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희 서신 - 내일 우리는

웹관리자 2022.12.01 12:45 조회 수 : 28

곽상희 서신 내일 우리는

  

희망의 구심은 그것이 아주 어두운 데서 생겨나는 그 무엇이

라는 것이다존 버거그는 아직 못다 한 말에 취한 듯봄빛이

어른거리는 창밖에서 되돌아와 안을 기웃한다오랜 신문 스크

렙에 박힌 그의 아득한 눈빛그의 시선은 하늘 너머로 응시하고

있다하늘 저 아득한 그 곳으로그의 눈빛이 물에 젖어 반짝인다

은밀하다 미소로 찰랑인다.

 

참되고 맑은 정신의 소유자그는 자라지 않는 영원히 성숙한

소년이다아스라한 듯 그때 집을 떠나 고향처럼 살고 있는 이곳,

푸르른 산 저 멀리 얌전히 있던 집은 푸른 집착체가 되어 내 안

에서 모성의 묽은 살냄새를 풍긴다꿈동산이다모난 것 뾰족한 것은

뭉실뭉실 자카란타 연분홍 꽃이 뽀얀 손바닥으로 닦아놓는다.

 

나는 오늘 저 빌딩 숲 너머 아슴프레 산맥을 넘어 응시하는 나비를

본다우리의 무심하고 오만한 문명의 어딘가에 날아와 우리의 거리를

휘젖는 곱지않는 이상하고 거대한 나비 한마리를 본다우리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아름다운바람을 마음껏 숨수도 없다.

 

나비는 우리에게 강요하는 듯그는 벼랑 끝 over-stepped 한 기존의

문명을 갈아치우고 잠시 정지하라고 강요한다대신 그가 준 공포와

불안을 대항하라 한다인간 순수에 투항하여 투쟁하고 꿈꾸고 믿음과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는 것그리고 기다리는 것편안하여 기다리는 것,

너와 나마음의 손을 잡고희망의 가슴을 굳게 어루만지며 뜨겁게 눈물

겹게 서로 용서를 바라면서... 그런 것을 그는 우리에게 암시한다.

 

우리 모두 투쟁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것이다어떻게 투쟁하는

것인가이후에 올 새로운 문명질서두 손으론 물리적인마음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항하여그 순수정신을 끌어안고모든 인류에게

평등한 순수 정신을 위하여 싸워야 한다.

 

시인들의 정신은 발길을 멈추고 생각을 한다가슴도 달라지고 있다,

더 성실하고 겸손하여 참 진리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것은 분명

코로나의 선물인지 모르겠다.

 

시를 쓰는 건 사랑을 하는 것아니 사랑을 배우는 것그러므로

시인이 되는 건 상처를 사랑하는 것굳어진 흙을 파고 자신의 몸을

흘러내리듯물을 흘려 씨앗을 심는 것봄은 기다리는 것인가그냥

기다리는 봄은 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투쟁하고 꿈꾸고 믿음의

씨앗을 파종하는 것그리고 기다리는 것어둠에서 흰 복사꽃을,

튤립을차가운 겨울에서 봄꽃을 피우듯변치 않고 인간 사랑을 하는

시인은 그 사랑의 율법을 찾아가는 순례자이므로.

2020년 4월 곽상희 서신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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