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빚별

웹관리자 2022.11.11 16:31 조회 수 : 65

한빚별

 

1,배우

그녀가 이 아파트에 산지가 삼십년이 넘는다.

그녀는 젊을 때 배우였다.

맨하튼에서 뮤지컬 배우로 있었고 음식점에서 웨이트리스로 일을 하기도 했다.

연말이 되니 자신을 가꾸기 위해서 네일 샵에 들렸다.

빨간색의 매니큐어와 페티큐어를 하고는 옛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유명하지는 못했지만 무용도 하고 가끔씩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것도 정규직 일 때는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다.

가끔 일을 잃고 있을 때는 웨이트리스 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파트는 오층에 살기 시작하였고 아침이면 이 공원에 나와서 운동도 하고 때로는 창밖을

내다보기도 한다.

그와 함께 거닐던 허드슨 강변을 따라 걷던 곳에는 많은 동상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고 언제나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던 그가 지금은 없다.

어디로 갔는지 뉴욕에서 볼 수가 없었다. 말없이 떠난 그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 갔다는 말도 들리고 있었다.

배우의 꿈을 갖고 뉴욕에 온 그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이다. 그는 특유한 몸놀림이 눈에

띄었고 신나는 광기에 어린 열띤 연기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 튀어서

감독에게는 주목을 받기도 했다. 때로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는 곳에서는 주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의 놀라운 연기력과 타고난 탤런트는 그의 모든 연기에 모두 쓰였으며 그로 인해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둘은 사랑하였다고 그녀는 말을 한다. 생활이 어려울 때 그가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떠나간 그 말고도 여럿을 사귀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늙은 한여인의 유일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이 파크에서 아침마다 팔 다리를 흔들며 추는 그녀의 춤이었다.

젊은이들이 모여 든다. 그녀는 남녀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피해 주면서 단지 앞만 보고

달리듯 가고 있었다.

가끔은 바람이 불지만 보통 부드러운 바람이 있을 뿐이다.

향기로운 허브향이 풍기고 꽃이 피는 곳에 가서 줄지은 나무 의자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발성연습을 하고 있었다.

아랍계의 왕족출신이라는 그는 뮤지컬을 즐겨보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일을 끝날 때 기다리다 집에 데려다 주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웨이트리스 일을 할 때

가깝게 지내게 된 그는 그녀가 나오는 뮤지컬에는 모두 찾아왔고 신이 나서 그녀를 칭송하며

 

좋아했다. 한 번도 주연을 해보지 못하고 단지 구석의 단역을 하는 그녀에게 큰 의욕을 주는

팬 중에 하나였다. 그가 올 때는 즐거웠다. 그에게 풍기는 여러가지가 좋았지만 그도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른다. 뉴저지에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일을 끝내고 힘에 겨울 때는 그녀를 도와주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타임스퀘어에서 나체의 모습에 중요한 부위에 그림을 그리고 걷고 있는 동녀들을 보며

지나가면서 웃는다. 항상 분비는 그곳에 많은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나라의 무술

가들이 몰려서 펼쳐지는 무술들도 지나가는 행인의 손뼉소리를 받으며 지나다니던 극장과

일터는 그녀에게 일상의 생활 터였다.

한국인들이 모여서 시위하는 곳을 따라가 본다. 위안부들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손에 쓰여진 팻말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각나라마다 때때로 자기의 주장을 위해서 힘껏 소리 지르며 달리기도 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강한 반발의 행진도 젊은이 들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시위를 한다. 노인들도

어린 아이들도 보인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일상생활을 해가며 밤이 되면 야경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국교회의 새벽예배를 가끔은 나간다. 공원을 돌면서 걷기도 하고 낯익은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걸어간다.

가끔은 페리호를 타고 스테튼 아일랜드를 가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을 즐겨하였다.

눈 오는 날이면 승객이 줄어서 혼자 그 큰 칸에 혼자 있을 때가 있었다. 배안에서 갑판으로

나가 서서 떨어지는 눈발을 바라본다. 커다란 눈발이 강물위에 떨어지면서 녹고 있었다.

갑판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 있었다. 떨어지는 눈발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른다.

신나게 춤을 추기를 시작한다. 온 무대가 자신의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도 눈발을 맞으며 팔을 벌리고 횃불로 응원하는듯 찬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 끝에서 끝으로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다. 그녀만의 단독 무대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듯 기분이 상쾌하다. 기분은 상승

되었고 그녀의 발은 가벼웠다. 그동안의 쌓인 피로가 눈 녹듯 녹아서 강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건물들이 안보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그 눈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응시하고는 안으로 들어온다. 뜨거워진 몸과 마음은 훈훈한 실내 공기에 또다시 녹아

내렸고 배가 도착하자 배에서 내려 대합실 안으로 들어 갔었다.

커다란 어항이 두개가 있다. 들어올 때는 오른쪽 어항속을 바라본다. 그 속에는 많은

열대어가 있었다. 그 속에 그녀와 항상 만나서 인사하는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을 때 섭섭했다.

새로운 식구가 들어올 때는 다시 그 마음속에 아름다운 모습을 담기로 했다.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가게를 나오면서 다시 대합실에 와서는 다른 쪽의 어항으로 간다. 입을

쫑긋하며 투명한 벽에 와서 그녀를 반기듯 입을 맞추는 낯익은 고기에게 손으로 응답을 한다.

손톱으로 툭툭 쳐주며 눈동자를 마주친다. 아침에 만남이 행복했고 뜨거운 커피가 온몸을

녹여주는 듯하였다. 기분 좋은 피곤이 다시 깨어나고 눈이 커진다.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패리 호에 타고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바쁜 하루를 위해서 준비된 모든 것이 되살아 난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온다. 북적이는 전철에 몸을 싣고 달린다. 눈을 감고 앉아서

가다 눈을 뜨니 사람들의 발이 보인다. 모두 두터운 부추를 신었다. 눈이 많이 오나 보다.

차창밖을 보니 바쁜 사람들이 뛰어다니며 아침을 움직이고 있었다. 왜들 아침부터 나와서

움직여야 하나 삶의 고동이 울린다. 물위를 흐르듯 발걸음들은 흐르고 있었다. 다시 다른

전철로 갈아타기 위해서 내리고 다른 것으로 가라 탔다. 그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잊은 채 열기를 품고 있었으며 기다리고 떠나는 열차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여러 선의

교차점을 오가고 있었다.

너나할 것 없이 바쁜 아침은 그들의 생을 책임지는 무거운 무게감에 바쁠 수밖에 없나 보다.

지하철 내에서는 눈이 내리지 않지만 승객들의 발에 남은 눈들이 아직도 밖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장화 같은 부츠를 신은 그녀는 우산을 들고 있다. 많은 눈을 피하기 위해 가끔은 우산을

쓴다. 무거운 장화의 무게감도 그리 무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두꺼운 옷은 그녀의 온몸을

덮고 있었고 머리에도 쓰고 있었다. 모자는 귀를 덮고 아래로 늘어지는 까망색의 모자였다.

유난히도 차가운 맨하튼 거리의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헌것이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에서 이미 아침장사를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도

지시에 따라서 맡은 일을 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하루의 시작은 눈과 같이 시작되었지만 쏟아

들어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때에 서야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주문하는 음료와 샌드위치를 나르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고 부르는

소리에 민감하게 온몸을 움직이며 가게를 누비고 다녔다.

2, 아버지

아버지와 손을 잡고 자주 오던 곳은 한국전쟁때 참전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기념비가 서있는 곳이다. 아버지는 육이오라는 한국전쟁의 참전 용사로 한국에 갔었다.

.그곳에서 치열한 전투의 유엔군으로 갔었던 것이다.

젊고 어린시절에 목숨을 걸고 그 나라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 곳에 갔던 것이다. 가끔은

그곳의 이야기를 해주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고 그 기념비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던

그 때를 떠올린다. 그곳에는 총을 든 군인의 동상도 있었다. 거기 서서 여러 번 사진도 찍고

하던 어릴 때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아버지는 중권회사에 다니셨고 어릴 때부터 많은 극장가를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많이

난다.

한국전쟁은 1950년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법남침 하므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한다.

이데올로기가 달라서 공산당이 다른 생각인 다른 곳에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국제무대에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미국 트리만 대통령이 미군을 그곳에 보내 였고 치열한 전쟁은

비참했으며 피난민들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고 그들과 함께 걸었던 기억을 간혹 이야기를

해주었다.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쓴 아버지의 젊을 때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뚜렷한 정확성은

없고 먼 나라 동화 같은 이야기로 듣곤 했다. 단지 아버지와 같이 갔던 기념비의 많은 추억만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한다.

어느 날은 기념비가 있는 곳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고 뛰어가서 보니 그가 울고

 

있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나타나자 나를 어깨에 메고는 걸어 갔고 나는 신이 나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소리 지르며 좋아하고 있었다. 가끔은 총을 들고 있는 아저씨

동상에 꽃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나는 그곳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그 동상 앞에서 익살을

부리며 나를 웃기기를 즐겨했다. -아버지의 친구들의 이름이 그곳에 있다고 간혹 손가락으로

돌여 새겨진 이름을 부르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두 팔에 힘을 주며 근육을 자랑하며 웃고

있었다.

아침이나 오후에 집을 나서는 아버지는 매우 반듯한 자세였고. 양복을 입은 모습은 항상

깔끔하고 거울속의 넥타이를 바로잡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무용도 배우고 노래도 열심히 하면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탁월한 목소리로 같이 어울려

같이 부르기도 했다.

전쟁은 참혹했고 울부짖는 소리는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싸움터에서 군인들을 돕는

한국주민들의 손길로 먹을 수 있었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식구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이 아파하며 지내던 전쟁터가 뇌리에 가득 들어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를 업고

운반하던 생각도 든다.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은 자기를

도와주다 죽어갔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같이 싸우다 부상을 입고 떠나는

군인들은 만날 기약없이 보내고 뒷일을 감당 했던 일. 너무 추워서 감당할 수 없는 체력의

한계를 느꼈던 그때를 생각한다. 그런 그도 쓸어져서 의식을 잃고 있었을 때 옆에서 돌보아

주던 사람들도 생각난다. 깨여서 일어나니 몸에 부상은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 이상은 없었지만 그는 머리가 아프다고 자주 한다. 가끔은 약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일은 다 잘 헤나가고 있었으며 가끔은 우울해 보이는 그를 본다. 두통이 심할

때는 집에서 휴가를 얻어 쉬기도 하였지만 그리 큰 이상증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겉으로

건강해 보였고 미남형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기 위해 이발소나 미장원에 가지만 주로 이발소를 간다. 그럴 때 딸을

데리고 가곤 했다. 네일 가게 갈 때도 딸을 데리고 가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 서부터 네일 샵에 쫓아다니면서 같이 네일도 하고 예쁜 꽃도 손톱위에 그려주면

좋아하고 즐거워 했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여자인데 알바이트로 일하는 사람과 만나서 서로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지는 즐거워 했다. 그러다 잘못해서 손톱에서 피가

나는데도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하면서 매우 좋아했다. 부녀를 반겨주는 그곳을 매우

좋아했으며 눈이 오는 날이면 슬리퍼를 가지고 뜨거운 물에 두다리를 담그고 있는 부녀의

사진을 벽에 걸어 놓을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비가 올 때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가서 손과 발을 정돈하고 깨끗이 한 후 색깔들로 채워지는

작은 손톱과 발톱이 너무 좋은 추억의 그림이었다. 가끔 생일 때 친구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서

손발을 하며 장난치던 시절 아버지가 모두를 위해 지불되어지는 순간 아이들과 아버지는

모두 즐거워했다.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와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기념비가 있는 곳을 자주 찾았고 하루 종일 그곳에서 있어서 찾으러 간 적이 가끔은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움직일 줄을 몰랐고 더 깊이 파고드는 생각에 자신을

끌고 가는 듯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무거워지는 그의 무게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지만 빠른

시간은 일거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나약해지는 모습이 안스러웠지만 자기 생활에 밀려오는 속도를

멈추기에는 너무 적은 부분만이 아버지에게 갈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드나들던 아버지는

결국 군인들의 양로시설로 갔다.

딸을 알아보지만 찾아가면 좋아하고 기뻐한다.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 하며 근육자랑을

한다.

그는 차츰 치매증세가 심해져서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 들고 있었다. 가끔 외출하여 가던

기념비 동상에도 갈수가 없었다.

3, 씽글 마미

씽글 마미의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아들 하나를 키우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일을 하는

경우에는 맡길 곳이 없어서 고생을 하고 아이가 아플 때 학교에서 전화가 올 때는 어떻게 할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를 맞혀줄 때도 항상 어려움은 널려 있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힘에 겨운 일이었다.

모임이 있어서 서로 도와주며 아이들을 키워주는 곳에 갔다. 처음에는 어설펐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며 도와주는 모습을 볼 때 좋기도 했지만 그들의 우정이

형제이상의 관계를 보고 대견 해했다. 큰 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용돈이라도 주기 위해서는 더 일을 해야 했다.

극장가의 일은 같이 합숙하여 연습해야 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는 더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적당한 곳을 찾아 다니며 아이를 맡기고 다녀야만 했었다.

아이가 있어서 행복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를 키우기 위해 경제력과 시간들이 매우

힘들었다.

가끔 아이의 학교행사에 부모들이 가야할 때도 갈 수가 없을 때가 많았다.

바쁜 뉴욕생활이 바쁘게 움직이고 학교에서도 그들 나름대로 모임과 파티 등을 돌보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을 했고 시간을 그 아이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친구들과 싸워서 총성이 울리고 죽는 사건도 있었다. 그때 아이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서야 안심하고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아들은 노래를 아주 잘 불렀지만 음악을 전공으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게임기를 갖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하며 집에 있기를 원했다.

바쁜 생활속에서도 음악이 좋아서 레슨을 받아야 되고 자신의 길과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노래를 부를 때는 모든 것을 잊고 살수 있어서 좋았다. 남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지만 자신에게도 좋은 위로가 된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고 자신은 나이가 먹어가며 힘이 빠져 가는 것을 느꼈다.

웨이트리스 일을 오래 하고 있어서 위치가 바뀌고 조금은 힘이 덜 드는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수입도 많아졌다. 술 취한 사람들의 소동을 가끔은 해결해야 되므로 가끔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하기도 했다. 이제는 다른 일이 더 많아지고 직원들 관리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

했다.

아들은 친구들과 같이 지내는 일이 많았고 아이가 커 감에 따라 같이 있는 시간이 적어지며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자는 날이 늘어났다. 그는 자신이 알아서 잘 한다고 하며 잘 하고 있었다.

아이가 자라감에 따라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살아가는 여러가지를 따라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캠프를 떠날 때는 서로 준비하며 바빴고 떠나고 나면 집에 없어서 자유로웠지만

걱정이 되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둘의 사이는 가까이 있어야 했다. 아이의 생활이

전부가 되어가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으며 그를 도야야 하는 시기에 어려움과 기쁨이 함께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상장도 많이 받아오는 아들은 대견스러웠다. 졸업식에도 바빠 못 가도 이해해

주는 그런 아들로 자라 있었다.

그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할 때 외로움과 즐거움이 있었다.

가끔은 집으로 데려 오기도 했으나 밖으로 나도는 날이 많았다. 그에게서 집착의 마음이 차츰

적어지고 밖에서 자신의 일에 더 신경을 써서 하려 하여도 이미 몸은 늙어 있었다.

무대생활이 점점 줄어들고 힘이 부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들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한곳이 아버지가 다니시던 증권회사였다. 아들이 결혼하여 떠날

때 한없이 외로웠고 눈물이 났으나 기쁘고 해방감이 그동안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모두 후회스럽게만 느껴졌다.

아들과 며느리는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떠나 갔으며 알 수 없는 괴리를 느꼈다. 그들과 만나서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은 즐거움을 주는 한부분이다.

셋이서 극장에 가서 앉아 있을 때 그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동안 무대에만 섰었는데

앉아서 무대를 아들부부와 보고 있을 때 가슴이 들떠 있었다. 자신이 무대 배우였다고 하니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배우의 생활이 단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들 고마운 이들의 손길들을 본다.

아들내외가 집에 초대해서 가니 여러가지 음식과 꾸며진 집안 분위기가 아늑하고 더 이상은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나오는데 한구석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도 사이가 좋던 둘사이가 문제가 생기고 싸우고 자신의 집에 와있는 아들을 볼 때 속이

상했지만 자신이 행복한 마음을 갖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 둘사이가 벌어질 때 자신은

아들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녀를 떠난 남자들을

생각해 본다. 그중 하나가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니 이제는 놓치지 않고 잡고 싶은 강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다시 아내에게 돌아간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쓸쓸한 마음을 갖는다.

며느리는 자주 오던 발걸음이 그치고 가끔 보지만 할말이 많은데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젊은

여자였다. 자신의 옛날 모습이 보인다. 마음은 그때와 같았다. 그들 사이에 깊이 들어가기가

싫었다. 아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에미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아들이 이사를 했다고 하면서 그후부터 부를지를 않는다. 섭섭했지만 잘 있다니 별 걱정 없이

 

지내고 있었다. 아들도 며느리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고 자신도 일을 하고 있었다.

식당일은 많아지고 바쁜 생활은 계속되었다. 아들 생각은 항상 그녀에게 있었지만 나름대로

바빠서 생활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가끔은 초대도 했지만 아들만 오고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들도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주식이 오르고 내림을 집착하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아버지를 닮은 것을 보며 아버지와 같이 그도 머리가 아플까라고 생각을 해준다.

며느리가 있으나 볼 수가 없다. 괘씸한 생각이 든다. 세대가 바뀌고 자신의 옛모습을

며느리에게서 보며 자신이 무엇인가 질투심과 같은 잘못을 했다는 생각을 더듬어 본다.

집착하는 마음이 며느리에게 저항감을 느끼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며느리 생일날에 예쁜 카드를 쓰고 초대를 해주었다. 그날은 바쁘다고 그 다음날 온다고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날을 기다리며 준비를 했다.

다시 셋이서 만나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기쁜 마음을 갖지만 풀리지 않는 속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날을 계기로 다시 며느리가 집에 오게 되었고 셋이서 식사를 하는 기회가 많이

늘었다.아들도 좋아하고 며느리도 좋아 하는 것같이 보였다.

전과 같이 셋은 자연스러워졌고 서로 섭섭한 감정은 묻어두고 각자 서로의 생활로 돌아 갔다.

며느리도 좀 차분해지고 일하는 숫자를 줄이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말을 한다.

4, 9.11 ( September 11)

화요일날 집에서 나와서 일하는 곳에 갔다. 맨하튼에서 연기가 솟아난다, 커다란 빌딩들

쌍둥이 빌딩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갑자기 퍼져 나가는 불빛이 그 큰 건물에 가득 차고

있었다. 아들이 그 속에 있는데 미친듯이 밖으로 뛰어나온다. 소리를 지른다. 아들을 찾으려

달리고 빨리 나오라고. 크게 부르짖는다.

마지막 전화의 목소리는 미안하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끝이 나고 연결을 할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자살 폭파를 한다. 미리 준비된 기습공격이라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방송에서는 피하라고 한다. 소방시설이 모두

동원되셔 진화작업을 하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아들을 찾아 헤 메였다. 건물은

불덩어리가 되었고 그 곁에 가지도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 안에 아들이 있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반드시 밖으로 나왔다는 생각에 집착을 한다. 자신의 아들이 그 속에서 있다가

나왔다고 믿고 싶었다.

소방차들이 총동원이 되었고 하늘에서도 물을 퍼붓는다. 수많은 소화시설의 방법이 모두

쏟아 붓고 있다.

아들을 찾는 생각밖에 없다. 어딘 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만 할 뿐이다. 경찰과 함께

찾아다니고 며느리와 같이 찾아 다니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임신하여 몸이 무거운 며느리를

보내고 또다시 찾아 다니고 있었다.

차들도 다니지 않고 거리에는 표정 없는 군중들로 한가득 차 있었고 길은 막혀서 앞으로 걷고

뒤를 따라만 간다. 지나가다 열린 음식점에 들어가 먹을 것을 먹고 또 군중들의 뒤를 줄을

지어 따라 갈 뿐이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퉁퉁 부은 며느리의 발을 생각한다. 모두는

놀라운 표정과 무표정한 얼굴로 그냥 발을 맞추듯 걷고 있었다. 행진하는 군중들이 보폭을

 

맞추어 걷고 있었다. 빨리 갈수도 없었다. 앞으로만 갈수 있을 뿐이다. 온 길은 막혀 있었고

통제되어 있었다.

몇 날 몇일을 찾아 다닌 아들은 찾을 수가 없었고 다시는 찾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아들 그동안 온 힘을 다해서 키웠던 그가 오지 않는다.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눈물도 나오지를 않고 푸석한 얼굴만 두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고

재티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숨을 쉴 수가 없다. 불길이 없어지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거리가 모두 슬픈 분위기로 바뀌고 촛불이 켜지고 추모의 꽃이 놓여 지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고개를 숙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분위기였다. 살아 있다는 것이 힘이 들었다.

없어진 형상을 보이나 포기가 쉽지가 않다.

갑자기 불이 꺼지고 온세상이 정전 상태로 하루 종일 낮과 밤을 지내야만 했다. 자가 발전을

하는 병원이나 특수한 곳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모두 어두운 세상이 된 것이다. 촛불을 켜고

지내야만 했었다. 답답하여 밖으로 나와서 차속에서 시동을 켜 놓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근처의 학교 학생들은 밖으로 나오고 상인들도 문을 열었지만 고객들이 줄어 유지할 수 없어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는 곳이 많이 늘었다. 모두가 갑자기 벌어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잿더미에서 아들을 찾는다. 금방이라도 아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눈물이 난다. 며느리를

돌보아야 한다. 며느리는 울기만 한다. 뱃속의 아이는 움직인다. 갑자기 며느리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말없이 웃는 아들의 졸업 사진을 보니 맑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잊히지 않는 잊을 수도 없는 아이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치쳐 있었다.

일을 해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다시 뛰쳐 나와 헤매고 다닌다. 다시 아들을 찾기 위해서다.

온 거리를 헤매고 다니니 지쳐서 집에 돌아와 씻지도 않고 눕는다. 잠은 오지 않는다. 정신이

말똥하고 깨어 있었다. 깨어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몸이 움직이는 것같이

무겁다,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기만 한다. 아이는 건강하다고 보고해 주는 것이다.

극장가는 여전히 많은 이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열려 있고 관광객들도 보인다. 무대 배우들도

하던 대로 계속 하고 있다.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열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맨하튼을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진다. 항상 젊은이들로 들

끊는 그곳은 젊은이로 채워진다. 일찍 포기하는 그들의 근성이 싫었다. 좀더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을 쉽게 버리는 거리 같았다. 삶의 순서를 지키기 보다는 쉽게 갖고 가볍게 버리는 생활이

무서웠다.

오늘도 그녀는 아들을 찾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몇계월이 흘렀건만 거리는 정리될 줄을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고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미래를

준비한다. 어떤 일이 일어 날줄을 모르는 내일을 위해 기대와 희망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졸업식도 입학식도 다시 진행되고 모두 재의 냄새로 가득한 거리를 희망을 만들기 위해

가방을 메고 걷고 있다. 타투를 하는 학교근처에 가게에 학생들이 몰려와서 서로의 우정과

애정의 표시로 타투들을 한다. 가정의 귀중함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뉴욕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추락 비행기가 폭발하여 불바다가 되었다.

 

죠지 부시 43대 대통령이 뉴욕으로 오기도 했다. 시장은 모든 것을 수습하기 위해 시민들을

안정시키고 복귀하는 것에 주력했다. 날마다 희생당한 건수가 늘어나고 그들을 돌보는 여러

단체들도 자원하여 돕기를 시작했다.

많은 곳에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왔으며 거리에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유명한 쌍둥이 빌딩이 보여 주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비가 내릴 때의 모습, 구름이 낄 때

가려진 높은 건물, 해 뜰 때, 석양에 비치던 아름다운 높은 건물이 아주 없어졌다. 그 속에 좋은

추억도 살아진 것이다. 아들이 자랑하던 젊은 두뇌들이 모여 있던 곳 자부심이 대단한

생명들이 없어진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참사다.

악한 마음과 세력이 죄 없는 사람들의 운명을 빼앗은 것이다. 이 기막힌 환경속에 그녀는 말도

할 수 없었고 살아 있다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쑤라고 아팠다. 꺼져가는 촛불속에

그리운 얼굴이 있을 뿐이다. 볼 수 없는 보고 싶은 얼굴들이

5, 새 생명

울고 만 있던 며느리는 배가 커지고 태동이 심하다고 한다. 배속에서 움직이는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사가 건강하다고 한다. 정해준 스케줄에 맞추어 계속 병원에 다니며

아이를 보살피는 며느리를 본다.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 가는 안스럽고 대견해 보인다.

남이 아닌 내 자식이라 더 강하게 느껴지며 자신의 집에서 같이 있자 하여도 거절하고 혼자

살기를 원했다.

그동안 가보지 않던 곳에 가보니 아들의 옷과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같이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웃으며 바라보는 그의 눈매와 마주치자 눈물이 쏟아진다. 눈을 홈치면서 옆에

있는 며느리를 안아준다. 며느리의 배를 만지니 움직이는 생명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밖으로

나와서 식당으로 갔다. 원하는 것을 시키고 아들이 즐겨 먹던 것을 주문하였다. 알아 차렸는지

며느리가 웃는다. 그녀가 웃으니 다행이다. 아들은 없지만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아이와 함께

한가족이 될 것이다.

전화가 걸려왔다. 바쁘게 준비하고 병원에 가니 아이는 이미 태어난 후였다. 남편이 없이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며느리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녀 곁에

있어야할 자리에 그가 없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했다. 담요에 쌓여 있는 애기는 핑크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나 아들의 모습이 보인다. 닮았다 그를. 아들이 그리워진다. 애기를 보니

기쁘다. 행복감이 넘쳐 오는 것 같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며느리는 회복이 되었고 퇴원하여

그녀의 집으로 가는 것을 원해서 아이와 같이 떠났다. 매일 찾아가서 돌보아 주는 것이

낙이었다. 손녀는 계속 커가며 웃기도 하고 사람을 알아보고 앉기도 하고 뒤집고 기어 다닌다.

장난감을 살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혼자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고 있기에 더욱 세심하게 돌보아 주려고 노력을 했다. 셋이서 같이 다니며 쇼핑도 하고

손길이 필요할 때는 즉시 달려가서 돌보아 주었다.

예방주사를 맞으러 갈 때나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열심히 도와주었다.

말을 하면서 할머니라 부르고 따라다니는 그녀가 친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노래를 잘

부른다.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이와 같이 있을 때 귀여움을

 

부리는 그 모습이 예뻤다. 집에 데리고 와서 같이 있기도 하며 동화책도 읽어주고 같이

행복해하고 있었다. 손녀가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정리하여 며느리에게 보여 주며

둘은 즐거워했다.

극장에서는 잔일을 도와주고 후배들을 보살피기도 하고 식당에 나가 일을 계속했다. 자신의

일과 손녀를 돌보는 일을 하고 며느리를 도와주었다.

허물어진 건물이 다 정돈되어 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으며 바라보는 마음은 상처

뿐이었다.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다...그의 모습 그대로를 머리에 박고 있었던 것이다.

손녀딸이 기저귀를 안하고 걸어 다닐 때까지 며느리를 위로해 주는 것이 진심이었다. 둘

사이는 가까워졌으며 같이 손녀를 키워야 하는 마음이 더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손녀는 커가며 아들의 모습이 더 살아나고 웃을 때는 너무 예뻤다. 기어 다니다 고개를 막고

있으면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 간다. 아이는 웃음을 주었고 희망을 주었다. 잘 먹지 않고

울거나 잠투정을 할 때는 그 아비를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본다. 앉아서 사진을 찍을 때

표정 잡는 모습이 더 예뻤다.

보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여자 같지 않게 힘이 세다. 그녀는 건강한 아이였다. 그

커다란 것을 끌고 전체 범위를 휩쓸고 있다. 살이 찐 발목에 힘이 가해지고 그 발이 바닥에

닿으면 힘차게 돌고 사람들을 빠르게 따라다닌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울음으로 결단코

얻어내는 생명력을 본다. 자기애가 강해지고 모두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듯 하는

환호성은 대단했다. 원하는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요구가

많아졌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힘을 다 했다. 그럴 때는 자신을 닮은 것 같이 느껴진다. 무섭게

살아온 모습을 쉴 틈 없이 많은 것을 해가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아이에게서 보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안되는 것이 할머니가 해 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를 쓰며 바라보는 그녀의 애절하게 마음을 끌고 있을 때는 놀랍고 새로운 것을 보는 듯했다.

사랑하는 아이 그녀는 아비의 모습이다. 또다시 아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위에 모든 사람들 동료들, 동네사람들도 서로 위로 하며 새생명의 탄생과 자람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교회에 데리고 가서 안고 있을 때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어두워지지만

며느리를 생각해서 활발하고 쾌활한척 웃으며 손녀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세례를 줄때에는 며느리와 함께 서 있었다. 씩씩하게 자라서 훌륭하게

자란 손녀를 바라본다. 아이의 혈핵형도 아들과 같았고 자라는 모습과 크는 과정도 똑같았다.

성질 부리거나 잠투정하는 것도 틀에 박은 듯이 같았다. 잘 때 음악을 틀어 주면 좋아하는

표현을 한다.

며느리가 바쁘게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밖에서 하는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말을 조금씩 하기도 하고 음악이 흘러가는 리듬 타기도 하며 좋아한다.

뒤뚱거리며 걷는 그녀의 노력하는 모습이 우습도록 대단하다. 같이 손을 잡고 집안을 걸어

다니며 노는 일도 즐거웠다. 소리 지르고 까르르 웃는 입안에 이빨이 하나씩 솟아 오르고

있다고 화가 나서 깨물기도 하지만 예쁘기만 하다.

6. 베비 시터

땅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를 피해서 돌아다니며 물을 맞으며 피해서 돌아 다니는 그녀가

 

수용복을 입고 뛰어 다닌다. 며느리가 해외 파견을 가서 손녀를 맡아 달라고 해왔다. 쉽게

허락을 하고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 두기가 어려웠지만 허락을 했다. 혼자 손녀를 맡고 그녀와

집에 있었다. 하투 종일 그녀를 따라다니다 보니 더욱 가까워졌다. 아들을 키울 때 보다 더

깊은 사랑의 흐름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는 다른 예쁜 모습도 더욱 사랑스럽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수용복을 가지고 다니며 따라가 물에 들어 간다고 하면 옷을 갈아 입히고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지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리며 먹을 것도 준비하고 간간히 먹여 주어야 한다.

공원에 자주 나가게 되었다.

공원에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돗자리를 펴고 엄마들이 나온다.

그들은 젊은 이들이고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다. 손녀 딸도 아이들과 잘 지내고 새로운

친구도 생기며 새로운 정보도 서로 교환하며 잘 지내고 있는 관계들이었다. 가끔은 아빠들이

데리고 나올 때도 있지만 잘 어울리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늙은이는 자신뿐이었다.

아파트가 주위에 있고 아름다운 강이 흐르고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놀이터가 형성이 된다.

또래가 비슷하며 잘 어울려 저희 들끼리 놀고 있었다.

집에 와서는 음식을 만들 때 같이 만들고 같이 먹여주며 요리는 간단한 것으로 하지만 매우

즐거워했다. 요리 놀이는 즐거운 것이고 예쁜 색갈들을 펼쳐 놓고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을 알고

쉽고 단순한 것을 하며 같이 하고자 했다.

그림도 그리고 도화지에 색도 칠하면서 그림을 그리다 아버지를 그린다고 사진에서 본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놀라웠다. 이상하게도 거의 비슷하게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며 조금씩 그리는 모습을 고쳐 주고 있으면서 웃는 모습으로 바꾸어 주었다. 손녀의

그림에서는 굳은 표정을 웃는 얼굴로 고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웃는 모습에서 아들 모습이

살아서 그 옛날로 돌아 가고 있는 듯하였다. 가족을 그릴때는 엄마와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할머니를 그리며 허락 받기를 원하는 자세를 취한다.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해주며

고맙다고 말을 하는 자신에 다시 놀라고 있었다.

작은 악기를 사주고 가르치면서 따라오는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악기를 배울 때 하던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손녀가 자신에게 보여 주는 반응이 뼈 속 깊이

사무치고 아직도 양로원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하게 하였다. 시간을 내서 찾아가가겠다는

갑작스러움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아이는 음악을 좋아하고 악기와 노래를 좋아했다. `

율동도 매우 잘하며 운동 신경이 예민하게 발달되어 음악소리에 맞추어 잘 맞추고 있었다.

어떠한 동작이든 잘 따라서 움직이고 거의 다 잘하고 있었다. 화면의 동작도 잘 따른다.

글 쓰는 것도 가르쳐 주면 잘 따라 하지만 못하고 빨리 끝내기를. 원하여 하지 않게 되었다.

찰흙 놀이를 하는 시간은 그 작은 손으로 힘을 주며 엄마, 할머니, 자신을 만들고 종이에

아버지를 그린 것을 세워 놓는다. 왜냐고 물으니 사진에만 있는 아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슴이 시려 온다. 그래도 꼭 되새기며 자신 곁에 두고 싶은가 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졌는가. 놀랍다.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며 대견함과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비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목을 껴안고 좋아하는 모습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밀착된 감촉이

좋았다. 할머니 냄새가 좋다고 한다.

 

장난감 재봉틀 놀이에서 인형 옷을 만드는 시간은 실증을 내기에 길게 하지는 않았지만

인형들에게 옷을 만들어 달라고 때를 쓰고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바느질을

배워가며 아이와 함께 해보았다.

게임기를 하는 손녀는 할머니에게 가르쳐 주며 자신이 앞서 가는 것을 자랑하는듯 자신이

있었다. 익숙지 않은 기계에 함께 놀아 주는 놀이는 쉽지 않았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아야 하기에 배워 가며 열심히 놀아 주었다. 결국은 혼자 구석에서 자신만이 같는

집중력으로 조용히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 곁을 떠나도 자신에게만 집중해 있다. 그 사이에 세탁도 하고 청소를 하며 혼자 있을

수가 있었다.

잠을 잘 때는 어려 서부터 덮던 담요를 들고 온다. 헐어서 낡은 담요를 꼭 안고 자는 것이다.

버리면 다시 가져와서 항상 갖고 다니며 그것과 함께 있었다. 게임기 보다 더 좋아하고

할머니보다 더 편한하고 안심이 되는 담요다.

아이가 손가락을 빨면서 담요를 한 손에 잡고 누워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음악을

틀어 준다.

아이가 잠들고 짬을 내서 전화를 걸어서 그동안 나가지 못하고 하지 못하던 것을 챙기고

있었다. 모두들 바쁜가 보다. 보이지 않는 자신에게는 관심이 떠나고 잊고들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짧은 시간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끝나고 깨어난 아이와 같이 먹고 씻고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쐰다. 다시 들어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거나 같이 텔레비전을 본다.

간간히 며느리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으며 손녀가 전해준다. 할머니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는

모습이 느껴지니 좀 섭섭한 마음도 든다. 손녀와 지내는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둘이 손을 잡고 가다 가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있으면 그곳으로 간다. 쉽게 사귀고

있는 어린이들이 공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곳에 위험함을 지적해 주고 멀리 가지 않게 주위를 하자 말을 따라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끔 멀리 달아나기도 한다. 어딘가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누군가 에는

있나 보다. 다시 귀가하는 본능도 있었다. 다시 할머니에게 돌아온 손녀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맛있게 먹고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잘 따르며 먹는 모습도 예쁘고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하나씩 배워가며 사는 어린 손녀가 커서 똑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며느리가 데리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손녀가 떠난 그

공간이 그게 구멍이 난 공허를 남기고 있었다.

7, 사춘기 ( 방탄 소년과의 만남 )

십대에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주말이면 아버지에게서 용돈을 받고 맨하튼에서

돌아다닌다. 가끔 극장에 들어가서 여러 곳을 드나들며 하루 종일 보낼 때가 많았다. 아이들과

같이 떠돌아다니던 거리가 즐겁다. 그 모든 곳을 다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평생을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극장에서는 먹을 것을 간간히 사 먹으면서

돌아다니거나 수많은 상점을 오가며 사고 싶은 것을 사가지고 나오면 된다.

맨하튼에는 십대들을 위한 옷가게가 많이 있다. 적은 비용으로 유행에 맞추어서 잘 나와 있다.

 

안정된 기준선의 값이 정해져 있는듯 비싸지 않고 좋은 것이 많다. 구두나 스티커들도

유명상표가 아니지만 유행에 뒤지지 않고 좋은 것이 많이 있다. 패션의 거리 답게 고객의

주머니 사정을 다 알고 있었다.

유명한 백화점이 그곳에 많이 있었다. 그곳에 갈 때는 아버지와 같이 가서 고루기만 하면

아버지가 다 지불해 주면 들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 딸이 좋아하는 것을 사 주는 것이 즐거운

듯 뒤에서 따라오는 아버지는 뒤돌아 보는 딸과 눈을 맞추며 가벼운 걸음의 뛰는듯 하는 딸

뒤를 쫓아 다닌다. 그때 아버지는 행복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손녀딸이 사춘기가 왔다. 날마다 새로운 티셔츠를 찾으며 컴퓨터에서 뒤지고 있었다.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요즈음 손녀딸이 빠진 것은 방탄 소년단이다.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들이 연주하거나

행사에 모두 따라 다니며 노래도 따라 하고 춤도 따라 하며 기념품 뿐 아니라 그와 관계 모든

것을 사들이고 있었다 그들이 뉴욕에 올 때는 모든 곳을 쫓아 다닌다. 미리 예약을 해야 된다.

다 매진이 되어서 속상하다며 할머니를 찾아왔다. 같이 컴퓨터에서 아주 비싼 가격으로

예약을 해주었다.

며느리는 바빠서 갈수가 없다 하여 둘 이만 가게 되었다.

공연장은 발을 디딜 틈이 없이 아우성이다. 세계의 어린 십대가 다 그곳에 모인 것 같았다.

머리에 수건을 쓴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짧은 미니 스커트와 청바지차림들 짧은 바지를

입거나 원피스차림도 보였다. 남자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시작하기 전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열기를 띄우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디움에 꽉 차자 그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방탄 소년단들이 나타나자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입장하자 미치광이 같은 펜들이 소리를 지르며 준비해온 것들을 흔들며

그들의 현란한 춤과 함께 노래가 울려 나오고 같이 뛰는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손녀의 손을

잡고 들어가서 자신도 같이 춤을 추며 좋아하니 그들의 공연이 모두를 사로 잡고 자신들을

잃어 버리는 극치의 경지로 만들고 있었다. . 그들의 흡입하는 동작과 음악에 모두 빠지고

있었다 .언제부터 인지 그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거의 비슷한 키와 아름다운 몸의 균형들이

조화를 이루고 춤과 음악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한국말로 아리랑을 부르자 청중들도 따라

부르고 있었으며 손녀딸은 돌아 다니며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쓰맀리랑,

날좀 보소 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다니고 있었다. 온 하루를 손녀를 따라다니며 보냈다. 물주인

할머니를 옆에 데리고 다닌다.

어릴 때 뛰놀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다. 젊음이 뛰고 있다. 힘차게 건강미를 보이고 그

움직임이 마음을 끌고 있다.. 영어로 부르고 다른 언어로 부르기도 하지만 연어는 상관없다.

그 리듬만이 세계의 젊은이의 마음을 끄는 것이다. 힘차게 움직이는 율동과 그 아름다운 젊은

아이들의 몸동작이 함께하는 규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하는 가벼운 시간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뉴욕 시내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공연이 있었다.

차를 타고 멀리 까지 가자고 졸라 되는 손녀와 함께 그곳에 가기로 하고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을 하고 움직이자 앉아서 음악을 틀어 놓고 따라 부르며 좋아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는다. 운전하고 있었지만 신이 난다. 같이 간다는 것도 좋았지만 잘 자라준 그녀가 대견하고

이쁘고 기쁘다. 먹을 것을 준비해 놓고 차에서 간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은 아들은

잃었지만 그에게서 세상에 나온 아이가 살아서 삶의 활력을 모아 주고 있었다. 같이

 

한마음으로 만들어 주고 적응되며 신이 난다. . 그들이 옮겨 가면 그 다음 장소를 찾아서 따라

다니는 손녀의 미친 듯한 여정을 따라 다니는 할머니도 기뻤고 젊아지고 있었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손녀가 더 컸구나 하는 마음을 갔는가. 맨하튼에서 같이 다니며 놀면서 커

가고 있었다.

학교생활도 성실하게 잘해 나가고 있었다. 공부도 잘하고 음악 공부도 잘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면서 방탄소년단에 더 깊이 빠져 들고 그중에 하나를 고루고

있다고 한다. 계속 쏟아 붓는 손녀의 광기가 걱정이 된다. 그러나 젊을 때 쏟는 그 순수한

마음이 본능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한다.

휴가를 얻어서 며느리와 손녀가 외국여행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뉴욕은 외로운 곳으로

변하고 있었다. 힘차게 손을 흔들며 떠나는 손녀가 떠났다. 그때 젊음이 뿜어 내는 그 강한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틈틈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는 소식을 받으며 모녀의 사진을 본다. 조심해 다니라고 말을

하면서 괜히 잔소리 같은 말을 한 것인가 조심스럽다. 많은 곳을 구경하고 다니는 손녀를 보며

시야를 넓게 보는 것이 좋고 세상을 보고 내 자신을 보며 창조적인 삶을 살기를 벼라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한국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준다. 높은 건물이 있는 풍경과

아버지가 말을 하던 부산도 철원도 서울도 보여주고 있다. 할아버지가 목숨 걸고 지켰던 그

나라를 다니고 있었다. 일본도, 중국도 다니며 동양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뉴욕에서만 살던

그녀가 또다른 환경의 꿈을 갖을 것이다. 이제는 인종 간의 차별이 없다. 화려한 도시가

보인다. 그들의 옛날 삶의 고적지도 방문하고 방탄소년들의 나라도 방문한 것이다. 화려한

여러 곳을 특히 젊은이들이 좋아한 곳을 찾아다니며 또다른 새로운 것을 느낄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는 방탄소년단의 기념품을 사 들고 들아 오고 있었다. 젊은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하는 많은 곳이 큰 변화로 바뀌어져 있었다.

한국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여 공황에 데리러 갔다. 많은 동양인과 많은 다른 사람들아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에 어린아이가 인형같이 예쁘게 차려 입고 모델 인형같이 나오는 것이

눈에 뛰게 들어오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두 모녀는 할 말이 많다. 그동안 지내던 것을 중간에

다 보고를 했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며느리도 좋았는지 신이 나서 같이

여행하는 곳같이 설명을 자세히 해주고 있었다.

밖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고 뉴욕에만 있던 자신에게는 또다른 분위기의 세상을 손녀와

며느리를 통해 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맨하튼은 많은 인종들이 모여 들고 살고

있다. 아무 거부감이 없이 오가는 발걸음을 아무도 막지 않고 있다.

8, 벨러리팍 ( battery park )

젝스에 눈에 익은 소년들이 무리가 져서 들어 온다. 키가 거의 비슷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원들이 호텔근처에 있는 이곳에 왔나 보다. 우르르 몰려 왔다

우르르 나간다. 한국말을 하는 젊은이 들이 나타나자 한국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자

밖으로 나간다. 펜들이 어찌니 저쩌니 하며 나가고 난후 갑자기 공허한 빈 공간만이 남는

듯하다.

메시 백화점에도 그들,이 나타났다. 주위가 훤해 지고 지나가던 행인들이 서서 모두 그들을

쳐다 보고 있다.. 뉴욕에 그들은 여러 곳에서 연주하는듯 일상에서도 눈에 띄었다.

별러라 팍에도 분수대가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그 옆에서 자기의 장기 자랑을 하며

 

춤을 추며 묘기를 보여주는 젊은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춤을 흉내 내며 춤을

추고 있다.

그 주위에는 많은 장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바퀴가 달린 차에서 핫도그 등 여러가지 기념품도

팔고 있다.

아이들이 몰려와서 춤을 춘다... 북을 치며 아프리카 전통 춤도 추고 그 옆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초상화도 그려 준다. .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도 있고 즉석에서 인화를

해준다. 아이스크림 장사도 있다 아이들이 지날 때는 거의 다 사준다. 홈니스들이 간혹 벤치에

누워있는 모습도 보이지만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자주 가던 한국 전쟁 기념비도 거기에 있다. 또 다른 동상들이 많이 있다.

구석 구석 피어나는 꽃들은 그 들대로 군집을 이루고 아름다운 허드슨 강을 따라 여러가지

기념의 표시가 적혀 있는 설명서도 안내서 예쁘게 있었다. 아무나 와서 쉴 수 있는 장소가

많다. 자연스럽게 평온한 분위기를 주며 부드러운 분위기에 비해 주위 높은 빌딩이 많이

보인다.

수많은 전철과 버스가 지나가며 많은 관관객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패리 호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피게 하는 아늑한 조용한 곳이다. 주위에는 많은 식당들도 많았고

거주하는 아파트들도 많다. 영화배우들이 많이 살기도 한다. 이스트코스트 메모리얼등의

많은 기념관이 있다. 가까이에는 자유의 여신상도 있다.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

드높은 맨하튼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 역사적으로 의미가 많은 곳이 많이 있는 곳

자연 친화적인 공원으로 큰 나무가 많아서 그늘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앞이 탁 트여서

아름다운 하늘과 강을 볼 수 있는 곳 강아지들과 걸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시원한

공기가 있는곳 다람쥐가 뛰어 놀기 좋은 곳. 옛날 건물도 있고 영국군 방어기지가 있었던 곳

길거리 공연도 보고 벤치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가 있는 곳 이곳에서 그녀는 자랐고

지금은 살고 있는 곳이다. .그녀는 앉아서 방탄소년단이 아버지가 자주 가던 곳에서 공연을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기념비를 배경으로 그들의 춤을 보는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이 얼마나

좋아 힐까를 생각해 본다..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9, 코비디 19 (코로나 바이러스)

갑자기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모두 집에만 있게 되었다. 3월 15일부터 집에 머물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팬데믹이 선포되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거리 두기를 시작하도록 정부에서

발표를 했다. 매일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상황을 보고 하고 주지사와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는 중국을 비롯해서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길에 가다 쓸어져서 죽어가는 사람을 화면에 많이 보여 주고 있었다. 갑자기 죽어가는 이 병은

폐를 상하게 하고 숨을 못 쉬게 하며 죽어 가는 것이다. 갑자기 마스크가 동이 나고 호흡

기계가 부족하다. 학교는 문을 닫고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고

약국만 열고 있다. 죽은 도시가 된 것이다.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누구인줄 알 수가 없다. 모든 모임이 있는 곳은 문을 닫았고 양로원도 가족들이 방문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행사가 막혀 있었고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식구들끼리 만 겨우 모여서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시체가 한꺼번에 매일 늘어나고 냉동차가 동원할 정도로 보관할 곳이 부족하다.

땅을 파서 임시로 보관하기도 했다. 의료진도 부족하고 수없이 밀려오는 환자로 인해 다른

환자를 볼 수가 없었다. 매일 죽어가는 숫자를 발표하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갑자기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모두 집안에 갇혀서 식구들과 함께 있는 날이 늘어남에 따라 주부들은 하루 종일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도 모두 문을 닫고 오직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되었고 많은 홈니스들은 비어

있는 호텔로 보내어져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학교에서는 급식을 주면서 아이들의

부모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노인들도 신청만 하면 배달해 주는 음식으로 먹고 지내며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으며 실직자를 위한 보조금도 정부에서 주었다. 전 국민에게 모두 다 돈을

주기도 하고 여러 부분에 도움을 주었지만 경제는 풀리지가 않고 어려움이 많았다. 모기지와

렌트 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곳에서 식료품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말없이

봉사하는 손길도 많았다. 학교에서는 컴퓨터 수업이 이루지고 많은 사람이 재택과 업무로

사업체가 바뀌었다. 쏟아지는 실업자와 늘어 나는 환자들은 많아졌다. 의료인들도 병에

걸려서 죽은 것이 화면에 나오고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이 유행병은 호흡을 통해서 일어나고 손을 깨끗이 씻는

운동이 일어나고 어디 가나 손 소독제가 비치되 시작했다. 마스크를 팔거나 봉사로 무료로

주는 단체들의 도움의 손길도 많이 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루어 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무선으로 모든 것이 통하고

있었다.

노인들도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는다. 그동안 노안복지관에서 하던 것을 줌을 통해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관 공소 일도 모두 컴퓨터로 연결하도록 되어 있었다. 운전면허 갱신도 컴퓨터로 우편으로

진행되었다.

만날 수 없는 친지들을 전화나 이메일, 페이스북으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서도 새로 태어난 아이들도 있었고 모이는 것이 어려워 갇혀서 키워야만 했다.

급하지 않은 모든 수술도 못하고 작은 의료진도 집에 있고 문을 닫았다.

네인 샵, 이발소도 모두 닫고 집에서 식구들끼리 도와 주고 살수 밖에 없었다. 가게 주인들은

문을 닫고 그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에만 있었다. 대통령 선거가 11월에

이루어진다. 현직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가 서로 선교유세에 열을 쏟고 있다.

새로운 백신이 나온다고 했다. 인종 차별로 사망한 흑인을 위해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젊은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돌아 다닌다. 버스는 반을 칸을 막아서 투명한 두터운

비닐로 칸을 막고 뒤에만 타게 되었다.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해변은 모두 폐쇄되었지만 어떤 무리들은 간다. 길거리에 팻말이 보인다. 가다가 내려서

바이러스 검사를 한다. 싱글 마미들을 위해서 여러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있었다.

합창단 단원들도 모두 줌으로 연습을 한다. 여기 저기서 무료로 보는 영화도 많았다. 어디가

나 비닐로 앞을 가리고 떨어져서 일을 한다. 은행에서도 거리를 두고 상담을 한다. 응급실

의사가 자살을 했다. 회복해서 퇴원을 했는데 다시 재발되어서 힘에 겨워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해군들이 의료 도움을 위해서 뉴욕에 왔다. 열심히 일하다가 감독 간호사가 병에

 

걸려서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찾아간 지도 오래 되었다. 소식이 왔다. 돌아 가셨다는 것이다. 소식을 듣고

미어지는 가슴은 너무 아프고 안타깝지만 어찌 자신만 당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식구들끼리

장례를 치르고 집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한다. 너무 많은 추억을 주고 떠난 아버지다.

기운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서 걷는다.

아버지가 총을 들고 서 있었다. 튼튼하고 젊은 청년이 환하게 웃는다. 딸을 향해서.

마스크속에서 부르짖는다. 아버지는 용감한 군인이예요. 친구들과 잘 지내세요.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10 투표 하기

새로 태어난 손녀딸이 이제 선거할 나이가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선거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신나서 떠드는 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이제는 다

자랐구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와 아들이 떠오른다. 그사이 새로운 빛이 되어준 손녀딸이

대견하다고 느끼고 힘이 되었다.

운전 면허증을 내보이며 자랑도 한다. 바쁘게 들락 거리는 것을 보니 어디인가 하는 일이 있나

보다.

선거유세가 한창이다. 저마다 전당 대회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정하고 서로 공격을

시작하고 열심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세계적인 판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온 세계의 관심이 많다. 선거를 한다고 좋아하는 손녀와 함께 하루를 지내려고

집에 있었다. 며느리와 손녀가 왔다. 셋이서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맑고 좋았다. 아버지와

다니던 네일 샵에 셋이서 갔다. 그곳은 새로운 단장을 했고 디자인도 바뀌어 있었다.

주인이 바뀌었나 보다. 일하는 사람은 별로 바뀐 것이 없는데 주인이 바뀌었다.

아버지가 좋아 했던 그 유학생이 가게를 인수하여 새 주인이 되었다. 셋이 들어서자

다반가와서 반기며 인사를 한다. 셋은 발을 물에 담그고 앉아서 지나간 이야기를 그녀에게

전해주자 그녀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따듯한 물이 돌면서 소리를 내자 그녀는 다른 손님에게 가고 온몸이 풀리고 있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뉴욕대학에서 디자인과를 전공하던 그녀가 졸업 후 되돌아 가지 않고 이 곳에

주인이 되었다. 긴 세월을 같이 한 사이다. 그녀가 이곳에서 쌓았던 경력과 그녀의 전공이

모든 주위에 분위기를 바꾸었다. 꽃잎을 물에 띄우기도 하고 아로마 향의 좋은 향으로 쌍인

피로감을 풀어주고 새로운 많은 것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발 맛사지를 받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름다운 장식들은 모든 피곤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아늑한 분위기에 빠져 들고 있기에 부족 함이 없었다.

떠들던 손녀가 말이 없고 조용하다. 이제는 어른이 된 것인가.

변해 가는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다. 아버지와 이곳에 같이 왔을 때는 그 녀는 여기에 없었다.

졸업후 일시 귀국해서 없었고 다시 돌아 올 때까지 없었다. 아버지가 그녀를 찾았고 섭섭해

했었다.

 

아버지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그 동안 문을 닫았던 이곳에 사람들이 다시 오고 있다. 새로운 분위기지만 전에 왔던

사람들이 다시 많이 오고 있었으며 새로운 얼굴의 모습들도 많았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키며 마스크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말을 하고 있다.

색깔을 고를 때 밝은 색으로 골랐다. 며느리는 프렌치 매니큐어를 하겠다고 하였고 손녀는

검은 빨간색을 골랐다. 세계가 모두 같은 처지에 있었지만 여인들은 꾸미기를 원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왔고 바빠 보였다.

간혹 남자들도 오고 있지만 거의 여자들이다. 수다 떨면서 큰소리로 웃는 웃음 소리는 아주

좋아 보였다, 마스크 속에서 하는 말들이라 정확히 발음이 나지 않고 귀를 기우리는 모습들도

보인다.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모두 어려운 가운데 이런 호강의 여유를 누리는 이들의

행복감을 본다. 따듯한 분위기에서 몸을 녹이며 예쁘게 단장된 손 발을 본다. 저마다 고른

색으로 예쁘게 단장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차다. 그러나 시원하다는 느낌을 느껴 본다.

뜨거운 커피를 앞에 놓고 손녀딸의 수다가 시작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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