문해 며칠씩 머문다고 했다. 배나무와 사과나무가 농장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는 비포장 길을 먼지바람이 일으키며 농장 안으로 차를 운전해 들어갔다. 널따란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터의 오른편 구석에는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작은 사무실이 하나 있었고, 사무실과 마주 보는 쪽으로 트랙터와 농기자재를 보관하는 규모가 제법 큰 헛간이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왼편에는 농작물을 관리하고 숙성시키는 건물 몇 개와 그 맞은편으로 우물이 하나 있었다. 우물가에는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공터 한구석에 차를 주차하고,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진돗개가 수지를 보고는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는 녀석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귀엽게 웃었다. 수지는 또 녀석이 나를 한번 보았으니 이곳에 다시 오면 절대로 짓지 않을 거라 했다.

 

수지 왔구나.”

 

, 아저씨, 저 왔어요. 지난번 말씀드린 이민국 직원도 같이 왔어요.”

 

일흔이 넘었다는 수지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정우는 젊고 강인해 보였다. 넓은 어깨와 큰 키, 그리고 악수할 때 전달된 그의 악력은 나를 압도할 만큼 강했다.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자네 어쩐지 낯이 많이 익은 얼굴이야,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그냥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소리라 생각해 그리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하면서 다시 물었다.

 

조지아 주 여름 날씨가 어떤가?”

 

참 덥습니다.”

 

그래 내게서 무엇을 알고 싶지?”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했다.

 

…… 이곳…… 한국 사람들에 관해서입니다.”

 

내 답에 그는 무표정한 깊은 눈길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길에 벌거벗은 몸이 된 것처럼 갑자기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또 한국 사람들 잡으려고 하나?”

 

나는 그의 말에 이곳에 온 것을 후회했다. 어디 가나 한국 사람들이 내게 갖는 궁금증은 단 하나, 또 동족을 잡으려고 하나,였다. 나는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했다.

 

, 그런 것이 아니라, 이번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밑도 끝도 없이 긴 안목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네. 짧은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아,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헛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그냥 흘려버렸다. 나는 다시 이곳에 있는 한국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는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별로 없어. 다시 썰물 때라서 그래, 라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나는 썰물이라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의 말에 애매한 표정을 보이자, 수지가 나섰다. 단속이 많아지고, 영주권 대기 기간이 길어져 사람들이 피하고 있어서 그래요,라고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었다.

 

수지와 김정우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오래된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초창기 정착 시절에 찍은 듯한 사진들이었다. 틀 속에 사진들은 노랗게 탈색되어 세월의 더께가 낀 흑백 사진들이었는데, 그중 여섯 명이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힘겹게 웃는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휴식시간을 이용해 작정하고 찍었던 사진 같았다. 사진 속에서 나는 애써 웃고 있는 삼십 년 전 젊은이들을 통해 힘든 시간을 공유하던 사람들에게서 묻어나는 끈끈한 동료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놀랍게도, 나는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작은 체격에 잠자리 테 굵은 안경을 쓴 사람이었는데, 젊은 시절 아버지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하면서 애써 무시했다. 아버지는 애틀랜타에서 살았고, 이곳 클랙스톤에 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 아버지 사진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김정우가 차를 내오면서 저녁 식사도 같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내 아버지 모습을 한 사람의 사진에서 내 눈을 뗄 수가 없었기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주목하고 있던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삼십 년 전 사진이지. 그때는 참 젊었고 무모할 정도로 다들 용기가 있었어. 가운데 있는 친구가 수지 아빠지. 지금도 연락하고 있는 유일한 친구야. 내게는 소중한 사람이지.”

 

다른 분들과는 연락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다들 미국 전역에 뿔뿔이 흩어졌지. 가깝게는 애틀랜타에서 엘에이, 뉴욕…… , 이 친구는 애틀랜타에 살다가 워싱턴 디씨로 이사가고는 연락이 끊겼지. 아주 똑똑한 친구였는데…… 그 당시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한 인재였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몰라. 아마 잘 살고 있을 테지.”

 

친구분들 성함은 다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내가 지나가는 말투로 사진 속 사람들의 이름을 물었다.

 

그럼 어찌 이 사람들 이름을 잊어버릴 수가 있나. 왼쪽으로부터 작년에 죽은 정재후와 김흥일, , 이장호, 수지 아빠 이시영, 그리고 마지막이 김장섭.”

 

그 순간, 나는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정우는 감회에 젖은 듯 눈을 감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장호……이 친구……고생 참 많이 했지. 마음고생 말이야……. 대부분 한국 사람과는 달리 이 친군 적응하는데 아주 오래 걸렸어. 많이 배웠고, 험한 일을 한 적이 없는 친구라 이런 환경에 상당한 상실감을 느꼈을 거야. 영어를 아주 잘했지만, 닭 공장에서 쓰는 영어라는 것이 문학적이거나 전문적인 것이 아니니 그리 필요하지 않았고, 약한 체력에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 이상 지속하는 강도 높은 작업에 많이 힘들어했지.”

 

그때는 왜 영주권이 그토록 필요했을까요?” 나는 말을 돌리고 싶었다.

 

그때 미국은 천국이었지. 영화 속에 나오는 화려한 생활과 풍요로움……. 모두가 맹목적으로 미국을 동경했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가 있었지. 그 영화 배경이 이곳 애틀랜타였네. 그 영활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렸지. 생각해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 그런데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생각으로 이곳에 오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고 알고 있네.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나는 김정우의 말을 들으며 노을 속에 묻혀 자신을 태우던 작은 체격의 아버지와 그의 허탈한 시선이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옴을 느꼈다. 나는 그의 말을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김정우는 나의 작은 변화를 모르는 듯했으나, 수지는 무엇인가를 느낀 듯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후 애틀랜타에 삼 년 정도 세탁소를 운영하다가, 워싱턴 디씨로 가버렸지. 그러면서 서로 연락이 끊기고……내가 처음에 자네가 낯이 익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이 친구 때문에 그런 거야.”

 

그는 나를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해 수지 쪽으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 그렇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수지 씨, 제가 이 분과 닮았나요? 난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나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그녀에게 다급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나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성큼성큼 사진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수지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턱에 고인 채 미간을 찡그리며 콧소리를 몇 번이고 내었다. 그녀는 나와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을 데생이라도 하는 듯 여러 번 다른 각도로 비교해 보는 시늉을 하더니, 자기가 마치 명망 있는 심판관이라도 된 것처럼 거만한 표정으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에이, 다른데요. …….” 그녀는 경쾌하게 말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말에 편안함을 느끼며 안도했고 이상하게도, 마주친 시선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오래된 친구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언가 안다는 듯 내게 웃음을 던졌다. 나는 그녀의 웃음 속에서 알 수 없는 동료애를 느꼈다. 사진 속에 청년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그가 내 아버지라고 긍정하지 않았다. 그냥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말았다. 우리는 차를 마신 후에, 식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지는 식사 중에 간간이 나를 보았다. 나는 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워싱턴 디씨에 있는 내 집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클랙스톤을 벗어나자,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황량한 벌판 위에 저녁노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 전 노을 속에서 수지와 키스하던 장소를 지나며 다시금 아름답지만 절망스러운 기분에 젖어들었다. 노을을 보면서, 나는 다시 어쩔 수 없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두서없는 말들을 그녀에게 한 것 같았다. 그녀에게 집중할 수 없었고,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의 사진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 불모의 대지 위에 쏟아져 내리는 오렌지빛 낙조를 보며 느꼈을 지독한 외로움과 처절한 상실감이 가여웠다. 그리고 부모와 한국인들을 경멸하며 어색한 미국인으로 살아왔던 내가 무척이나 거북해졌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나를 보며 느꼈을 불안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수지가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슬픈 표정으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수지가 팔을 뻗어 나를 안았다. 그녀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고 있었다. 노을은 어둠 속에서 더욱 깊어졌고, 그 속으로 내 슬픔이, 그녀의 울음이 녹아들었다. 사위는 점점 검붉은 색으로 변해갔고, 마지막 종착역인 어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난번 노을은 기억에 많이 남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수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잘 모르는 듯했다.

 

 

*

 

 

나는 지금 뉴욕 JFK공항을 나와, 한인 밀집 지역인 뉴욕 F시로 향하고 있었다. 클랙스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샘이 내게 전화로 다음 출장을 지시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신고가 들어온 한인 소유의 P사를 방문해 조사하라는 명령과 함께 클랙스톤 보고서 제출도 재촉했다. 그가 이메일로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P사는 임신용 진단 기기를 연구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는데, 최근 경기 불황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계획에도 없던 사세 확장과 제품의 다양화를 적극 추진하면서 한국에서 연구원들을 대거 스카우트를 한 적이 있었다. 이민국에서 내사한 자료를 보면, P사의 사세 확장과 제품의 다양화는 허울뿐이었고, 내부적으로는 미국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한국 사람들이나, 미국 내 직장을 잃고 급하게 한국에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취업비자를 내주었다고 한다. 회사는 결국 영주권 장사를 하고 있던 셈이었다.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한국의 뛰어난 인재들을 미국에 들여와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준 것이 죄인가? 라는 사장의 증언이 눈에 띄었다. 사장의 사진과 익살맞은 표정으로 닭다리를 뜯고 있던 슈퍼 닭이 묘하게 겹쳐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사건은 대부분 허구이다. 이 소설은 한 이민국 직원에 대한 신문 기사가 모티브가 되었다. 그는 한인 2세로 불법체류자들을 단속하는 일을 해 왔는데, 특히 한국인을 단속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고충을 기자에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경계인의 슬픔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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